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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Nov 20. 2024

갱년기 아빠 VS 사춘기 아들?

아이 같은 아빠와 어른 같은 아들

그날 저녁.

아들이 기침을 해서 꿀물을 한잔 타주고, 주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별안간 들려오는 한마디.



그렇게 깐죽대다가 물 흘릴 줄 알았다!


바닥에 놓인 꿀물을 마시다가, 조금 흘린 모양이었고 아빠는 아들에게 닦으라고 했고,

아들은 바닥을 닦을 휴지를 가지러 다, 컵을 건드려 물을 더 흘렸었나 보다.


요즘 우리 가족의 저녁 일상은, 새롭게 알게 된 유튜버 <노마드션> 채널을 보며, 이야기 나누며 최근 무비자로 풀린 중국여행을 언제 갈까 계획을 세우는 거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녁 8시 반이 넘으면 각자 할 일을 마무리하고 TV 앞에 앉았다. 그날도 그랬고..


아들은 휴지를 가지고 와서는 흘린 물을 닦아내고,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로 간 듯한 아들이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가보니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닌가.



ㅣ깐죽대다.

   쓸데없는 소리를 밉살스럽고 짓궂게 들러붙어 계속 지껄이다.



아들은 이 말에 심기가 불편했고, 아들의 그런 모습에 아빠 역시 아들에게 그런 말도 못 하냐며 화를 냈다.

(시아버님은 언젠가 내게 '네가 많이 힘들겠다' 하셨는데 오늘을 예측하고 그러셨던 걸까 싶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들의 심리를 아빠는 헤아리지 못하고,

아들에게 존중받고 싶은 아빠의 심리를 아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빠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싶어 했지만, 사과를 하는 게 익숙지 않은 아빠는 한다는 사과가

"미안하다고 할게! 됐어?!"

(이게 사과인지,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내 예상대로 사과를 받고 싶어 했던 아들은, 아빠의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냈고, 아빠는 그게 더 화가 났을 터.


신랑은 퇴근해 들어오면서 오늘 많이 피곤하다 했지만, 쉬고 싶은 맘을 누르고, 아들이 좋아하는 거실 야구를 했다. 그런데 아들이 고맙다는 말을 안 했다고 서운해했다. (이럴 때 보면 열한 살 아들과 정신연령이 비슷하다)








아들은 한참을 울었다.

많이 속상했을 거고, 많이 당황했을 거고, 중간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있는 엄마를 못내 서운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들에게 아빠와의 대화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아빠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자.

할아버지가 엄청 엄하셨다는 거 알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빠는 할아버지한테 칠칠치 못해서 흘리고 그런다고 엄청 혼났을 거야. 그리고 그때 아빠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 대꾸도 못했을 거고...

그래도 아빠는 태봉이한테 그렇게 무섭게 이야기하지는 않잖아. 아빠는 할아버지랑 대화를 많이 나누어본 적이 없고, 같이 야구를 해본 적도 없어서 그런 것 같아.  태봉이가 아빠한테 울면서 큰소리로 이야기해서 아빠도 지금 많이 속상할 거야. 앞으로는 울지 않고 태봉이 생각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기분이 나쁘거나 속상하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아빠가 내가 깝죽댄다고 하니 기분 나빴어요ㅡ라고.


한참을 훌쩍이며 내 이야기를 듣던 아들은 엄마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까.

갑자기 나가서 종이 한 장과 연필, 지우개를 들고 식탁으로 간다.

거기서 편지를 쓴다.


차마 아빠방으로 가서 전달하지 못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가 나갈 때 볼 수 있게 현관 앞에 붙여둔다.

그리고 물 한잔을 마시고 잘 준비를 하러 가는 아들에게 나는 갑자기 속삭였다.


아빠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서, 뒤에서 껴안아볼까?


방으로 간다. 엄마는 저리 가있으라며.


아이가 먼저 용기를 낸다. 아빠 방에 들어가서 뒤에서 껴안았나 보다.

둘이 한참을 이야기하고, 아들의 우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타이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아들은 또 훌쩍인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겠지.

눈물 많은 감성 충만한 나를 꼭 닮았다.


다행이다.


먼저 다가가는 열한 살 아들이 아빠보다 어른스럽다.


사춘기를 향해가는 아들과 이미 갱년기에 들어선 아빠.

그리고 그 가운데 갱년기로 가고 싶지 않은 엄마가 있다.


출근 길에 아빠보라고 써 둔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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