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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임 Feb 11. 2022

[칼럼]공모전에서 이기는 방법

예전에 동의대학교에서 했던 특강 세미나 자료입니다.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

미국 댈러스 지역에서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권장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이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2달러씩 인센티브를 주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독서량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적 성취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학생들은 더 많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더 쉽고 더 짧은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대부분 사람들은 쉽게 댈러스 학습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 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요.(사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보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댈러스에서 일어난 일을 서울대로 옮겨서 똑같은 사례를 만들어보면 그들의 무관심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을 조사해보니 모두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은 하루에 3시간 이하로 잠을 재울 것이다”


이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서울대가 아닌 수면부족으로 병원에 다녀야할 것입니다. 서울대에 간 학생들이 잠을 3시간도 안잔 것은 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열심히 혹은 잘 하는 원인은 아닌 것이죠. 댈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게 되거나 책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의 정석을 여러번 읽어서 수학 성적이 오를 수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수학을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부를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더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댈러스의 정책가들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면 의도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면 그들은 무능력으로 인해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무관심했을까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들이 무관심한 이유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이 그들의 이익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는 직책이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단지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이익은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정말 학생 한 명, 한 명이 학업 성취도가 향상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학업 능력을 대표할 수 있는 정량적 지표를 만들고 그 지표가 올라갔는지 또는 내려갔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댈러스 지역만해도 수많은 학생들이 각각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학업에 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학생들에게 어떻게하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측정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복잡한 일을 한다고 해서 나의 이익에 특별히 영향을 미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측정하기 편하고 마치 학업 향상에 도움이 될 것만 같은 지표인 독서량으로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매우 행정편의주의에 적합한 행동일 것입니다. 이 댈러스의 정책가들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행동은 행정적으로 큰 결점이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학생들에게 무관심했고 학업 성취도에 대한 행정편의주의적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비판했을때,


“오. 나는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학생의 학업 성취도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변명한다면, ‘아니야 너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무관심했어!’라고 우리 마음속에 아무리 굳은 심증이 존재한다한들 우리는 그 심증을 증명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답답한 예시는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시내 주요도로의 제한속도를 50km/h로 조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가 제한속도를 낮추는 이유는 보행자 사고 감소입니다. 

자, 여기서도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보행자 사고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요. 그런데 서울시는 제한속도를 조정하는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즉, 보행자 사고의 주된 원인이 도로 제한속도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당한 결정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그게 맞다고 가정하면, 왜 하필이면 60km/h에서 50km/h로 조정했을까요? 그 원인이 되는 연구가 2018년 8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시험 결과입니다. 보행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이 시속 60km에서는 92.6%였고 시속 50km에서는 72.7%, 시속 30km에서는 15.4%였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를 보는 여러분의 머리 속은 어떤가요? 뉴턴역학에서 강체의 이동 속도가 높으면 당연히 운동에너지가 크고 운동에너지가 크면 당연히 충격량이 커집니다.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면 당연히 운동에너지도 제곱에 반비례해서 작아지지요. 사실 이 실험은 제 기준에서는 해볼 필요도 없어보입니다. 어차피 낮출 거 시속50km보단 40km가 낫지 않을까요? 극단적으로는 30km로 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보행자 사망사고, 중상사고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이 정책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었을까요? 뭐. 분명 그들은 있다고 이야기하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요. 진심으로 보행자 사고를 줄이고 싶었다면 행정가들은 제한속도를 더 높이면서도 사망자, 중상자를 줄일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그 방법을 구현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매년 제한 속도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인구는 점점 과밀해지고 차량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차량사고는 통행량에 비례해서 증가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한 속도를 더 낮추는 일은 도로의 본래 기능을 무시하는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본래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부작용을 줄일 것이라면 아예 차없는 도로를 늘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역시 정책가들의 행정 편의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머리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본심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공모전에서 이기는 방법을 이야기한다고 하고선 도대체 이것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이야기인가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처음 이 세미나를 요청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야하는가에서 저의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대기업에서의 업무 에피소드 이야기할까? 생각했다가 그거 들어서 어디다가 쓰게? 애들한테 썰이나 풀어서 되겠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조금 도움이 될만한 1인 프로젝트로 사업시작하기 이런 것 해볼까? 생각했다가 준비도 안된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부적절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나는 무엇에 가장 목마를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래. 스펙을 쌓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하자. 단, 진실을 이야기하자” 

자, 저는 독일 레드닷 프로덕트 수상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카오나 라인에서 한 공모전에서도 입상했었습니다. 그리고 LG전자에서 10년 정도 근무했고 근무하는 동안, 생산/연구개발/디자인 여러가지 분야를 두루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저는 제 개인작업과 더불어 디자인 교육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는데 공모전과 관련된 치명적이고 공통적인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잔인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공모전에서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들의 기술이 모자라서보다는 여러분들이 이 댈러스의 학업 성취도 정책을 만든 행정가나 서울시 공무원처럼 여러분들의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공모전에 얼마나 많은 지원자가 몰릴 것인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러면 그 공모전에 배당된 심사위원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 손가락으로 한번에 혹은 몇 번이면 셀 수 있을 정도일 겁니다. 그 심사위원들이 내 디자인에 관심 가질 시간은 수 초 이내입니다. 여러분들이 내놓은 디자인이 애초에 속도를 제한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 이런 식이면 열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 직행입니다. 뒤에 아무리 멋진 이미지, 멋진 표를 붙인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작은 폰트를 볼만큼 여러분의 디자인은 애초에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팩트를 견뎌냈다면, 우리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요. 공모전은 바로 매력의 싸움입니다. 디테일은 그 다음입니다. 보통 학생들은 거꾸로 디자인을 하지요. 사실 프로들도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학생이건 프로건 잘하는 사람만 매력을 고민하고 디테일을 잡습니다. 그 다음에 고민이 되는 것은 대체 이 매력을 어디서 찾아 오는가하는 의문입니다. 사람들은 엄처 고민하거든요. 그리고 못찾아요. 왠줄아세요? 그것은 바로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가 당뇨로 고생하고 있으면 당뇨에 대한 디자인을 마치 서울시가 제한속도 낮추듯 해놓고 자. 이제 사망사고 줄어들거야.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내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겉보기에만 좋은 디자인이나 정량적 평가지표만 변화하는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하겠죠. 여기서 진심을 내 엄마, 내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투영하는 것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표상적인 공감, 즉 겉으로 드러나는 공감 표현만 강조합니다. 내 성미에 거슬리지 않는 표현을 하면 그만이고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 감정인지는 나몰라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대세입니다. ㅋㅋㅋㅋ 미안하지만 전 이런 상황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아무리 상대방이 예의바른 표현을 해도 아마 점점 더 사람들은 외롭고 우울해질겁니다. ㅋㅋㅋㅋㅋ 공감은 말이 아니라 신뢰거든요. 암튼 그렇숩니다. 애초에 매력적인 주제를 잡을 수 있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인 주제와 연결되는 사고방식을 하지 못하고요. 그런 사람이 좋은 디자인을 하고자 한다는건 한마디로 덧없는 욕심일뿐입니다. 본질적으로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잘해야겠다가 아니라 눈을 떠보니 잘 한다고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암담할 수 있으니까 이제 조금 더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최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제품 디자인 수업을 하면, 대부분 학생들이 제품을 애플처럼, 구글처럼, 샤오미처럼, 무지양품처럼 해옵니다. 모든 학생들이 요즘 대세인 회사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베껴서 오면 저는 점수를 무엇을 보고 줘야할까요? 얼마나 똑같이 따라했는지 카피캣 완성도로 점수를 줘야할까요? 혹은 애플을 베낀 학생은 점수를 더주고 샤오미는 점수를 덜줘야할까요? 

아이폰 몇이냐...
샤오미 공청기
무지양품 밥솥


벌써 우리의 일상에 숨어있는 공모전의 핵심 전략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만든 디자인을 뽑고 싶을지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그게 다른 지원자들의 결과물과 여러분의 결과물이 한 곳에 놓여져 있을 때 심사위원인 내가 다르게 느낄지 상상해보세요. 아마 1초도 걸리지 않을겁니다. 애플이 잘하고 구글이 잘하는건 세상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나만 아는 사실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베껴요? 배달의 민족이, 당근마켓이 하는 서비스 잘되는 거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알아요. 그런데 그걸 베껴?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아예 본질이 없는 디자인입니다. 그런 디자인을 하는 데에 시간을 쓸 바에는 집에서 잠을 충분히 자고 운동도 좀 하고 재미있는 것보고 좀 더 많이 웃고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드리는게 훨씬 발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디자인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가져와서 콘텐츠갈이만 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 툴러, 디자인 오퍼레이터로 빨리 전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럼 본질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바로 솔직한 내 모습에서 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과 구별되는 내 모습에서 나옵니다. 남과 구별되기 위해서 내가 내 귀를 자르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히말라야를 등반하거나 남극횡단을 하는 등 하드코어한 경험을 하는 것도 분명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부자집 자재들은 해외로 다양한 경험을 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거나 자신이나 타인을 파괴하는 등 평범한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방법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신이 주신 남과 구별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내 겉모습 그리고 내 내면 모두 남과 구별됩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이 특별함을 사용하는 법을 잃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다른 것을 얻었습니다. 남과 달라서 받는 주목이 부담스럽고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비난이나 창피함을 두려워하면서도 남과 달라서 받는 영광을 탐하는 비겁함을 아주 충실하게 쌓았습니다. 못할 것 같으면 시도도 하지 않고 타인의 실패를 목격하면 즐거워하고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며 대세에 붙어 작은 이익을 빨아먹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탄탄하게 자라났을 확률이 큽니다.


명심하세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유니크함은 유일하지만 그 유니크함을 모두가 좋아할 리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를 보십시요. 여러분 자신은 유일하지만 유일한 여러분 자신을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까? 여러분을 닮은 디자인도 똑같습니다. 그 디자인은 마치 여러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제한적인 것처럼 몇몇 사람들만이 좋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을 닮은 디자인을 하는 것이 공모전에서 이기는 첫번째 시작점입니다. 정말 학생들을 향상시키고 싶은 저에게 댈러스 교육 정책을 맡겼다면 제가 저렇게 정책을 만들었을까요? 반대로 여러분들이 공모전에 내는 주제는 정말 여러분이 하고 싶은 디자인입니까? 혹시 요즘 트렌드가 어떻기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까? 혹은 교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해서 그런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공모전에서 주제는 가장 중요한 결투 장소입니다. 이 디자이너가 어떤 주제를 들고 왔는가를 가지고 제일 처음 맞붙는 것입니다. 그 결투에 여러분은 가장 여러분다운 디자인 주제를 들고 와야 합니다.


자. 우리는 지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수많은 디자인 수업은 모두 디자인을 마치 엑셀처럼 가르칩니다. 이렇게 함수를 넣으면 이렇게 동작한다. 그런 성격의 디자인은 개발자도 금새 익힐 수 있고 점점 프로그램이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디자인 기술자로 어도비 툴이나 돌리다가 끝나기 싫다면 우리는 디자인을 엑셀이 아닌 예술로서 대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제 이야기의 의미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적용해야할지 그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감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 부분은 교육이 직접적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내면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나는 가전제품에 관심이 일도 없는데 엘지 전자에 들어가야 제대로 인생을 살 것 같아 아무 생각도 없는 엘지전자 가전에 입사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디자인 주제를 제대로 잡는 일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겁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나는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보고 싶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속물이면서 속물 근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제대로 디자인할 수 없을 겁니다. 속물인 사람은 속물스러운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잘 할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가슴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특별함을 사용하는 법을 잃은 대신 비겁함을 아주 단단하게 쌓아올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제 말을 듣고 어디서 병신같은 놈이 말도 안되는 소리한다하고 속으로 생각할 겁니다. 분명히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온 사람이 한 말이 삼성에서 온 사람이 하는 말과 다르면 스타트업 사람들을 무시하고 구글에서 온 사람이 한 말로 삼성에서 온 사람이 한 말은 무시하는 그런 자존감이 바닥이면서 공격적인 친구들이 꼭 있지요. 그런 친구들을 위해 제가 끝으로 무시할 수 없는 다른 사례를 한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삼성디자인멤버십인데요. 뭐. 한국에서 삼성디자인멤버십을 깔만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매년 삼성디자인멤버십에 항상 나오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디자인에 대해 서술하시요

당신이 서술한 디자인에 부합하는 과거 경험에 대해 서술하시요

당신이 앞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디자인 역량에 대해 서술하시요.


이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나의 디자인은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해서 결과물로 구현하는 것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질문에서는 "당신의 디자인"이라고 했는데 "모두의 디자인"을 말하는 셈입니다. 이것은 결국 내 디자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이실 직고하는 겁니다. 바로 쓰레기통이죠. 역시나 그렇게 지원할 거면 그냥 집에서 쉬는게 낫습니다. 제 생각에 삼성디자인멤버쉽 사전과제 테스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정리된 형태의 디자인 테스트입니다. (카카오나 네이버 공모전도 종종 제가 지도하는데요 수준이 달라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카오 네이버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삼성전자와는 업력이 다르고 사업 영역의 체급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세월이 만든 디자인 인력의 깊이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삼성해체주의자입니다 그래도 잘하는 건 잘하는거지) 삼성디자인멤버십은 저 세 문장만으로 80~90%의 평범한 학생들, 자신만의 생각없이 디자인하는 학생들의 지원서는 볼 필요도 없이 걸러지게 만든겁니다.


여기까지 공감했다면 본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본인의 디자인에 대해 글로 써보세요. 산을 올라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이 여러분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길이 하나가 아닙니다. 제가 1:1로 교육을 하면 여러분이 올라가는 길에 맞춰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단체로 하는 특강이기 때문에 공모전의 속성을 본질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우리가 대면할 수 있고 여러분들이 이 특강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고 원한다면 오프라인에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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