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정동 골목
오래된 기억은 시간의 그림자 속에 조용히 숨어있었다.
기억은 시간이 남긴 흔적이기에 흐르는 시간 뒤를 따르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삶의 굴레에서 약간의 여유로움이 간절해질 즈음, 그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오래 묵은 기억을 끄집어내어 추억할 수도 있다.
북정동 골목이 그러했다.
나의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던 북정동.
명절날 큰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북정동 골목골목을 돌아올라 향교를 지나고 저수지 둑방을
걸어올라 큰 할아버지 산소 가던 길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있고,
우체국 앞 공터에서 모여 놀다 친구를 찾는다며 기상대 골목을 헤집고 다니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유년의 동무들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지…
이토록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 난 뒤에서야
해묵은 기억들이 묻어 있는 북정동 골목을 다시 걸으며 내 작은 발로 골목골목에 남겼던 흔적들을 추억해 본다.
그러나 이제
이 북정동 골목을 다시 걸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북정동 일원은 “B-04”라는 생소한 이름이 부여되었고 재개발과 함께 희미하게 남아있던 흔적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존재와 부재의 증명을 위해 북정동 골목을 사진으로 남기고 내 유년의 기억은 다시 시간의 그림자 속에 곱게 쟁여 두기로 했다.
울산신문 기고 :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522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