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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쓰다 Mar 02. 2024

프롤로그 : 엄마가 됐지만 철들고 싶지 않아

엄마가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완벽할 줄 알았던 무식하고도 용감했던 나

1.

아이를 바라보는 따듯하고도 인자한 눈빛.

갓난아기를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안아 젖을 물리고,

까닭 없이 우는 아이가 무엇 때문에 불편해하는지 금세 알아채고 해결해 주는 사람.

원래부터 나를 위한 시간이라곤 쓴 적 없었던 것처럼 내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한없이 올바르고 굳센 사람.

나는 왜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저절로 이렇게 완벽한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 왜 아무도 아이를 낳기만 한다고 저절로 좋은 엄마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2.

아이를 낳고서 얼마간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모성애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성애가 생기지 않았다니 언뜻 굉장히 나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진심으로 그랬다.

그 시작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던 출산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일반적인 출산 장면은 어쩐지 애틋하고 부모가 된다는 벅찬 감정이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무통주사를 맞고 아랫도리에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기계가 알려주는 힘주기 타이밍에 힘을 줘가며 하는 나의 첫 출산은 미디어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쨌든 아이의 얼굴을 실제로 보게 되면 나도 저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뱃속에서 무언가 숭덩하고 빠져나오고 핏덩어리 하나가 내 가슴팍에 턱 하니 얹혔을 때, 나는 ‘성형수술은 필수겠군.’ 하고 건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조리원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갑자기 젖이 돌면서 몸에 변화가 나타나고 원치 않게 젖 짜는 짐승이 된 것 같아서 약간 언짢았으나,

어쨌든 하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물리적인 역할도 충실해야 했다.

그때까지도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아이의 조그만 구석구석까지 호기심에 찬 눈으로 관찰한 것도 맞지만,

알 수 없는 어색함과 낯가림에 까꿍 같은, 초보 엄마들이 한 번은 해볼 법한 소심한 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회사를 퇴사했는데도 내 일이 해보고 싶어서 조리원에 입소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했던 이례적인 백수 엄마였을 것이다.

이 모든 감정의 흐름이 나를 위축되게 하고 스스로를 못된 엄마라고 여기며 자책하게 했다.


3.

모성애가 없다고 느껴서 생겼던 죄책감은 아이가 인지 능력이 조금씩 생기고 방긋방긋 웃기 시작할 때쯤 사그라들었다.

이제 막 태어나 살기 위해 울고 불던 갓난쟁이와 지지고 볶고 부대끼다 보니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엄마를 알아보는 듯한 눈빛과 꺄르륵 순수하게 웃는 웃음에 이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줄 수도 있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나는 또, 딜레마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어린데 어린이집에 남들처럼 딱 세 시간만 맡기는 게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까?

-남들처럼 엄마가 스케줄을 짜고 장난감을 정해서 계획성 있게 하루를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남들은 이유식을 이렇게 허접하게 만들지 않겠지?

모든 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됐고 우리 아이는 나를 만나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너무 철이 없어서 다른 엄마들만큼 희생하지 못하니까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듯했고, 당시엔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아직 엄마가 되기엔 너무 어렸던 걸까, 미처 없애지 못한 20대의 자유분방한 흔적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가끔 슬퍼졌다.

하필, 또 내 주변의 엄마들은 너무 멋있고 완벽한 어른 같았다.


4.

엄마는 거센 바람 앞에 흔들리는 한 줄기 갈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우선순위는 변한 적이 없다.

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엄마’였다. 철이 있든 없든 희생을 많이 하건 적게 하건간에 늘 변함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되었어도 철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남들과 비교하지 않겠다는,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이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방식대로 흔들리지 않고 점점 더 엄마로서 성장해 나가겠다는, 어쩌면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는 나만의 다짐이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싶고 저녁엔 여가 활동도 즐기고 싶고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누군가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살면 어떡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철 안 드는 엄마가 되는 게 목표라서요.’라고 대답하려 한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건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내 방식대로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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