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만족감
말레이시아 인턴 시절 생활비도 빠듯한 그 때
약속시간에 여유가 생겨 둘러보듯 들어간 티파니앤코 파르나스 점에서
나는 저 은반지를 발견했다.
너무 이쁘다.
갖고 싶다. 얼마지?
물어보고 한참을 바라보다 나왔던 그 날이 생각났다.
말레이시아에선 테 타릭이나 커피 한 잔이 800원이던 그 때.
그 때 저 반지가 25만원이었던가... 당연 다음에 올게요 미세스 하고 돌아설 수 밖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8년이 지난 이 때
한국에서 저 반지를 찾았더니
이제 가격은 40만원대를 훌쩍 넘기고, 한국에선 아예 단종이란다.
한국 소비자들의 은반지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한 모델은 아예 아웃되는 마당에
눈돌리면 180만원짜리 금반지와 티타늄반지들이 번쩍번쩍
(사실 니즈가 무슨 소용인지. 그냥 돈 안되는 거 같은 은반지는 안 만들고 싶다는 거겠지.)
그렇게 영 인연이 닿지 않는 듯 하더니,
이렇게 운명적으로 할인가격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전에 티파니 매장에서 껴보고 사이즈를 메모장에 적어둔 게 생각나
부랴부랴 켜서 주문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하기 까지
그 모든 게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바야흐로 티파니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뭐 얼마나 돈을 벌어야 카카오톡으로 300만원짜리 목걸이를 턱하니 줄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오드리 햅번의 기분이 우울하면 늘 택시를 타고 찾는 고요한 티파니의 매장.
10달러 아래의 물건을 찾고 있다고 해도 이름을 새길 수 있다고 말해주는 우아한 매장.
이제 한국에서의 티파니는 더 이상 그 접근방식의 매장은 아닌 듯 하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샤넬 매장앞에서 밤을 새며 오픈런을 하는 마당에,
티파니가 카톡으로 반지랑 목걸이를 판대도 뭐가 그리 대수일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티파니는 내게 속하는 소중한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은 물욕과 소비욕구를
고고한 방식으로 충족시켜주는 일종의 안전핀 같은 거였다.
티파니에서 산 내 반지를 누가 그렇게 유심히 보겠는가.
나만 알지.
근데 살면서 모두 몰라도 내가, 나는 안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무거운 일인지 안다면
카톡으로 티파니를 사던, 오픈런으로 샤넬을 사던
그것때문에 한달동안 김에 밥만 먹고 살아야하더라도,
이게 큰 위안을 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서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다이아몬드로 반지를 만들어 서로가 끼는 것 처럼
쉴 새 없이 바뀌는 공간 속에서 바뀌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작고 소중하고 비싼 무언가가 변하지 않고 번쩍거리며 주는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티파니를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는 등
참을 수 없을 때면 내 중지에 끼어진 티파니 반지를 돌리고 빼고 다시 끼는 과정을 반복한다.
고요해지는 마음에
이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p.s.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손을 놀린다면 슬라임이나 만져도 될 것을 이라고 생각하는 당신.
저 반지도 사고 슬라임도 사는 사람한테 돌 던지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