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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Jul 01. 2024

나의 최애 문화유산은?

오래 느긋하게 머물 강진 1

나의 최애 문화유산은? 


여러분의 외국인 친구가 곧 한국을 방문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여러분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우리 전통문화유산은 무엇인가요?     


금 알갱이로 송골송골 수놓은 화려하고도 정교한 신라 금관을 비롯한 금제 장신구인가요? 아니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울고 갈 반가사유상? 그도 아니면 단단한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한 8C 신라 불상(석굴암 같은)과 석탑인가요? 누군가는 돋보기가 필요한 초정밀 마이크로 세계가 펼쳐지는 고려 불화를,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것이 진짜 보름달인지 헷갈리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꼽을지도 모르지요. 무엇이든 간에 각자의 마음속에 경이로움과 감탄의 문화유산 하나쯤은 품고 있을 텐데요, 나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한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예술 작품은 도자기입니다. 그 황홀했던 첫 만남의 순간은 잊을 수가 없지요.   


신라 부부총 금귀걸이(5C),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6~7C), '분청사기·백자실' 달항아리(17C)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이지요(국박 제공)


사실 우리 문화유산 중 양적으로도 가장 많은 것이 도자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후 ‘국박’으로 줄여 씀.) 소장품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국박 3층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그도 분명 ‘청자실’과 ‘분청사기·백자실’에서 수준 높은 도자의 세계를 만나 눈 호강을 하겠지요. 범접하기 어려운 '차도녀(차가운 도시녀)'처럼 도도하고 귀족적인 고려청자, 익살스럽고 수더분한 분청사기, 마음을 정화시키는 순수함의 극치 조선백자, 그 어느 것에서도 눈을 뗄 수 없을 테니까요.   


첫눈에 내 마음을 앗아간 쪽은 차도녀 고려청자였습니다. 맞아요. 첫사랑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고려 지배층이 사랑한, 그들의 화려하고 세련된 취향이 반영된 내 첫사랑 고려청자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앗! 도자기에 문외한이라는 이유로 이쯤에서 '닫기'를 누르... 려고 하셨다면 부디 새로운 미에 눈 뜰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길! 도자기라 하면 취미로 삼기엔 높은 장벽이 있을 것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감상 수준에서 큰 어려움은 없지요. 우리에겐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안이 있으니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당당하게 즐기면 그만입니다.


도자기 감상 초보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 하나를 드린다면,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인정받은 국보·보물급 명품을 먼저 감상하는 것입니다. 최고 품질의 빛깔과 광택, 조형, 문양 등을 잘 기억해 두고 그것으로 기준을 삼는 것이지요. 그렇게 안목을 키워가다 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산업도자기와는 다른 손맛도 느껴지고 어느 순간 장인의 마음도 느껴질 것입니다. 자, 이제 국박 3층 ‘청자실’의 차도녀들을 구경하러 가보실까요?

         

2022년 리뉴얼한 국박 3층 ‘청자실’ 입구인데요, ‘백옥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영롱한’이라는 비취색 글자는 예쁘지만 백옥처럼 푸르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군요.ㅎ
전체적인 조도는 낮추고 개별 조명으로 하이라이트를 준 청자실의 ‘고려비색(翡色)’ 공간입니다. 비색(翡色) 청자란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옥) 색을 띤 절정기의 고려청자를 이르지요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는 대나무와 그 사이를 유유히 나는 학을 상감으로 표현한 매병입니다. 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이지요.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만 같지요? (국박 제공)
음각·양각·투각·상감 등 모든 기법을 구사한 향로인데요, 압권은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귀여운 세 마리 토끼랍니다. 보이시나요?^^ (국박 제공)


고려청자의 남다른 한 끗은?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지요? 디테일(세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남과 다른 한 끗, 그 한 끗의 디테일이 그냥 ‘제품’과 ‘명품’을 가릅니다. 고려청자는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명품이지요. 그렇다면 고려청자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남다른 한 끗(아니 심지어 두 끗^^)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의 청자와는 다른 빛깔에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궁중에서만 사용하는 비밀스러운 색깔이란 의미로 청자의 빛깔을 비색(秘色)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청자를 비색(翡色)이라 칭합니다. 1123년 고려에 다녀간 북송의 사신 서긍(1091~1153)은 『고려도경(高麗圖經)』(1124)에,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들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 술병의 모양은 참외와 같은데, 위에는 연꽃 위에 오리가 엎드린 모양의 작은 뚜껑이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생략하는데 다른 그릇과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한다.     


라고 썼습니다. 중국청자는 녹색이 두드러지지만 고려청자는 은은한 회색 빛이 감도는 투명한 비취(옥) 색으로, 비색(翡色)은 고려청자만의 '투명한 푸른 빛깔'을 표현하는 특유의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오히려 수출된 고려청자의 남다른 한 끗입니다.          


완벽한 빛깔과 조형의 참외 모양 청자가 1123년 고려에 온 서긍의 눈을 홀린 그 청자였을까요? 인종(1122~1146) 능 출토, 국보, 국박

    

두 번째는, 청자에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의 독창성입니다. 바로 상감기법이지요. 그런데 상감법은 새로운 기법이 아닙니다. 삼국시대에 이미 금속기 표면에 금, 은, 자개 등 다른 재료를 박아 넣어 문양을 나타내었으니까요. 고려의 도자기 장인들이 이 기법을 청자에 접목합니다. 학, 구름, 국화, 버드나무 등의 문양을 조각칼로 음각하고 그 음각한 곳에 백토(白土)나 자토(赭土)를 채워 넣어 유약을 발라 구워냈지요. 이것이 바로 상감청자입니다. 장인의 창의성이 발휘된 세계 도자기 역사상 유일한 장식 기법이지요. 이 같은 실험과 도전이 남다른 한 끗을 만들어 내어 고려청자를 명품 반열에 올린 것입니다.    

    

한국 도자기에서 최상의 명품으로 꼽히는 구름과 학을 상감기법으로 빼곡히 새겨 넣은 매병입니다. 그 화려함에 어질어질합니다. 국보, 12C, 간송미술관

 

국보급 고려청자는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자, 그렇다면 이러한 명품 고려청자는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요? 현재 전하는 국보·보물급 고려청자의 약 80%는 전라남도 강진이 고향입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할 청자를 제작하는 관요(官窯)가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옛 청자 가마터 188개를 발견했는데 이는 전국 청자 가마터 400여 곳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고려사』 의종 11년(1157)에 ‘양이정(養怡亭)에 청자기와를 덮었다’라고만 전할 뿐 전해지는 실물이 없어 오랫동안 도자와 문화재 전공자들의 애를 태운 청자기와의 존재가 기적처럼 드러난 곳도 바로 강진이지요.

    

반짝이는 청자기와를 덮은 건물의 화려함을 상상해 볼까요?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출토된 청자 기와의 수막새와 암막새입니다. 12C, 국박
고려사에 전하는 유일한 고려청자 기록인 청자기와를 덮은 양이정이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국박 거울연못에 재현한 청자정의 모습입니다.(visitseoul.net 제공)


그런데 왜 하필 수도인 개경으로부터 수백수천 리 떨어진 땅끝 강진에 관요를 설치한 것일까요? 가마터의 위치를 보면 강진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용문천을 따라 밀집해 있는데, 이 지역은 질 좋은 고령토가 풍부하고 산이 많아 땔감으로 쓸 나무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마 구조에 적합한 적당한 경사가 있는 지형이고 무엇보다 완성된 도자기를 운송할 뱃길 이용이 용이했기 때문이지요. 도자기를 수레에 싣고 덜컹거리며 육로로 운송할 수는 없으니까요. 강진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청자는 해로를 통해 안전하게 개경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납품되었고, 무덤의 부장품으로 소중히 다루어지다가 오늘날 박물관에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대학원 시절, 호기롭게 신청한 도자사(陶磁史) 수업에서 복잡한 화학조성과 칠판을 가득 메운 원소기호에 기가 질렸지만 시간이 흘러도 수업 중 귀에 딱지 앉도록 들은 강진의 청자 가마터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지요. 결국 10년 전 처음 고려청자 가마터를 찾아 강진 땅을 밟게 됩니다.

      

강진군은 바다가 깊숙이 파고 들어온 강진만을 끼고 양쪽으로 바짓자락이 펼쳐진 듯 생겼습니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지역이 대구면 일대로 188곳의 청자 가마터가 발견되었지요.


도자기 사랑에서 시작된 나의 강진 여행이 강진앓이의 서막이 될 줄이야! 다음 글에서는 그 후 해마다 달려간 청자의 고향이자 산해진미 가득한 남도한정식의 고장인 전남 강진으로의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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