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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왕띵킹 Thinking Jan 05. 2022

비누의 반란 - #1. 라뷔게르(La Vigueur)

이건 그냥 비누가 아닙니다.  진짜 비싼 비누라고요.


대머리 다 모여라

머리바바

탈모닷컴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 주체가 안 되는 몇 사람을 빼고는

"대머리 다 모여라" 를 보고는 뜨끔할 수 있다. 나를 누군가 부르는 건가



저것은 풍자에 가깝다.

한국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탈모 사이트 중 하나의 이름이니까.

가발 광고를 하고 있는 중년의 연기자를 제외하면

한국 내 셀럽 중에서도 대머리인 자신의 모습을 매체에 드러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미국같은 나라에서도 하물며 대머리로 활동하는 배우나 스포츠 선수들이 적지 않은데, 한국은 왜?



 "대머리"는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이기에, 악플로 달아봤자 법적 효력도 가질 수 없다는데

왜 탈모인들은 대머리라는 말에 이토록 민감하게 굴 수 있을까.


그것은 한국이 유독 특히, 모발의 유무에 민감하게 굴기 때문이다.
누가 태어날 때부터 나의 탈모 시기를 예감하겠는가.

50대 이상의 탈모인들은 나이 탓이라고 얘기했을 때 그러려니라도 하지.

스트레스나 질병의 요인으로 온 이른 탈모에 대해서는 대부분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다.

적절한 자기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로 보고, 사회적으로 이말저말 나오기 딱 좋다. 자신을 일종의 브랜드로 보여야 하는 직종에서는 더욱 더. 사람 만나며 직장생활하는 대부분은 다 여기에 속한다는 게 문제지.




내 경우엔 광고촬영이 끝나고 광고모델, 촬영팀 스탭 다 함께 다 같이 사진을 찍는 일이 흔했는데,

아무리 확대해도 깨지지 않는 고화질 사진 속에서

두피가 너무 많이 보이는 자신의 머리통을 보면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지?


① 머리 감기 전, 브러쉬로 머리카락을 살살 빗고 먼지를 털어낸다.

② 자기 전에는 하루동안 먼지와 열 내느라 고생했던 두피를 마사지하고 감은 뒤 꼭 말리고 잔다.

정석이지만 매우 귀찮은 방법.

벼락치기 시험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샴푸와 린스, 알약을 찾아 나선다.


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전을 받지 않아도 되는

탈모에 좋고 두피에 좋다는 샴푸는 비싼 가격에 눈을 감고 샀다.

여기에는 미역줄기 같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는 모델의 개런티와 매 분기마다 있는 광고 촬영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안다. 아니까 눈 감고 산거다. 그래도 추출물 X%에 희망을 건다.


몸의 단백질 구성을 돕는 비오틴이라는 성분을 알게 되고

이게 내 검색어 알고리즘에 뜨면서 라 뷔게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머리 감는 비누 사기 = 내일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의 일종으로 박수치던 내가

라뷔게르의 샴푸바를 샀던 건, 다 그 비오틴 때문이었다.


이 샴푸로 머리를 감았더니 머리털이 아닌 다른 데에(?) 털이 더 나는 것 같다는

무안단물같은 얘기를 들었을 때 '뭐야 이거.' 싶어서 들어간 공식 판매 사이트에서

나는 3초 만에 다시 뒤로 가기를 눌렀다.





?

????

왜 시트콤에서 나오는 1960년대 미국 가정집 인테리어가 여기 느껴지는 거지

100g 도 안하는 비누가 왜 만삼천원이지


소비재의 실수요는 당근마켓에서 확인하기에,

새상품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사봤다. 이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도 계실 것이다.

모든 마케터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그런 것이다.



천연 성분때문에 쓰다 보면 가뭄든 것처럼 비누가 쩍쩍 갈라졌지만

비누 거품망에 넣으면 머리카락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그 거품이 아까워

수세미 받침대에 놓고 그냥 머리에 문질러서 썼다.



총 3개의 라뷔게르 샴푸바를 써오며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 머리는 얇은 편이니까.

그렇지만 하루만 감지 않아도 간지러웠을 내 머리가 확실히 달랐다.

이틀 이상 머리를 감지 않은 경험을 꽤 여러번 거쳤지만, 안 간지러웠다고.


무안단물 같던, 어디가 됐든지(?) 이 비누를 쓰면 털은 자라납니다! 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예방을 하고 있는 셈이고, 치료제가 필요하신 분들에게는 희망 정도가 되겠다.

(갈라지는 비누 사이에 끼어 빠지는 머리카락 여덟 가닥 이상을 못 본 척할 수 있는 분들에게만)


그 이전에 사들이고 그렇게 써댔던 탈모방지 샴푸들에겐 할 말이 이것밖엔 없다.

"늦었다고 했을 때, 진짜 늦었댔어. 그러니까 걍 그 땐 그게 최선일 수 밖에."



+

내 라뷔게르 샴푸바는 달처럼 여위어가는데, 공홈에서 3개월째 품절이다.

오늘도 마켓컬리와 당근마켓, 네이버와 구글을 넘나들며 '라뷔게르 샴푸바'를 검색하고 있는 나.

리패키지를 예고하며 2월엔 팔겠다는 라뷔게르.

++

리패키지같은 소리하네. 샴푸바가 아이돌이야 뭐야.





@ 출처 : 라뷔게르 공식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https://www.la-vigueur.com/ , https://www.instagram.com/p/CYQKmSSpP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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