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깔끔하고 진하지 않은 홍차 한 잔
작가는 전부터 ‘여분의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그런 것들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쓴 책이 바로 홀리 가든.
여자 동창생들인 가호와 시즈에는 가족이 아니지만 아주 많은 여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둘에게는 깊고 얕은 여러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센 반전이 있는 책, 그중 너무 슬퍼서 다신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은 346쪽.
처자식 있는 몸이라고 하는 편이, 서로가 번거롭지 않고 좋겠다고 생각했어. (중략)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한 번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5년 동안이었다. 한창 연애 중인데 상대는 가호를 두려워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머리도 목구멍도 심장도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처자식 있는 몸이라고 하는 편이 서로가 번거롭지 않고 좋겠다고 생각했다니!
연애는 그런 게 아니다.
번거로운 것이 연애인데, 번거롭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니!
번거롭게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고,
번거롭게 사사로운 행적을 시시때때로 공유하고,
번거롭게 이런저런 기념일을 챙기고,
이 모든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처자식 있는 남자인 척했다고.
가호는 사기그릇잔을 내던지며 그 배신감과 슬픔과 분노를 드러냈다.
헤어진 남자를 못 잊는 것은 그때의 행동에 후회가 남거나 그가 없인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호 사연의 반전은 공포스러웠다.
잊기 힘든 연애일 것 같다. 너무 무서워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연애들이 있다. 평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엮어낸 작가의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
평범한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며 저마다 웃고 울겠지,
세상의 많은 가호가 위안을 얻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