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by 그로브제이

내가 그 책을 읽었던 건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자는 방과 공부방이 따로 있었다. 공부방에는 작은 베란다가 딸려 있었고, 그 베란다는 항상 책으로 꽉 차 있었다. 등교 시간에도 숨어서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던 나는, 그 무렵 중학교 선행 학습이니 뭐니 하며 학원에 치여 점점 책을 멀리하던 시기였다.


사춘기라는 기나긴 암흑기를 지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영감을 주었던 그 책. 어린이 논술용으로 쉽게 풀어낸 소크라테스의 『나는 누구인가』였다. 어느 날 그 책이 문득 눈에 들어와, 베란다 구석에 웅크린 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물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해? 나는 왜 저 친구보다 잘해야 해?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뭐해? 좋은 직장에 가면 뭐해? 결혼하면 뭐해? 그럼 그다음에는 또 뭘 해야 해?”


책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 질문만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20년 넘게 살아 있었다. 그 책을 출판한 사람은 알고 있을까? 한 어린아이가 그 책이 던진 의문을 20년 넘게 품고 살아왔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숙제를 마무리 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첫째는 네 살이고, 뱃속에는 둘째가 있다. 아직 서른 초반이지만, 이제 어느 모임에서도 막내로 취급받기는 어렵다. 엄마가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아직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언제나 어른이어야 하는 상황이 가끔은 슬프다.


결혼한 뒤에도 숨가쁘게 달렸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며, 다른 노선을 개척하겠다며 책도 쓰고, 붓글씨 공방도 열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남들과 더 닮아갔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는 어려웠다. 고요한 세상과 발악하는 나. 내 세상엔 그것뿐이었다. 그때는 내가 소금물 속에서 퍼덕이는 미꾸라지였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업장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적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월세, 공과금 같은 유지비를 내려놓고, 집 거실 한켠에 작은 책상 하나 두고 일주일에 며칠 수업하며 용돈을 벌었다. 나갈 돈이 없는 업장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수업이 없는 고요한 낮. 마음 깊은 곳에서 20년 묵었던 질문이 다시 올라왔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나는 집 안에서조차 길을 잃었다.


남편에게 종종 하던 말이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신데렐라는 끝내 행복해졌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비참한 상황에서도 마침내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행복해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평범해졌다는 의미일까? 신데렐라는 정말로 행복했을까, 대체로 행복한 편이었을까 아니면 행복한 척 방황했을까?


나는 이제 신데렐라의 엔딩 이후가 궁금해졌다. 삶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는 사람들이 대체로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기에 삶의 의미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의문을 풀어야겠다는 병에 걸려버렸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겐 답이 없다. 누군가에게 “이게 답이에요” 하고 말할 능력도 없다. 다만 오늘 하루를, 그리고 내일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써보는 글일 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