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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화 Jan 23. 2024

사랑의 무게

혹은 선택의 책임

 

 내가 품은 사랑 중 가장 숭고한 사랑은 단연 동거견을 향한 사랑이다. 동거견에게 바라는 것들이야 많다. (침 적당히 흘리기, 얼굴 밟지 않기, 길 가다 음식물 쓰레기에 관심 끄기) 하지만 바라는 것 하나를 정말 들어준다면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바람이지만, 단연코 이것밖에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존재는 강아지뿐이다. 애초 나한테 무언가 해주길 바라서 데려온 게 아니고,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그렇다면 왜 이 생명을 들였을까.

 

 그저 함께 걷고 싶었다. 매일 아침 동네를 걷는 일을 함께하고 싶었다. 내 가족이 됨으로써 이 친구는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견생이 되길 바랐고.

그러니까 시다바리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바라는 사소한 것들은 우스갯소리로 지껄일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음과 동시에 많은 것을 바란다.

 

 “건강하기만 해다오.”

 

 이 동거견의 존재는 부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를 울게 하니까. 연약한 생명을 책임지는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번 더 쓰다듬는 일뿐이다.

강아지를 처음 집에 들였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시간 고민했고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확신했건만. 한 생명이 내 손바닥에 쥐어진 순간 견딜 수 없이 버거웠다. 이 친구가 적응하는 일주일 동안 생명의 무게를 깨달은 소녀는 함께 두려움에 떨었다.

 

 학창 시절에는 사고 쳐 놓고 되려 어깨의 힘을 잔뜩 주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

 

 당당한 말과는 다르게 책임은 부모님이 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뒤를 따라갔다. 한평생 무언가 제대로 책임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이가 품은 확신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데려온 순간에야 깨달았지만.

 

 선택했으니 책임져야지.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나를 자주 당혹스럽게 만들고, 웃게 하고, 울게 하는 동거견은 사랑과 사랑을 선택함에 따른 책임을 알게 해주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려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 알고 싶고, 다가가고 싶고, 깊은 사이가 되고 싶은 욕심을 누른다.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설득한다.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관계에 대한, 내 감정에 대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유보하기 위해 시선을 피한다.

 

 최근 나를 마주한 사람들은 나의 옆얼굴을 더 많이 보았겠다. 눈빛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눈을 마주칠 준비가 안 됐다. 영글지 않은 마음이라.

 

 “한 번 만나보고 아니면 헤어지면 되지.”

 

 가벼운 혹은 유쾌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상대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에게 상처받아 강아지와 살고 있는 사람이 인연을 시작했다면, 틀림없이 진심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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