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을 찾아서
삶의 의미는 늘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신앙을 갖고부터는 창조주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없다. 다만 내가 길을 잃은 이유는 살아갈수록 ‘어떤 의미’를 따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신의 뜻을 인간인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스스로 정의해왔다. 돈을 벌어 누군가를 돕고, 봉사하며,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삶. 그러나 전업주부가 되고 나니 그런 목표는 하루아침에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다. 아침에 아이를 먹이고, 낮엔 집을 치우고, 밤엔 식구들이 잠들 자리까지 만드는 일만으로 하루가 닫힌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문득,
“지금의 나는 어떤 필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이 내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은 아마 인생의 끝에 이르러도 명확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오래도록 청소를 ‘비생산적인 일’로 생각해왔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들은 언젠가 모두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는 생산적이고 더 큰 의미가 있는 일을 하리라 믿었던 사람. 그런데 주부가 되고 보니 청소만큼 가족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일도 없다.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이면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커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아이는 좋아하는 과일조차 깨끗한 그릇에 담아 줄 수 없다. 책상이 어지러우면 책 읽을 마음조차 사라진다. 이 단순한 사실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청소가 그저 반복되는 노동이 아니라, 가족의 내일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청소는 내가 붙잡고 있던 무거운 질문들—존재의 이유, 의미, 목적—을 잠시 내려놓게 해준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걸레를 쥐고 몸을 움직이면 오히려 생각이 잠든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부조리에 맞서는 자유”라고 말한다. 모든 문장에 동의하진 않지만, ‘삶을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주어진 자유’라는 관점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매일의 청소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하는 작은 실천이고, 삶이 의미를 주지 않을 때도 나를 지탱하는 도구다. 습관이 삶을 대신해주지는 못하지만, 습관 덕분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몰라도 매일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하루의 쳇바퀴를 돌리면 가족은 따뜻한 잠자리를 얻고, 식탁에는 음식이 오르고, 아이의 몸에서는 비누 향이 난다.
어쩌면 쳇바퀴를 돌리며 얻게 되는 포근함, 안정감, 충만함이 바로 ‘행복’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평생 찾으려 애쓰는 그 행복이 내가 오늘 돌리는 쳇바퀴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청소를 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