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선임 May 28. 2023

어른들이 20대를 빨아먹는 방법

열심히 속을 자신이 없거나 속기 싫으면 아는 게 힘

일본의 사토리 세대, 중국의 탕핑족, 한국의 Z세대들의 공통점은 많은 것들을 포기했지만 SNS만큼은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죠. 이것이 비단 지금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20대일때도 똑같았어요. 명품을 동경하고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조회수에 목을 매는 그런 일이 비단 Brand New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수퍼 old한 패턴입니다. 오늘은 그 올드한 패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야기가 더 많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합니다. 왜냐하면 이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거든요. 그래서 어른들은 이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지 않은 것이죠. 대신 거위는 죽지도 못하고 힘들게 알을 낳아야 하는 겁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중국의 탕팅족, 한국의 Z세대들을 누가 만들었냐? 그들이 정말 문제가 있는 인간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어른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부모가 만들었고 그들의 부모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 부모를 만든 것이죠.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소비하고 또 소비하고 모든 것을 소비할 때까지 소비하다가 결국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사자로 태어나도 반려동물로 사육된 사자는 덩치 큰 고양이일 뿐입니다. 저는 제 글이 잠자고 있는 호랑이를 깨울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990년대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병아리를 팔았어요.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 이런 노래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 시절 대한민국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경험한 일입니다. 당시에 문방구에서는 병아리만 판매했던 것이 아니라 자이로스코프 팽이, 불량식품 등등 가지가지 조악한 것들을 팔았죠. 그게 초딩, 국딩들에게 얼마나 큰 유혹이었는지 몰라요. 용돈이 두둑한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이 관대한 친구들은 그 병아리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이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파는 것들 모두 문제가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매번 속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문방구 비지니스는 항상 잘 되었어요.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정말 그 분들이 큰 돈을 버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다가 90년대 이전에는 없던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메이커입니다. 1992년인가요? 3년인가요? 김건모의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빅히트를 치면서 당시 그가 입고 나온 메이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사람들...아니 일부 사람들, 청담, 강남, 송파 사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메이커는 있었습니다만 매스티지 개념의 캐주얼 브랜드는 대한민국에서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8학군 학생들은 사복을 입을 때 적어도 캘빈클라인이나 개스 정도는 입어줘야 소외감을 덜 느낄 정도로 메이커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당시 부모들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돈을 잘버는 부모임에도 철저한 경제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것은 학생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극소수의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릴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해서 못먹고 못입는 것에 한이 맺힌 부모도 있을 겁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지금은 내가 여유가 있으니 내 자식에게는 내가 느꼈던 그런 비참한 감정을 0.000001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비뚤어진 마음에서 해달라는거 다 해주는 부모도 있는 것이지요. 당시에 어땠을까요? 전자보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겁니다. 당시 부모들은 모두 전쟁시기에서 태어나서가난을 겪은 전후 1세대들었거든요. 암튼 문방구 비지니스는 메이커 비지니스로 몸집을 엄청나게 불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결국 학교에서 엄청난 차별과 계급을 만들어내고 다른 부수적인 괴물을 생산하게 되며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1. 부의 계급화가 만드는 문제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다음에는 나이키 에어조던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줄줄이 계속 나왔죠. 그래서 '그것'을 가졌는가 가지지 못했는가가 결국 학생 집안의 재산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지요. 본디 학생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바로미터는 '외모, 힘, 공부' 입니다. 잘 생긴 학생이 인기가 많고 운동 잘하는 학생, 싸움 잘하는 학생이 인기가 많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권력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집안의 부'가 노골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겁니다. 이것은 굉장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외모'는 유전적 특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랜덤 '가챠'이고 심지어 '절대적'인 기준이 있지도 않습니다. 전형적인 미인에서 조금 벗어나도 얼마든지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힘, 공부'의 경우에는 노력에 의해 상당부분 쟁취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는 학생에게 실현 불가능한 영역이었죠. 이것은 100% 부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요인인데 그 요인이 낙인처럼 학생사회에서 작용한다는 것은 마치 인도의 카스트제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난하지만 부유하고 싶은...아니 가난하지만 부의 권력을 잡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인해 두 가지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삥과 짭퉁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부의 척도를 측정하는 단위가 되어버린 메이커는 화폐와 개념이 유사합니다. 다만 이 화폐는 상속을 통해서만 전달이 되는 것이기에 일부 학생들은 학생간의 화폐거래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가치인 '힘'을 이용해서 타학생의 화폐를 빼앗은 것이 바로 삥뜯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은 일상화가 되었지요. 제가 자랐던 90년대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강남에서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싸움박질이었죠. 성수동, 영등포 이런데서 학교 다니던 애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거리의 시인들의 '삥'이라는 노래도 있을까요. 아주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제 친구는 자기가 입던 메이커 옷 빨래도 다 걷어갔다고...)

이제 힘으로 화폐를 얻는 학생들이 생겼습니다만 힘이 없는 친구들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집은 가난한데 그래도 나도 화폐를 가지고 싶은데 나는 힘은 없어. 분명히 그런 친구들이 있을겁니다. 그 친구들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짭퉁'입니다. 진품은 아니기 때문에 저렴하지만 진품처럼 보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모조품인 짭퉁이죠. 그러나 짭퉁은 진퉁과 어딘가 다르기 마련이어서 발각되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부는 거짓이라라는 것이 공개되기 때문이죠. 수치심은 두려움을 만들고 두려움은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 변화는 짭퉁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조금 확장해서 생각하면 평판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외연적으로 가졌지만 당당하지 못한 그런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현재 MBTI에서 I가 극도로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한 일이죠. 모두가 뛰어날 순 없습니다. 모두가 부자일 수 없어요. 하지만 모두 뛰어나고 싶고 부자이고 싶죠. 사회가 모두가 뛰어나고 모두가 부자이길 부채질하다보니 거짓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이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당당하면 이미 정신질환의 영역이죠. 그래서 소심한 사람들이 생겨난거에요. 이것이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고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어른들은 소비자층을 처음에는 10대 그리고 그 10대가 자라면서 20대로 정조준했습니다. 즉, 198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성장 곡선에 맞춰서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비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인구가 어린이가 제일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어린이를 조지면 부자가 되었어요. 어떻게? 어린이 사회를 자본에 의한 계급화하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개새끼들이죠. 그러나 여기 더 개새끼들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386들입니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다. 몸만 자란 어른이 대부분이다.


2. 그들의 방식

90년대에서 2000년대를 관통하면서 이 시스템에서 여럿 죽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일탈 수위도 올라가면서 사회적으로 보완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이미 애들 장사는 너무 달콤했어요. 그래서 만든게 뭐냐...ㅜㅜ


교육개혁입니다. 대학교 무시험 전형, 체벌 금지 등을 주축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들이 학생으로서 배우고 행동해야 하는 가치의 문제였습니다. 학교에 자본주의가 만연해서 공부 역시 돈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대입에 너무 몰두해서 비뚤어지는 것이다. 사교육을 근절해야 한다. 막연히 학교폭력을 근절해야한다. 등등 애꿎은 명분을 들이대서 학생들을 이유도 모른채 '편안'하게 만드는데 몰두했습니다. 


공부 힘들어? 그럼 하지마. 

애들 때려? 안돼. 절대 안돼. 이유야 어땠건 때리는 건 안돼. 


이렇게 변모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학생들의 학업 수행 능력이 급락했습니다. 대학들은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하는 것을 대학에서 과외수업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때부터 서울대생이 예전 서울대가 아니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특기 전형들이 생기면서 학생들은 특기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특기에 맞춰 말도 안되는 학과들이 생깁니다. 바둑학, 미용학, 에니메이션학....학문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모든 것에 '학'이라는 것이 붙고 대학에 편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혼돈의 시기 학생들을 특별히 부르는 용어가 바로 이해찬 세대입니다. 자율을 모토로 하는 세대이지만 자립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그런 세대를 부르는 말이죠. 


그럼 이 시기에 학생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는 가치가 좀 나아졌냐? 아니요. 더 심해졌습니다. 워낙 돈이 되니까요. 메이커는 더 많아졌고요. 부로 사람들을 갈라치는 것은 더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수직 상승 중이었습니다. 예체능은 늘어나고 이과, 공과, 문과는 박살나기 시작했지요. 애초에 학문연구는 현실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 자체가 불편한 겁니다. 학문연구가 편안한 사람은 지구에 몇 명없어요. 그걸 편하게 만든 다는 발상 자체가 에러였고 결국 '불편'한 것을 견딜 수 없는, 편안한 것에만 익숙한 세대를 만들어내고야 말았죠. 인권과 평등, 자유라는 이름하에 어린 세대 전체에 엄청난 굴레를 씌워 버린겁니다. 학교에서 공부는 불편한 것을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사회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아픈 것을 해야하거든요. 그래서 이 세대부터 아픈 것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세대가 도래했습니다.



여기서 어른들은 두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아. 어린 세대가 병신이 되니까 이제 그걸 고쳐주면 또 돈이 되겠네. 그리고 어린 세대가 병신이 되니까 내 자리는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겠네

이게 제일 충격인 지점이죠. ㅜㅜ 이후 정부는 이해찬 세대 이후에 또 몇 차례 비슷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역시 아무도 본질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지리멸렬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현재가 그 결과라는 이야기까지만 합시다. 그 결과, 세상은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썩어버렸습니다. 이제 자본은 학생들에게도 절대적인 신입니다. 이제 학생 개인들은 나는 에어조던을 가질 수 없고 그래서 내 사회적 위치는 바닥이고 내가 스스로 그 계급을 뛰어넘기에는 학교에서 계급을 뛰어넘기 위한 것을 배우지 못했고 장벽 자체가 높은 상황인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까요? 이 결과를 예측하는데에 소비자 심리나 행동심리와 같이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뻔한 겁니다.


- 포기한다

- 지름길을 찾는다


둘 중 하나입니다. 포기한 세대들이 사토리, 탕핑족과 같은 부류이고 한국의 Z세대는 포기한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든 지름길을 찾아보려는 세대이죠. 그럼 지름길은 어떻게 찾습니까?


- 합법적으로

- 불법적으로


크게  둘 중 하나인거에요. 불법적인거...많죠. 성을 상품화하는 것도 있고 힘으로 빼앗는 것도 있고 사기치는 것도 있고 마약도 있고 많습니다. 요즘 미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다 이 방법을 택한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합법적인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대세에 따른다

- 빠른 사람 위에 올라탄다


가장 쉬운 방법, 남들이 하면 다 하는 겁니다. 여기서 사진 찍어야해. 여기서 먹어야해. 오픈런이 대표적인 현상이죠. 남들이 1보 전진하면 나는 1보 후퇴한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1보 맞추려는 겁니다. 아.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감들이죠. 두번째 방법은 빠른 사람 위에 올라타는 겁니다. 이게 뭐죠? 팬덤입니다. 잘나가는 사람에 붙어서 영혼을 파는 것. 그러면 나에게도 낙수효과가 있겠다 생각하는 것. 아. 어른들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감이죠. 이게 대부분 패턴을 설명할 수 있는 길입니다. 어른들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마케팅적으로 이 두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을 'Segmentation'하고 'Targeting'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대다수 젊은이들이 소비하고 또 소비하고 또 소비하여 어떻게든 돈을 벌고 또 벌고 또 벌어야 그 소비를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오늘 글이 길어져서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대세에 따르면 아주 극소수만 혜택을 봅니다. 대다수는 망해요. 갭투자 생각해봐요. 돈버는 사람 있었어요. 그런데 어때요? 돈잃는 사람이 더 많아요. 이미 어른들은 판을 짜고 들어갑니다. 어린이들이 걸리기만 기다리는 거죠. 상승세는 누가 만들어요? 20대가 만듭니다. 계속 유입되니까요. 그러면 어른들은 돈챙겨서 나갑니다. 남은건 20대뿐이죠. 20대가 들어온 이후에 누가 들어와야 20대도 돈을 챙겨 나가는데...누가 들어오겠습니까? 슬픈 일입니다. 빠른 사람 위에 올라타는 것도 결론을 이야기해볼게요. 거기에 나만 올라 탔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오산이라고요. 존나 많이 올라타고 있고 나는 그 중 하나의 카드에 불과해요. 거기서도 하나만 살아남는거에요. 그러니까 대부분 망한다고요. 한 5년 즐거울 순 있겠지. 하지만 인생은 80년인걸.



지름길은 없어요.


20대에 많이 하는 고민이죠? 그럼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은 엄청 단순하지만 개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모도 우리 친구도 나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대부분 없어요.


남들이 다 하는거 안하면 됩니다. 휘둘리면 끝입니다.

내가 정말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면 됩니다. 

그게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아도 괜찮아요.

무관심속에 나락으로 떨어져도 계속 해내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긍정적으로 온 마음을 다 하세요.

그렇게까지 번아웃될 정도로 했는데도 못하면 안되는겁니다. 과감히 접으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이거 하는 사람, 저는 주변에서 몇 명 못봤습니다만 이것이 제가 아는 가장 원론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제가 20대로 살았던 과거에는 사회 자체가 급성장중이어서 이렇게까지 안하고 살아도 각자 자기 자리를 꿰차고 인간인척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세상은 달라요. 이제부턴 진짜가 아니면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진짜가 되려는 노력없이 행복한 미래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버렸죠. 젊은이들이 행복해야 다음 시대를 열 수 있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시대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듭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디자인을 가지라는 말은 쉽지만 어떻게 디자인을 가져야할지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너도나도 디자인 오퍼레이터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자신의 디자인을 가지려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남들이 먹는거 먹고 남들이 입는거 입으면 어떻게 자신의 것을 가지겠습니까? 때로는 남들이 먹는 것을 먹기도 하고 입는 것을 입기도 하겠죠. 하지만 맹목적인 추종이 아닌 자신만의 소화능력이 필요한 겁니다. 그걸 하려면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요. 삶을 대하는 철학이 바뀌지 않는한 어른 세대에 계속 빨아먹힐겁니다.

처음에는 패션이었다가 나중엔 직장이 되고 그게 주택이되고 이후엔 자식이 되어서 어른 세대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빠지다보면 나중에 뼈빠지게 뭔가 했으나 남은 것은 별로 없는 그런 장사로 끝날 거에요. 원래 내 것을 주장하면 실패하는 겁니다. 실패는 인생에서 기본적인 루틴이고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 특수 루틴인 겁니다. 그러니 도전하고 실패하고 일어나보세요. 저도 매번 망해도 매번 일어났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은 이전의 실패경험이었어요. 만약 도전도 무섭고 실패도 무섭고 일어날 마음도 없으면 아프단 말도 마세요. 그럴 자격도 없는겁니다. 원해서 아픈건데 아프다고 호소하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요. 멋진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비오는 5월의 어느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UX디자인의 종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