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율이 말해주는 여러가지 이야기
디자인 분석을 해야하는데 요새 통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 외주 작업으로 인해 20일 이상 밤샘을 해서 체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 동안 벌려놓은 다른 일들을 서로 챙겨달라고 난리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야심차게 시작한 브런치도 한 달 가량 손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몰라요) 다행히 어제 밤샘을 끝으로 오늘 베타버전을 공유했고 이로써 며칠 시간이 생기겠지요. 맛간을 이용해서 간편한 칼럼글을 써봅니다. (혹시나 제 글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있었다면 그랜절이라도 해드리고 싶네요)
오늘은 3월 14일입니다. 보통 3월 14일이면 우리는 화이트데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화이트데이보다 중요한 날이 바로 파이데이입니다. 말그대로 파이데이는 원주율 3.141592...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면 이 원주율Pi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발견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생각나는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1. 원으로 보는 무한과 본질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인간의 집착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 등 과학에는 아직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원주율입니다. 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원은 각도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짧은 선들의 집합. 더 나아가 무수히 많은 점들의 집합이 이상적인 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무수히 많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결국 그 원은 역시 몇 개의 점일뿐입니다.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무한에 가까운 점을 찍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가까이서보면 결국 이렇게 계단처럼 되어 있겠지요. 무수히가 아닌겁니다. 봐요. 3개네요. 무한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과학에서 무한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만 만들어내거나 관찰할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 와도 유사합니다.
복잡한 수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용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입자를 관찰을 하면 관찰을 하는 행위자체가 관찰에 영향을 주어 관찰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얻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봄철 야외에서 떠다니는 꽃가루를 잡으려고 손을 휘저으면 팔을 휘젓는 행위로 인해 공기의 흐름이 바뀌어서 꽃가루가 따른데로 날아가죠. 같은 이야기입니다. 관찰을 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관찰 대상에 비해 충분히 작을 때만 유효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재미있는 것은 양자역학에 수많은 지식들이 이론인데 반해 불확정성의 원리는 원리(Principle)입니다. 지위가 다르죠. 그만큼 반박의 여지가 아직까지는 없는 지식인 거에요. 그래요. 우리는 본질을 원하지만 본질에 다가가는 행위자체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빅뱅 직전의 순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0과 무엇이 생겨난 1 사이의 무한한 점들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것이 수학에서 원입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매년 더 좋은 컴퓨터로 원주율을 계산하죠. 계산할때마다 더 많은 소수점 자리수까지 알아내고 여진히 원주율이라는게 이상한 숫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매번 다른 자리수가 나오는 초월수. 아직도 인간은 이 원주율이라는 것이 어떤 규칙성을 띄고 있을 것이고 그 규칙(자연의 알고리즘)을 간파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과학분야에서 증명해내고 있듯이 지구의 생명은 어마어마한 확률이 만들어낸 로또같은 일이고 그 안에서 인간은 더 미세한 확률이 만들어낸 우연적 발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모든 자리수가 다른 원주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원주율로 보는 인간의 본성
원은 2022년에도 여전히 정복하기 어려운 도형입니다. 현실 세계를 똑같이 렌더링할 정도로 3D 기술이 발전했지만 컴퓨터에게 원을 그리라고 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아리스토텔리스가 원주율 계산을 위해 원에 내접하는 96각형 도형을 손으로 작도한 것과 비슷한 일을 합니다. 다만 컴퓨터가 할 뿐이죠. 이 부분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억해야합니다. 욕조에서 물이 넘치는 것으로 물체의 부피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레카!!!
우리가 기원전 200년경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조차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 중 원주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그냥 세상이 바라는데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이었기 때문에 손으로 96각형을 작도해서 원주율을 계산해낸 것이지 2021년이었다면 뭘 했을까요? 조금 더 집요하게 이야기해보면 완전한 원을 그리겠다고 마음까지는 먹었다고 가정합시다. 96각형을 작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이 발견은 수학적인 난제와 별개로 오늘 날까지 위대한 발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한된 도구로 진리를 탐구해냈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도구라기 보단 최소한의 도구가 타당할 것 같네요.
오늘 날 우리는 수많은 도구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부터 각종 응용프로그램들 나아가 유튜브나 지금 이 브런치같은 서비스까지 너무 많은 도구들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도구로 돈을 벌 생각 또는 인기를 모을 생각만 하지 도구로 무엇을 해낼 것인가에는 깊은 성찰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내가 피그마를 잘해서 취업도 잘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
그러니까 나는 피그마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정보를 습득해야지
그러니까 피그마 커뮤니티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은
피그마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는거죠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직결되어 있는 수요와 공급의 곡선이며 권력의 표상인 돈이라는 가치를 쫒는 사람들에게 높은 확률로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SNS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SNS가 사람들에게 먹히자 제일 먼저 채용한 전문가들이 바로 인지심리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을요? SNS 창업자들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인간을 가장 무력화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만약 그것만이 전부였다면 정말 악마의 기술이었겠지만 동시에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도록 디자인되었지요. 이러한 양날의 칼이 바로 최근 IT 서비스들입니다. 사실 뜬금포 이야기지만 너무 아쉬워서 덧붙이면 이런게 진짜 UX디자인인데 이런 건 요새 배우려고 하지 않고 관심도 없죠. UX = 피그마 or 사업기획이라니...개탄할 일입니다. 아무튼 대부분 사람들이 시대에 무관하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아니 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피그마를 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기술들은 우리가 점점 더 쉽게 무언가를 만들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대신 점점 더 우리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21세기에 원주율을 초등학교때 배운 사람들이 스스로 한참 고민하고 나온 결론이 단지 취업에 유리하니까 배우면 좋겠다 정도인 것이죠.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학력과 행동이 정반대인 사람들을 무척이나 많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셋 중 하나입니다.
1. 높은 확률로 회사 생활에 염증을 일으켜서 탈출하거나
2. 점점 더 흑화되서 내가 뭘하지는도 모르고 더 큰 욕망만 쫒거나
3. 아닌 줄 알면서 아이들 보면서 무기력하게 살거나
사실 도구는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단순히 도구를 익혀서 그 도구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도구에 대한 목적 지향적 가치관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 죽기 전에 하는 이야기겠지만 이 세상에 편하고 안정적이고 밝은 미래는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걸 바라는 건 로또랑 같아요. 제 친구들 중에도 고등학교부터 20대까지 유흥을 미친듯이 즐겼는데 잘 풀린 친구는 딱 1명있거든요. 그나마 요즘에는 소식도 끊겼네요. 그런 친구가 내가 될꺼란 기대값은 너무 낮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잘 안되었을 때 그 결과를 마주했을 때 스스로에게 할 말이 없죠. 과거에는 다같이 노동을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자괴감도 분배할 수 있었을 지 몰라요. 그러나 지금 세상에선 심리상태가 바닥끝까지 내려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똑같이 확률이 낮아도 욜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난 소중하니까!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안정적이고 싶어! 이런 생각들은 현대 사회에서 더더욱 하지말아야할 일이에요. 그럼에도 다들 그렇게 하죠. 그게 제일 편하니까. 편히 보이니까. 제일 확실해보이니까. 그리고 듣기 좋으니까. 그걸 파는 사람들이 있는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훌륭한 먹이감이에요. 그렇게 점점 다수의 사람들이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가볍고 즉흥적인 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있지만요 오늘 Pi데이를 맞이해서 저는 더더욱 아리스토텔레스의 96각형 작도의 숭고함을 기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자기 인생의 가치로 삼을 수 있길 바라면서 저는 오늘 수업 준비하러 갑니다.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곧 멸망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멸종은 아름다울 것이다
가자. 우리의 아름다운 멸종을 향해
덧붙임)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세상은 시뮬레이션이다라는 가설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글이 불편한 창조론자들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그대로 본인들이 '믿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글을 쓰다보니 창조론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