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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Jan 14. 2024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잠재력

주원이(가명)삼 형제 중의 막내이다. 위로 나이차가 7세, 5세인 큰형과 누나가 있다. 형과 누나는 두뇌가 명민한 부모를 닮아서인지 한눈에 보기에도 영특해 보였다.


주원이의 부모님은 공부를 제법 잘하고 영민한 큰아들, 둘째 딸과 달리 말도 어눌하게 하고 발달도 늦된 막내 주원이가 늘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처음 나에게 수업 의뢰가 왔을 때 주원이는 이미 다른 논술 선생님과 1년여 수업을 한 뒤였다. 그룹으로 하는 수업에서 간혹 엉뚱한 말을 하고, 글씨와 맞춤법이 엉망이라 글쓰기가 진전이 잘 안돼 이전 선생님의 속을 태웠다고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주원이는 이후  수개월 논술을 쉬었다가 6학년에 올라가서 나에게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같은 교회에서 가끔 마주쳤던 아이이기에 나는 주원이와의 만남이 내심 반가웠다. 나 역시 아들 셋을 키우는 입장이라 주원이 엄마가 삼 남매를 키우는 어려움도 익히 이해가 갔다.


처음 독서능력 테스트를 봤을 때, 어리숙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주원이는 상당히 높은 테스트 점수를 받았다. 말과 글이 어눌하고 서툴 뿐이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또래에 뒤지지 않는 탁월한 아이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함께 친한 친구와 수업을 하면서 여전히 엉뚱한 질문들을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도 안 되는 설명들을 덧붙였지만 나는 그런 주원이의 천진한 모습이 좋았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도 깊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 기특했다.


주원이가 가장 즐겨 읽고 좋아한 책은 성경이었다. 아이는 교회에서 듣는 성경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며  엄지를 치켜올렸고 장차 자신의 꿈은 사역자가 되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하고, 마음속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치는 주원이의 모습은 나에게도 아이의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우리는 1년 가까이 매주 만나서 읽고, 쓰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며 창밖에서 우리를 다독이는 햇살처럼 매번 환히 웃고 즐거워했다. 크게 눈에 띄지 않아도 거북이걸음처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아이의 글과 발표는 매번 나에게 가르치는 보람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들어섰을 때 주원이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주원이가 수업을 그만둔다고 전했다

부모님이 서울의 유명 학군지에 학원을 차리기 위해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13년 평생을 우리 동네에 살며 친구들과 이웃이 모두 이곳에 있는 주원이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교회에서 보았을 때 눈물이 그렁한 채로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간 아이의 모습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나는 덤덤한 척 주원이에게 "송별회 하게 한 번 와야지. 같이 치킨 먹자."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치킨 너무 좋아요."라며 기뻐했던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날 나는 끝내 주원이를 만나지 못했다.  주문해 놓은 치킨을 남은 학생과 함께 나눠 먹고 쓸쓸히 수업을 끝냈다.


왜 안 왔을까?

그날 늦게야 주원이의 메시지를 받았다.

'선생님, 갑자기 어딜 가야 해서 못 갔어요. 죄송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어쩌면 친구는 여전히 수업을 받는데 자신만 치킨을 먹겠다고 오는 게 겸연쩍어서였을까. 아이를 위해 더 속 깊게 배려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할 따름이었다.


그다음 주부터 주원이의 빈자리가 부쩍 커 보였다.

수업 시간에 늘 활발하게 떠들고 질문하던 아이였기에 더 그런 것 같았다. 가정 사정상 주원이가 그만두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자신의 역량에 비해 보이는 게 서툴고 어리숙한 주원이가 낯선 동네,처음 보는 아이들  속에서 주눅 들어 정작 자기 안에 내재된 태산 같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주원이는 말하는 게 서툴고 어눌해 보일 뿐이지 누구보다 배우기를 즐겨하고, 잘 읽고, 이해하고, 사유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자신의 어리숙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 울퉁불퉁한 글씨체, 엉망인 맞춤법 등의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받아 정작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다면 그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아이들을 새로 받고 떠나보내는 건 가르치는 입장에서 매년 일어나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원이같이 자신이 가진 잠재력에 비해 보이는 게 부족해서 타인에게 정당한 인정을 못 받는 아이들을 볼 때 나는 더 가슴이 저린다.  


아마 그렇기에 주원이와의 수업이 각별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주원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함께 치열하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주원이가 부디 그곳에서 자기안의 눈부신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길 속으로 조용히 기도할 따름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그보다 더 깊은 세계가 아이들  각자 안에  숨겨져 있음을 주원이는 나에게 삶으로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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