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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서 쉬는 남자 Mar 13. 2023

삼무요리사

두 번째 삶

 작은 스몰비어집에서 아침에는 글을 써 감성을 팔고 저녁에는 요리를 해 흥을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리는 언제나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글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역과 함께 기울어진 가세로 당장 근무시간이 길어도 페이가 높은 주방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꿈을 묻고 현실을 파헤쳐 악착 같이 살았다. 하루 3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과로의 영향으로 이석증이 생기거나 족저근막염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 상태가 되어버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원해지게 됐다. 그렇게 6년을 살다 보니 20대에 나는 외식업 프랜차이즈 메뉴개발팀 팀장이 돼있었다. 누군가는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짧은 시간만에 8개의 브랜드를 가진 외식업 프랜차이즈 메뉴개발팀으로 일한다는 성과를 낸 것이 대단한 노력의 결실이자 큰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들을 들어도 씁쓸할 뿐이다. 누군가는 나를 부럽고 치켜세워주는데 나는 그것에 관련해 미소 한번 지을 수 없는 게 얼마나 큰 허무인지 느낀 사람만 알 것이다. 그렇게 여전히 보람 따위 없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나날들을 보내며 지금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20대의 끝을 맞이한 나에게 두 번째 인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더 잘할 수 있는 그리고 더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능동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이 기회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사회적 이슈 같은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이 두 번째 인생의 기회는 오로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찾아온 것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나와 나의 대화 주제였다. 이 간단하고 명료한 주제를 통해 나눈 대화로 나란 주체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지고 지금까지 무분별하게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융화돼 단 한 가지의 길을 제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시선 따위가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만들어준 길을 걸어가는 또 다른 인생을 걷게 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삼무요리사'라고 설명한다. 나에게 '삼무요리사'라는 수식어는 '호'와 같고 외부적(사회적)인 나 자신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현업 종사자들끼리 농담 식으로 '이 바닥은 자격증, 학과, 인맥 없으면 성공할 수 없어'라고들 말한다. 저 세 가지가 모두 원활하게 있다면 그 사람은 왕도를 밟아 빠르고 탄탄하게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대체로 애매한 주방에 틀어박혀 요리사가 3D 직종임을 몸소 알려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의 호인 삼무요리사는 저 세 가지가 없는 요리사 즉, 삼(三) 무(無) 요리사임을 뜻한다. 나는 저들이 말하는 대로 애매한 주방에 박힌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한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나름 괜찮은 사무실에 앉아 현장에서는 생각할 수 없던 여유로운 컴퍼니 라이프를 보내고 있으며 회사에서는 내 존재와 도움을 필요로 하며 나는 그것에 만족할 만 결과를 도출할 역량이 된다. 또 여러 기업의 스카웃 제안에 메일을 비우는 것이 귀찮다 느끼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삼무라고 할지 언정 견습 요리사들이 바라는 환경과 어느 정도 통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들의 말을 부정하는 표본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사회적 통념을 거스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서 나 자신을 삼무 요리사라고 칭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삼무요리사를 호로 사용하려 한 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삼무요리사는 역설적인 존재다.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사가 꿈이라면 관련 대학을 나오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자격증 취득은 관심만 있다면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병행이 가능하다. 인맥은 사실 현장에서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무요리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말 그대로 요리에 대단한 꿈과 열정이 있다기 보단, 진입 장벽이 낮고 나처럼 당장 근무시간이 많은 것은 신경 안 쓰고 다른 일들에 비해 페이가 높아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사람들은 노동의 강도와 근무 환경, 복리후생등에 의해 금방 주방을 떠난다. 단순히 돈을 위해 시작하기에는 너무 포기할 것이 많은 것이 요리사란 직업의 현실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분명히 나와 같이 당장의 삶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오로지 요리라 판단해 주방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그들이 하루빨리 삼무요리사에서 일반 요리사로 되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서 삼무요리사는 말을 만들고 그것으로 내 호로 이용해 활동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단순한 주방 일이 아닌 삼무요리사들이 본사에 채용 돼 넥타이 매고 일을 할 수 있는 방법까지 모든 경험을 전수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삼무요리사를 호로 사용하려 한 가장 큰 이유이다.


 앞서 글을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는데 그것은 그만 뒀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본업인 요리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글을 쓰는 작가의 삶 또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 시작은 공부였다. 작문마저 0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본래 현업에만 충실할 때는 여유롭게 일어나 여유롭게 출근하고 최선을 다해 근무 뒤 집에 와서 쉬기만 하면 되는 삶이었다. 하지만 대학 강의와 그에 따른 과제 및 시험공부 그리고 틈틈이 필사나 작문 연습을 하루에 넣다 보니 말 그대로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미라클 모닝이고 나의 미라클 모닝 기준 시간은 5시다. 원래는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까를 고민했지만 평상시에도 출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그날의 남은 시간은 내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으로 취급했다.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될 수도, 아니면 번개 회식이 잡히거나 등의 여러 이유로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위한 계획을 짜고 그것을 이행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미라클 모닝이다. 말 그대로 그 출근하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은 오로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인 것이다. 


 5시부터 7시 30분까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약 2시간 30분의 힘은 대단하다. 특정 창작물이나 그 외 작업물을 만들어 낼 때 내 통제 권한을 벗어난 시간에서의 4~5시간 이상의 효율을 내보이기도 하며 이 시간대의 독서는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시간으로 인해 나는 작가란 목표에 더욱 빠르게 다가갈 수 있고 '작은 스몰비어집에서 아침에는 글을 써 감성을 팔고 저녁에는 요리를 해 흥을 파는 사람'이란 이상에 더욱 근접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미라클 모닝, 말 그대로 나는 단순히 남들보다 일찍 일어난다는 행위를 통해 매일 아침 기적을 만난다. 내가 꿈꿔왔던 이상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너무나도 기적 같은 기적에 말이다.


 과거의 삶(삼무요리사)을 토대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삶으로 구성된 요즘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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