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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임 Jul 04. 2023

개한테는 쉽고 사람한테는 어려운 일

우리집 강아지는 잘 이뻐하는데 왜 사람한테는 안되냐

오늘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왜 반려동물에게는 사랑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반려동물에게 사랑을 하고 사람에게는 사랑을 하기 힘든걸까요?


거두절미하고 답부터 이야기하면, 동물은 현재를 살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형편에 따라 기준이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과거에 하루를 먹고 사는게 힘들었을 때 느꼈던 욕망과 지금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 느끼는 욕망의 차이가 큽니다.


대부분 개들은 어릴 때에도 늙어죽을 때에도 간식을 주면 한결같이 좋아하지요. (잘 먹던 간식에서 더 잘 먹는 간식이 생길 수는 있겠지요) 고양이도 죽을 때까지 반려인 주변에서 골골거립니다. 과거에는 간식을 먹을 때 좋아하다가 나중에 간식을 싫어하는 경우나 골골거리던 고양이가 갑자기 골골거리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람은 어떨까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처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내가 취업만 하면, 내가 사업에 성공하기만 하면 이라고 다짐하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십년이 지나 어엿한 직장인 또는 사업가가 되어 경제적 안정을 이루면 그 때부터 과거의 감정들이 인간을 사로잡습니다.


과거에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려고 하고

과거에 내가 받았던 대우들이 생각나고

과거에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예민하게 굴고


저는 이것을 보고 고난을 이겨냈으나 마음이 구겨졌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이것을 발작버튼이라고 부르더군요.


고난을 이겨냈지만 마음이 구겨진 사람은 사실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고난이 끝난게 아니라 또다른 고난에 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구겨진 사람들끼리 만났다고 생각해봐요. 회사도 좋고 학교도 좋고 사랑도 좋습니다. 심지어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좋습니다. 당신이 떠올리고 싶은 어떤 인간 관계를 떠올려보세요.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마음들이 생기는지 생각해보면요. 내 마음 한쪽에서만 셀 수 없이 많은 또는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모호한 마음들이 존재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타인도 적어도 나만큼 많은 구겨짐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99.99%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니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거에요.


그러나 반려동물은 그와 다르죠. 동물들은 오늘만 살거든요. 저희 집 주변을 떠돌던 개가 한 마리있었어요. 어느 날 누군가 뒷산에 설치한 올무에 그 떠돌이 개가 걸렸습니다.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올무를 뜯어내고 도망쳤습니다. 그 후 다시 만난 녀석의 상황은 심각했어요. 목을 조르고 있는 올무의 일부는 살을 파고 들고 있었죠. 그래서 그 아이를 포획하려고 노력했지만 한번 크게 당한 녀석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죠. 그리고 그 떠돌이개도 더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개가 죽었겠지 생각했고 더이상 찾지 않았어요. 그렇게 봄이 오고 거짓말처럼 그 개가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올무를 목에 걸고 당당히 그리고 친구도 데리고 왔지요. 친구 강아지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강아지였는데요 요즘에는 혐오의 의미라고 잘 쓰지 않지만 막말로 올무에 걸린 강아지와 다리병신 강아지가 함께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보았습니다. 마당 잔디가 푸릇하게 나고 길가에는 이름모를 꽃이 피어있었고 나비가 날았고 따뜻한 햇살에 올무에 걸린 강아지와 다리 병신 강아지가 너무나 행복하게 꼬리를 흔들며 장난을 치고 서로를 핥으며 시골길을 지나갔습니다. 그 강아지들은 자신을 망가뜨린 것들에 대해서도 망가진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죠. 창밖으로 본 두 마리의 강아지를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 날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암에 걸린 강아지가 주인을 탓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과거를 한탄할까요? 녀석들은 자기가 아픈 것과 주인은 별개입니다. 그냥 지금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발버둥치는 것이고 반려인은 반려인인거죠. 그런 대상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그래요. 사랑은 어렵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얻은 대신 많은 것을 잃었거든요. 사랑은 인간의 지성에 반하는 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생각하고 감정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되죠. 이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인간은 지성이 없는 것만 못한 존재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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