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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화 Mar 07. 2024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비교가 아닌 다름으로


 일주일 정도 휴가를 보내고 있어요. 알람 없이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동거견과 산책하러 나가요. 출근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느긋하게 걷고, 의자에 앉아 쉬기도 해요. 매번 ‘빨리빨리’를 외치던 아침 산책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에요. 돌아와서는 밥을 지어 먹어요. 주로 볶음밥을 해서 점심까지 해결해요. 그리곤 요가를 갑니다.

 돌아와서는 다시 산책을 다녀오고, 아까 만든 밥을 먹고 낮잠을 자요. 찌뿌둥할 때쯤 커피 하나, 고심해서 고른 디저트 하나 사와 책을 읽어요. 눈이 피곤할 때쯤 수영장에 다녀와요. 너무 오래 쉬었더니 30분도 힘들어서 물장난하고 오는 셈 치고 짧게 하고 옵니다. 밥을 먹고, 마지막 산책 후 시간을 보내다 잠에 들어요. 고작 며칠 푹 잤는데 다들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걸 보면서 쉬길 잘했다고 다시금 생각해요.

 

 한 템포 멈추는 것도 쉽지 않네요. 브레이크 밟듯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반사적으로 누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회 체제에 맞게 프로그래밍 되어버려 브레이크를 누르기 전에 수십 번 고민을 하고 크나큰 결심을 해야만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어버렸어요.

 

 단조로움 속에 평안이 메워지는 하루하루. 무용하지만 내게는 유용한 시간.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건 시간뿐. 제 하루는 판단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린다면 조금 이상한 것들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원하는 것들. 저만의 호, 쾌. 누구나 상식선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들뿐이죠.

 

 그럼에도 누군가는 제게 묻더군요. 수영 얼마나 했느냐고. 유일하게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을 파고 들어요. 얼마나 즐거웠는지보다 얼마의 시간을 썼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에요. 당당히 말해요. 20분이요. 그거 할거면 뭐 하러 가냐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데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오랜만에 좋아하는 걸 원하는 만큼 했고, 너무 만족스러운데. 1시간을 채울 체력은 없고, 30분을 채우는 것도 원해서가 아닌 이 정도는 해야 의미 있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하에 내리는 도출인데. 좋아하는 걸 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단 5분, 10분이라도 만족스러우면 된 게 아닐까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거 할 거면 뭐하러 하냐고. 저는 딱 그만큼만 하고 싶은데 말이죠. 딱 그만큼이 제 마음에 드는걸요. 어쩔 수 없어요. 휴가도 여행 가는 것보다 안정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일상을 보내는 게 더 만족스러운걸요. 여행은 인위적이지만 현실적이에요. 일상은 현실적이지만, 원하는 일상을 보내기 위해선 인위적이죠.

 어딘가로 도피하거나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남아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행보다 원하는 일상을 가꾸는 것이 제게 필요했던 거예요.

 

 누군가는 한창 일할 때 놀고 있냐고 핀잔을 주지만 편안히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쉬어야 해요.”

 

 영영 놀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냥 제 주기에서는 지금이 쉬어야 할 때라 쉬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다는 사실이고요. 물살을 따라가다 흐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물 밖에서 물살을 지켜보고 있으면 참 평온하지요. 요즘 제가 그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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