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상한 감사
오후 1시. 나는 친척 고모부님의 장례식장에 와있었다. 친척 고모님을 먼저 보내시고 7개월 만에 그가 이 세상을 등지게 되셨다. 쓸쓸하게 혼자 계시다가... 40년 넘게 함께 사시면서 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시다, 그 빈자리를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고모님 곁으로 가시게 되었다. 슬프고,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주무시다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하는 그의 죽음이 깔끔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오후 4시.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였다.
"엄마~, 장례식장에 다녀왔어."
"그래, 잘했다. 고모부... 진짜 고생만 하시다 가셨네."
"그러니까 말여. 좀 슬프네. 역시 부인이 먼저 죽으면 안되나벼.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40년 넘게 고모가 다 챙겨주셨다는데..."
"젊었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았었어. 그래서 고모가 고모부 살리겠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디야.. 고모 덕분에 여지껏 잘 살았는디..."
"아빠도 엄마가 계시니 이렇게 잘 사시지.."
나의 친정 아빠는 10년 전 큰 사고 이후 치매를 앓고 계시다. 하지만 그 치매 정도는 초기 정도라고 하셨다. 자주 잊어버리고, 인지 기능 및 판단 능력이 현저히 낮아졌고, 감정 조절력도 많이 약해지셨다. 어린아이로 돌아간듯한 친정 아빠를 친정 엄마가 모시며 치매 속도를 멈추고 있었다. 그녀는 아빠의 약과 같은 존재이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표현하나, 같이 살며 시중을 드는 친정 엄마의 속앓이는 감히 헤아릴수가 없다.)
"그라제. 니 아빠도 걱정 이기는 하다. 혹시나 내가 먼저 가게 되면 어쩌냐.."
"그러게. 근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하지 말자구요. 엄마가 건강하시잖아. 그나저나 어디 가시는 중이에요?"
"응~. 바닷가. 심심해서 아빠랑 청각이나 몇 개 주워보려고 간다. 거의 다 왔어야. 너도 피곤하겄다. 얼른 가서 쉬어라."
"네. 조심하시구요."
이 날 토요일은 유난히 행사가 많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옷을 바꿔 입고서는 시댁 사촌 동생의 딸 돌잔치를 참석하고자 서울 나들이를 갔다. 오랜만에 가는 돌잔치이기도 하고, 작년 시할머니의 장례 이후 처음으로 있는 시댁 모임이라 적당한 부담감도 안고 있었다.
오후 6시 20분!
이제 곧 돌잔치가 시작이다. 시작하기 전에 전라도 광주에서 문상을 위해 올라온 친정 오빠와 언니를 보지 못한 아쉬움에 잘 내려가고 있는지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내려가고 있지? 잘 내려가고 있어? 안 막혀야 할 텐데..."
"어~ 문상 잘하고 내려가고 있어. 근데... 안 좋은 소식이 있다."
"무슨 안 좋은 소식?"
"좀 전에 앰뷸런스 대원한테서 전화가 왔어. 엄마가 쓰러졌단다. 바닷가에서."
"어? 엄마가? 아빠가 아니라 엄마?"
평소 어린아이로 돌아간 친정 아빠는 두려움 없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처럼 행동을 하다가 크고 작은 사고들을 일으키셨다. 낫으로 손가락을 베인다던지, 넘어져서 크게 다친다던지, 바위에 미끄러워 넘어지면서 다친다던지, 심지어는 농약을 물로 착각하고 마실 뻔한다던지.... 그래서 우리 남매들은 아빠의 사고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마가 앰뷸런스에 실려 간다는 것은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쓰러졌다니... 게다가.... 마비라니!!!!
광주 시내의 대학 병원까지 오는 것도 한참 걸리는 시골이 내 친정 부모님이 사시는 곳이다. 마침 광주에 있던 새언니는 전화를 받고는 부랴부랴 떨리는 심장 부여잡고, 손을 진정시키며 친정 엄마를 마중 나갔다. 응급실로! 응급실 앞에서 시어머님의 의식 없고, 마비가 온 모습을 본 새언니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한다.
"새언니~. 엄마 도착했어요? 만난 거예요?"
"어떡해요, 아가씨. 어머니... 오른쪽에 마비가 왔어. 말씀도 못하시고, 의식이 없어. 어떡하면 좋아~~"
"CT 찍었어요?"
"찍으러 갔어요. 어이고~~ 어머님이 뭔 일이래요."
우리는 모두 막연 자실 했다. 광주로 향하던 친정 오빠와 언니도 바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치매 노인 친정 아빠와 그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새언니.... 그리고 의사는 새언니에게 응급 수술을 권했다고 한다. 보호자 사인을 하면서, 이발기로 머리가 밀리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새언니는 어른의 무게감을 다시, 아니... 보호자의 무게감을 느꼈을 것이다.
"언니야~ 무슨 일이야? 진짜야? 왜 큰엄마가 쓰러지셔? "
"그러게 말이야... 뇌출혈이래. 왼쪽 뇌. 그래서 오른쪽 편마비가 왔다나 봐. 감사하게도 응급 수술을 했는데 10cc 출혈량이 있었다고 하네."
"어떡하냐, 우리 큰엄마~. 우리 큰엄마는 안되는데...."
"그래도 감사하지. 마침 아빠가 옆에 계셨고, 또 마침 지나가던 젊은 이가 앰뷸런스를 불러주고, 또 마침 앰뷸런스 대원이 상황 판단을 잘해서 2차 병원으로 가서 CT 찍는다는 둥 시간 지체 없이 바로 3차 의료기관으로 갔고, 또 마침.. 응급 수술할 의사가 있었고.. 또 마침.. 새언니가 장례식장을 안 와서 광주에 있었으니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그래도 감사하다, 난! 그 덕분에 우리 엄마 얼굴 볼 수 있으니..."
"흐흐흑.. 그러게. 그건 그러네. 아이고~~."
사촌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찍 엄마를 떠나보내고 친정 엄마는 사촌들에게도 엄마 노릇을 하셨던 터라... 큰 엄마의 의미가 남달랐던 그들이다. 덕분에 사촌지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꽤 사이가 좋고, 친하게 지낸다.
"누나~ 어디야?"
"교회야."
"광주?"
"아니. 오늘 내려가려고 KTX 끊어놨는데.. 수술하고 중환자실로 가서 어차피 가도 엄마를 못 본다고 하네. 그래서 취소했지."
"아이 X발. 왜 우리 큰엄마야~~ 왜~~~~!!"
"괜찮아. 수술 잘했고, 이제 예후도 좋을 거야. 재활에 더 신경 쓰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 에이~~ 진짜.. 흐흐흑. 진짜... 진짜~~ 에이~~ 진짜... 이건 아니지... 왜 우리 큰엄마한테..."
평소 강하고 거친 모습이 있는 사촌 남동생은 세상 가장 믿고 지내는 어른인 큰 엄마의 뇌출혈 앞에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흐느낌에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미치도록 슬픈데.. 이상하리만큼 감사하다.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제는 자식이 아닌 내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도 내 생활이 있고, 내가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감사하다.
이전과 같은 따뜻한 음성을 들을 수 없겠지만,
이전과 같이 엄마의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없겠지만,
이전과 같이 언제든 전화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이전과 같이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없겠지만,
이전과 같이 (묘기에 가까운) 엄마의 낙지 잡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이전과 같이 김장철에 엄마표 맛있는 김치를 기다릴 수는 없겠지만(우리 집 아이들은 외할머니표 김치만 찾는다),
이제 내가 가까이서 엄마를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내 도움으로 움직여야 할 엄마를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난 감사하다.
그래서 난 3차 의료 기관이 끝나고 난 이후의 날들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더 친정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함과 기쁨으로 맞아들일 생각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편안함이 얼마나 큰 호사였는지 느끼게 될, 어려움이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어쩌면 난 친정 엄마의 얼굴을 몇 달째 못 본 체 눈 감고 계신 엄마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쩌면 난 엄마의 따뜻한 체온 대신 뻣뻣하게 굳어 차가워진 살갗을 만지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쩌면 난 엄마의 미소가 생각나지 않은 채 그대로 굳어버린 입술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리고 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 남매가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엄마라는 큰 기둥이 치매 아빠를 잘 잡아주고 있어서, 막을 쳐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큰 바람이 불지 않았던 것을...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별이었는지...
우리가 친정에 가서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큰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