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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Nov 24. 2023

쓰는 만큼 자란다

엄마 말은 다 옳은가?

전화 너머 택이 엄마의 목소리가 격앙돼 있었다.  택이는 우리 막내아들의 절친이고 그 엄마 또한 나와 친한 지인이다.


그녀는 요즘 매일 게임에 정신이 팔려 사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해 검사와 상담을 가자고 어렵게 권유했다가 아들의 냉담한 거절로 인해 속마음을 앓아 온 차였다.


택이가 나와 논술 수업을 같이 하고 있어 그녀는 아들의 상담 겸 해서 자신이 얼마나 속상하고 충격받았는지를 신랄하게 실토하며 차츰 목소리가 격앙돼 갔다.


말 안 듣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덩치만 커진 아들을 상대하는 게 부모에게 얼마나 커다란 고역이자 당혹스러움인가? 한때는 내 품에서 마냥 귀엽고 의존적이었던 존재가 이제 부모 손에 들린 매도 서슴없이 뺏고 때로는 욕까지 내뱉으며 문을 쾅 닫고 사라질 때 한 번쯤 '내가 왜 저 자식을 낳아서 이 꼴을 볼까'하면서 상심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날 오후 택이와의 수업이 있었다.  

자신의 친구를 참 위인으로 추모하며 간략한 전기로 쓴 이문구 작가의 '유자소전'을 읽은 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지 아이들과 진지하게 논했다.


수업 뒤 배운 걸 중심으로 자유롭게 독후감을 쓰자 하니 아이들의 외마디 탄식이 들려왔다. 그 와중에 택이가 우물쭈물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전 아직도 책 내용이 별로 이해되지 않아서 독후감은 도저히 못쓰겠는데요."

택이의 맑은 눈을 보자니 진심이 느껴져

 "그럼, 너에게 유자 같은 의미를 지닌 사람에 대한 에세이를 써봐. 이렇게 네게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 준 사람은 누굴까?"라고 물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크게 당황한 듯 택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표정이다.  


한참 한숨을 쉬며 고민하던 택이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저... 엄마 얘기 써도 될까요?"

"그래. 엄마와 겪은 인상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써보면 어떨까?"

"엄마와 싸운 얘기를 쓸게요."


택이는 말없이 연필을 사각거리며 엄마와의 얘기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뭘로 할 거냐 물으니 ‘엄마 말은 다 옳을까?’로 하겠단다.


친구들 사이에서 한참 동안 글을 써내려 가던 택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큰 눈을 굴리면서 고개를 숙인다.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어떡하지요?”

“그럼 눈물 흘리면 되지.  글 쓰다가 그런 때도 있어. 괜찮아. "


마침내 글이 마무리가 될 때쯤 택이가 또 묻는다.

“그런데 결론은 뭐라고 할까요?”

“넌 뭐라고 썼는데?”

“엄마 말이 다 옳은 건 아니라고 썼는데... 뭔가 찝찝해요.”


이때다 싶어 택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택이야. 그럼 네 말은 다 옳은 것 같니?”

그제야 택이는 무릎을 탁 치면서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기뻐했다.


“맞네요. 제가 꼭 다 옳은 건 아니지요.”

결국 택이는 그날 자신만의 글을 완성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집을 향했다.      


‘엄마의 말이 틀린 것일 수도 있듯이 내 말도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부터 말을 할 때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하자.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하고 싶은 게임을 못하게 만류하는 엄마에게 자신이 왜 그 게임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싸움을 신랄하게 쓴 택이의 글은 이렇게 끝났다.


 글을 쓰기 전까지 택이는 자신의 생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다는 생각으로 엄마를 향한 원망과 섭섭함으로 마음이 화산분출 같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택이는 엄마도 자신도 결국 틀릴 수 있음을 깨닫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원고지를 내려놨다.     


다음  택이 엄마가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택이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순순히 상담 가겠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 한숨과 질문들 사이를 오가며 힘겹게 글을 썼던 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1시간 동안 아이는 나름 자신이 겪었던 상황과 생각을 재정립하면서 심경이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닐까.      


이래서 난 글쓰기 수업이 좋다.


단어와 문장을 빚는 시간은 단순히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태도도 다듬는 시간이다.

그렇게 다듬어진 마음과 태도를 가리켜 우리는 때로 치유되었다 말한다. 그 치유가 거듭 쌓일수록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진다.

쓰는 만큼 우리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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