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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임 Nov 17. 2022

[장기연재] 망한 회사 회고록 1편

사업을 모르고 성공하려면 능력이 매우 출중하거나 천운을 쥐고 태어나야한다

마침내 회사는 망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2016년부터 길고 길었던 사장으로서 생활이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건 일단 매우 시원합니다. 이렇게 시원한 기분이 서운한 기분보다 더 강렬한 것은 아무리 제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제 평생의 대부분을 조직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잘한다가 익숙한 저에게 지난 6년간 "사업을 못 하는 사장"으로서의 생활은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불편한 시기였습니다. (남들은 벼락거지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거지였던!)

그러나 기억을 잃고 다시 6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같은 선택을 하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사업하다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 사실 그거면 충분히 남는 장사아닌가! ㅋㅋㅋ) 저는 6년 간 회사를 운영하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실패를 통해서도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공에서 얻는 배움과 실패에서 얻는 지혜는 그 결이 많이 다릅니다. 당연히 실패보다는 성공이 달콤하겠죠. 그럼에도 제가 생각하는 실패에서 얻는 지혜의 좋은 점은 바로 실패의 법칙을 체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공과 달리 실패의 방정식의 종류는 몇 개 안됩니다. 이것을 건강하게 경험한 사람은 적어도 다시는 실패를 하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생존 경험은 성공으로부터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죠.

 

사이어인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 전투력이 올라간다


현재 인터넷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신화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멋지지만 평범한 사람이 그 스토리와 똑같이 한다고 동일한 성공을 만들 확률은 0입니다. 반면에 저와 같이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고 동시에 실패에서 얻는 지혜를 잘 정리해 놓은 것은 더더욱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저의 이야기를 제 회사의 흥망성쇠...아니 망망쇠쇠를 통해 제 스스로도 정리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가지려 합니다. 특히 요즘 20대 젊은 친구들...단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친구들에게 실패 회피, 성공지향의 삶이 얼마나 손해인지도 써보려고 합니다.


자. 제가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계속했던 질문들이 있습니다.


나의 어떤 판단이 사업을 망하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은 의심되는 원인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해서 계속 구렁텅이로 빠지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들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섹션을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1. 사업 기획의 문제

2. 생산 관리 문제

3. 팀원 구성의 문제

4. 브랜딩 전략 문제

5. 마케팅 전략 문제


먼저 사업 기획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망한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사업이라는 것은 기획에서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획자가 적절한 시기를 보았고 적절한 대상을 결정해서 적절한 솔루션을 내놓는다면 그 다음부터는 솔루션을 현실로 꺼내는 실행력과 Time to market. 즉, 얼마나 정확한 시간에 전달하는가 두 가지만 수행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사업 기획에 대해 반추를 해보려고 했는데요. 이게 단순하게 사업 기획 내용에만 문제가 있었나?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내용은 사업 기획을 하던 시기에 제가 그 기획서를 썼으니까 제가 문제가 있으면 기획도 문제가 있겠죠.


그래서 만약 여러분도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면 그 일의 직전 과거를 꼭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의사결정 매커니즘은 항상 어떤 생각이 있고 그 생각에 기반하여 액션을 하게 됩니다. 복잡한 의사결정일수록 액션부터 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당시에 저는 어떤 과거가 있었냐면,


회사에서 하는 일이 너무 싫었어요
.
이제 그만!!!!

LG전자 말년에 일명 '퇴사제조기'라고 불리는 사람이 팀장으로 오게 되면서 완벽했던 우리 팀이 작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저는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이 퇴사 제조기는 피해자들에게 집단 소송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소송까지 가진 않았다고 하는데...ㅜㅜ) 그런데 하필이면 그 당시에 저는 개인 사생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거든요. 저를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회사생활마저 무너지자 저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고요. 그래서 저는 UX디자인에서 하는 일들. 특히 UX디자인하는 관종 IT힙쟁이들이 하는 일들 이런게 너무 너무 싫었어요. 거의 혐오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이런 감정적인 상황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었답니다.


자. 그런 과거의 제가 만든 2016년 사업기획서의 일부를 봅시다.

다시 읽으니까 디게 창피하다!


"대박을 꿈꾸는 스타트업과는 달리" -> 그럼 소박을 꿈꿔야 하나?

"요즘 세태와는 반대의 생각" -> 마이너에 마이너로 가겠다는 건가?


벌써 여기서 힙쟁이들에 대한 반발심과 혐오가 보이지요? 사실 저는 사업을 통해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너희들이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간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들보다 잘하니까...비록 회사에서는 정치바람을 탄 퇴사제조기 같은 인간에게 내가 발렸다만 사회에 나와서 계급장 떼고 붙으면 내가 이길거야. 나는 그것을 증명하겠어. 뭐. 이런 뒤틀린 저의 내면이 확 느껴지는 그런 서론입니다.

오만 방자한 마음이 가득한 출발이었어요.



사실 시장은 잘 봤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사료나 샴푸, 약 등은 시장이 활발했지만 용품 시장은 열악했습니다. 전부 저가형 중국산이 대부분이었고 디자인 퀄리티가 낮아서 점점 높아지는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맞았어요. 그래서 국내에서 반려동물 용품 만드는 그 어떤 회사보다 먼저 "디자인"을 도입해서 고급 디자인 용품 시장을 저희가 열었습니다. 첫 궁디팡팡마켓에 나갈 때만해도 저희 제품 독주였어요. 지금은 잘 나가는 브랜드 부스가 저희 건너편에 있었는데 저희 제품이 매진되어서 판매를 하고 싶어도 더이상 못하는 상황이 되자 상대편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하는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모순이 이 기획서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판단했어요. 애초에 그지같았으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고 규모를 키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포기도 빨랐을 겁니다. 그런데 시장은 어설프게나마 제대로 읽었다. 그러나 대표의 정신상태가 썩었다. 그리고 대표의 역량이 애매하게 좋았다. (=국면을 전환할만큼 실력은 아니다) 이 세가지가 절묘하게 배합이 되면서 멈출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고 지난 6년간의 사투가 시작된 것이죠.


기획서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본다면 사업 기획서는 회사의 역량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입니다. 기획서에는 회사의 비전과 대표의 철학 그리고 회사가 어떤 마일스톤으로 대표의 철학과 회사의 비전을 달성해갈지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표의 철학이 사업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저의 기획서를 보는 순간, 아 이 회사는 산으로 가겠구나가 바로 읽을 수 있는 겁니다.

뭔가 성찰이 덜 된...사유하지 않는 멍청한 다수를 비판하는 철학은 요즘 유행하는 '정치적 올바름' 또는 '환경적 가치'를 코스프레하는 것과는 외형 상 비슷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뭔가 우월해 보이는 것을 실상 멍청한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전략적인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제 사업 잘 되라고 본질을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사업을 전개한 것이 아니죠. 그래서 사업을 기획할 당시에 저는 이런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진심 가득한 마이너 덕후 회사를 만들려고 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사업의 비전도 더 많은 고객에게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반골 철학과 맞는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겠지요. 그랬다면 아마 저는 계속 사업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May be...



영화 '달콤한 인생' 중 백사장의 대사
뭐야 그 표정은? 억울해? 어? 억울한거야?
니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자꾸 딴 데서 찾는거지?
아. 그럼 날 찾아오면 안되지. 이 사람아~
마!!!!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


오늘은 제 기획서를 보면서 시작부터 싹수가 노랬던 것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봤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시장 규모나 수익 모델과 같은 복잡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렇게 문제의 답은 사실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내가 병신같아서 지금 비참한 결과가 있고 내가 쓰레기라서 내 주변에 안좋은 사람들이 있는거고 내가 잉여인간이라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제도적으로 또는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 보호 받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것은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기 보단 상대측의 배려고 호의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만 바꿀 수 있고 나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나를 향해 있을 때 진심으로 감사해야한다는 것을 사업을 통해 배웠지요. 그리고 이 배움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추가적인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내가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고 그것은 내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 모르게 되고 그것은 제 사업처럼 결국 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어떤 단점도 커버할만큼 천재적인 전문 역량을 가지고 있거나 천운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면 제 말처럼 하지 않아도 잘 되실거에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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