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들의 대응 전략 관점에서
한달에 10kg 감량!
이런 광고 보신 적 있으시죠? 광고를 믿고 갔다가 돈만 버린 경험이나 뉴스를 보신 적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기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사기 광고를 매우 싫어합니다. 그런데 디자인 분야에서는 이런 광고가 정말 많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도 정답지를 알 수 없고 심지어 시대에 따라 그 정답지라고 여겨지는 대상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이 하는 사람마다 다르지 않잖아요. 디자인 분야는 누가 이야기하냐에 따라 마구 달라집니다. 뭐. 80년대 90년대 피트니스 이론이 정립되기 이전에 대충 알아서 운동하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근에 저는 꽤 규모가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탈퇴했습니다. 그 커뮤니티는 제 가치관에서는 문제가 많은 커뮤니티였지요. 표면적으로는 주니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모양이었지만 사실은 주니어들 머리수를 모으기 위해 낮은 수준의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한달에 10kg감량처럼 장사 속이 보이는 그런 커뮤니티였습니다. 장사 속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커뮤니티가 규모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을 경제 논리로 말하면 디자인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고 서비스 디자인으로 이야기하면 backend customer과 frontend customer 양쪽을 공략하는 서비스가 된 것이죠. 장사로 이야기하면 '타겟팅이 잘 되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 양면 시장의 특성을 살펴보면,
학교 교육이 붕괴되고 세대간 지식전달 채널이 사라지자
사교육 환경에 익숙한 20대들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나섰고
돌고 돌아 그 커뮤니티에 들어오게 된것이죠.
동시에...
각자 도생이 필요한 직장인들은
나름 현업 종사자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유명세를 떨칠 무대가 필요했고
그 무대가 바로 그 커뮤니티였던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가게 되면 Community Speaker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지 알게됩니다. 저는 이것을 마치 대학교수가 예능 패널로 전향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봅니다. 본체는 대학교수이지만 실체는 예능인인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정보를 전달할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가지고 있다하더라고 일순간에 지나지 않겠지요. 운이 좋아 Speaker로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한 두 번 쓰임을 당하고 팽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냥 하던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먼저에요.
어쨌든 해당 커뮤니티는 두 세력간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커뮤니티는 "디자인"커뮤니티였는데요. 틀딱에 고인물인 제가 전문가 지망생들과 주니어들이 가득한 이 커뮤니티에 몸을 담고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사용할 잘못된 실제사례 수집'입니다. 그 곳에는 무수히 많은 디자인 적폐 사례들이 가득했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게 편리하게 잘못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오남용 사례를 가상으로 구성하는 건 너무 귀찮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데 최근 그 곳을 탈퇴한 이유는 바로 Generative AI 때문입니다. UX디자인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온갖 이론과 방법론으로 뭘 어떻게 했건) 이것입니다.
Interface mismatching
인터페이스를 기준으로 양쪽의 System이 다르기 때문에 두 인터페이스를 연결할 수 있는 일종의 bracket을 구성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자동 결재 시스템 사이에는 키오스크라는 인터페이스가 존재합니다. 인간이 자동 결재 시스템에 올바른 Task를 전달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리서치 또는 테스트를 수행한 결과를 키오스크 설계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 더 들어가 볼까요?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언어가 다른 인간(외국인), 노인 등 여러가지 제한 요소들이 생겨납니다. 이들과의 새로운 Interface가 조성되고 이 Inteface를 연결하는 작업이 바로 UX디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machine이 human의 언어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machine to human의 Interface는 과거와 100% 달라졌습니다. 이제 machine과 human은 interface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죠. 즉, 수십년 전에 나왔던 Ubiquitous Invisible Computing이라는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입니다. 20-30년 전에 컴퓨터가 존재하지만 컴퓨터를 느낄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올거라고 했을 때 전부 비웃었었는데요 이제는 정말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디자인 분야로 전환해서 생각해보면, 이제는 UX라는 것을 고려할 이유가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자 경험의 범주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저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탈퇴한 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주 좁은 영역의 UX디자인, 무식한 사람들이 UX/UI라고 쓰고 있는 그 분야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애플이 만든 대GUI시대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기계가 인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듯는데 버튼의 크기나 위치 색상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걸 피그마같은 걸로 예쁘게 잘 그려서 개발자에게 잘 전달하는게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될까요? 저는 평소부터 좁은 의미의 UX디자인, 즉 GUI 디자인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건 전문 기술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명시적은 표현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커리어 관점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주니어들에게는 가혹한 세상입니다. 초중고 무너진 교과과정에 누가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현실 세계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대학교육을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니고 가파른 물가 상승, 부의 불균형에서 오는 박탈감, 극단적인 정보공유로 인해 제대로 무언가 근성있게 하기 너무나 힘든 세상이라고 봅니다. 근성있게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커리어를 쌓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요.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했다기 보단 그냥 눈 떠보니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몇몇은 직접 이것저것 봐주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길이 다르고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세부적인 가이드는 다르겠지만 변하지 않는 가르침은 근성있게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입니다. 뭐. 근성 없이 한번에 척척 해내는 능력이 있으면야 이런 소리 안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사람들이 근성까지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본기인 근성을 키울 필요가 있는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디자인을 왜 선택했는지 제발 좀 고민을 해보면 좋겠어요. 내가 물리학과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냥 수능 점수 컷에 맞춰 진학했다 하더라도 물리학과 나오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다른 비전공자는 하기 힘든 그런 부분이 있다구요. 그런데 디자인은 그렇지 않아요. 학원 나온 친구들, 아니면 방구석에서 그냥 끄적거린 애들이 전공자보다 잘 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현격히 높아요. 이러한 현상은 비실기로 전환한 이후에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Z세대만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제가 젊은 시절에도 그림은 안되고 창작능력은 떨어지면 선택하는게 UX디자인이에요. 특히 디자인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머리가 좀 돌아가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으면 UX디자인으로 넘어오는거죠.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도피처' 또는 '자기합리화 지역'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 이게 내 적성인가보다' 이렇게 굳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고 지금 더더욱 그렇지 않아요. 저는 데이터도 다룰 수 있고 회로도 만지고 프로그램도 짜고 디자인도 하고 다 합니다. FM대로 이야기하면 UX디자인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보다 스택 상으로 한참 위에 존재하는 게 타당해요. 위에서 이야기한 커뮤니티에 있는 주니어들의 수많은 고민들 읽어보면, 결국에 내 능력은 2정도되는데 10정도 일을 하고 싶어요. 또는 10정도 일을 못할 거 같아서 불안해요. 이런 유형의 고민들이 주를 이룹니다. 매우 비이성적이고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되는 의미없는 고민이죠. 정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내가 왜 하는가에요. 이 질문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고민이거든요. 어려운 고민이라는 거 알아요. 그 고민에 대답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대부분 우울하고 불안한거에요. 그래서 해야해요. 시대가 점점 좆같아지거든요. 이 세상이 디스토피아를 향해 갈 수록 중요한 질문이 될겁니다.
마지막으로 직업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제 기술 입장에서 포인트는 딱 두가지입니다. 존나 새롭거나 아니면 존나 클래식하거나 딱 두 가지에요. 여기도 양극화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클래식을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클래식을 알면 결국 존나 새로운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근데 존나 새로운 것만 하면 매번 몰라. 그냥 주는데로 받아먹는거지. 그런 인간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전자공학에서 배우는 state machine이나 block diagram 같은 걸 이해하고 있으면 프로그래밍에서 oop 개념 같은 것을 저절로 이해하게 됩니다. 푸리에 트랜스폼을 이해하고 있으면 영상 알고리즘을 금새 알 수 있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최신 기술이라는게 결국 뿌리를 두고 있는 지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교육 방식은 그 뿌리를 철저하게 배우는 방식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이제는 존나 빨리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Application만 알게 되는거에요. 사실 활용만 잘해도 장땡은 맞습니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매번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을 풀어서 확률밀도 계산하는거 아니잖아요. 그냥 프로그램 돌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많은 멘토들이 하는 "활용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거야"라는 말에 맹점이 있습니다. 기술의 뿌리를 알고 있는 틀딱들이 더 잘해. 왜냐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주니어일 수록 기본이 되는 것들을 더 연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해요. 논문 쓰는데 표준편차도 모르면서 ANOVA 이런거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주니어가 있다면 저는 두 가지 주문하고 싶습니다.
목적있는 근성, 기본기부터
저는 10년전에 제가 쓴 책에서 UX디자인은 가짜 전문가들이 구라치는 것을 그만하지 않으면 망할 거라 예견했습니다. 그 결과, 진짜 UX디자인은 결국 UI디자인에게 먹혀버렸죠. 그래서 UX/UI디자인으로 합병되어 GUI하는 사람들 옆에 붙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현실적인 진단일 겁니다. 다시 한번 저는 예견하는데요. UX디자인은 망할 겁니다. 탈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