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고통받는 사람을 위하여
사랑 말고,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이유가 뭐가 있겠냐 하는 시인.
정호승.
그의 시를 보면 ‘사랑’이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다. 삶의 모든 과정의 이유이자 결과가 ‘사랑’없이는 설명되지가 않는다.
시인들이 참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이,
그전에는 그렇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그들의 시를 알고 나면 아주 다르게 보이게 한다는 사실이다.
고통 없이 사랑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구나.
나의 아버지도,
나의 배우자도,
나의 아이들도,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랑들이다.
이보다 더 괴로울 수 있을까,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나은 선택은 죽는 것뿐인가,
고통은 끝이 있을까.
나는 책을 읽는 것에서 자족을 배웠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몇 부분 보이는데, 시인은 산문에서 남의 고통이 더 커 보이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대,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느낀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잘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 포함한다.
생판 남조차도 그의 고통을 직면한 순간 나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는 아이를 보면서 귀엽다고 웃는 어른들을 효도르의 강한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인가 혼돈스럽다. 괴로워서 울고 있는 아기가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할 텐데 그걸 보고 귀엽다고 웃는단 말인가. 사이코패스인가.
선거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천안함, 세월호 등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과 그 사건에 대한 뉴스들이 수없이 쏟아져 참 괴롭다.
집으로 배달된 선거홍보물과 이 책을 나란히 두고 보자니 사람으로서 나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또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