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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날개달기 May 29. 2024

웨하스 의자 by 에쿠니 가오리

서점이 많아졌으면

회사 앞 서점에 우연찮게 들렀다.



갑자기 어제부터 읽고 싶어진 ‘Wonka’가 혹시 있을까 해서 들러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 작은 개인 서점이라 원서는 없었다. 퍽 아쉬웠다.



이 서점은 책을 어떻게 골라 놓았나 어디 구경해 보자 하고 구석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2년 전쯤에 들렀을 때만 해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감재 냄새가 났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경고문들에 손 때까지 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책은 구입 후에 앉아서 볼 수 있습니다.’



새 책을 붙잡고 앉아서 헌 책 만드는 이들이 더러 있었나 보다 짐작했다.



나도 시집을 조금 뒤적거리다가 꽉 끌리는 문장이 없어, 아쉬운 채로 제자리에 섰다.



문득 ‘Wonka’가 혹시라도 있을까 하는-당연히 없겠지만은- 기대감에 자음 순으로 가지런히 꽂힌 책들 중에서 ‘ㅇ’으로 가서 ‘우’를 찾고, 그다음에는 ‘워’를 찾고, 재빨리 눈알을 굴려 ‘웡’이 있나 찾던 중에,



발견했다.



오!



 ‘웨’하스 의자.



네가 나한테 이렇게 오는구나.



진짜인 듯, 아닌 듯, 소설인 듯, 에세이인 듯,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이고, 감각적이지만 대단히 이성적이었던 바로 그 책.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이렇게 발견했는데 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다. 따뜻한 애인의 품이 생각나는, 진하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느낌의 책, 웨하스 의자.



근 이십여 만에 만난 주인공. 나도 이제 그녀처럼 중년이다. 중년, 이해력의 수준이 높아지는 나이.



쓰레기 뚜껑에는 ‘개똥은 버리지 마세요’라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세상 온갖 곳에 메시지가 넘쳐 나, 나는 진저리를 친다.



주인공과 함께 나도 진저리를 친다. 이해력은 좋아져도 속 좁은 건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말을 거는 절망이 있고, 어려서부터 줄곧 외톨이인 채로 살고, 애인은 유부남에, 이 땅에 피붙이라고는 딱 여동생 하나 있다.



그녀의 삶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표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녀의 생활에는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



이름까지 지어준 길고양이들과의 만남, 어려서부터 즐겨 그린 그림, 또 그것을 업으로 하는 시간, 사랑하는 애인과의 자유로운 연애, 언제든 전화하고 싶을 때 통화하는 여동생, 마음의 안정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음악,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 애정하는 와인과 요리, 또..



에쿠니 가오리는 늘 그렇다. 독자가 주인공을 부러워하게 만든다. 다음 책을 기다리게 만든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김난주 선생의 번역으로 나왔을 때 나에게 제일 소장 가치가 있디. 이번 책은 ‘옮긴이의 말’에 이어 ‘개정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소설이 왜 개정판이 필요한 지 이유가 쓰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페이지였다.



(중략) 오히려 절망마저 품고 자기를 긍정하는 강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사회의 시선도 넘어서서 말이에요.

오래 전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괴롭고 참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사이에 흐른 세월 덕분에 과감하게, 겸손하게 마주하는 힘 또한 길러졌으니 나이를 먹는 것도 싫지 않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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