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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Nov 14. 2023

백합 다섯 마리를 죽이고

에세이 ; 고양이 키우는 집에 들어온 백합 다섯 송이

 


 어느날 시퍼렇게 보일 만큼 눈이 부신 백합이 거실에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아빠가 근처 꽃 도매시장에 들러서 가져오신 꽃인 것 같았다. 한 가지 떠올랐던 건, 그 백합을 보고 내가 "꽃이 이렇게도 크고 단단한가?"하고 의문을 가졌다는 것. 왜인지 나는 그 꽃이 무서웠다. 꽃이나 나무 같은 것과 가깝게 살아오지 않은 서울 토박이는 무서우리만큼 뻗쳐 있는 백합의 이파리에 괜스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했다. 내가 살면서 본 그 어떤 꽃보다 컸고, 무서웠고, 싱싱했다. 무서우면서도 신기해서 그 백합을 오랫동안 들여다 봤었다. 이제 막 가져온 꽃이라 그런지 성인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백합은 시들시들한 검버섯 하나 없었다. 줄기도 어쩜 그리 굵고 단단한지 꾹 눌러보기도 했었다. 코를 가져다 대니 미세하게 향기가 났다. 다섯 송이 정도 되었던가? 주렁주렁 열린 백합 다발을 보고 "와, 신기해"하며 오랫동안 향을 맡았었다. 아직도 그 백합이 선명히 기억난다. 너무 커서 금방이라도 혼자 살아 움직일 것 같았던. 검버섯 하나 없이 활-짝 펼쳐진 희부연 얼굴에, 단단한 줄기에, '꽃'이 아니라 또 다른 '종'을 보는 듯했던.



 그런데 문득 백합이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 집엔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운다. 각각 10살, 9살로 노묘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나 마실 것에도 최대한 신경을 쓰려고 하는 편이다. 그 생각이 드니 향을 맡다가도 나는 부리나케 휴대폰을 들어 검색을 했다. 고양이 꽃. 고양이 백합. 이런 것들 말이다.


 '급성 신부전증이 올 수도 있어요! 백합은 고양이에게 제일 치명적입니다!'


 그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어쩐지 묘하게 무섭다 싶더라니, 내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라는 거다. 그 초롱초롱한 아름다움 뒤에 그런 독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때 잠깐 엄마아빠와 다퉜다. 부모님은 거실에 멀찍이 두는 꽃이 설마 고양이에게 큰 해를 끼치겠냐는 의견을 내비치셨다. 나는 끝까지, 아무리 그래도 한 두 송이도 아니고, 어딘가에 이것을 분리시켜놔야 한다 주장했다. 불행히도 우리 집은 테라스에 고양이 화장실이 있어 그 어디에도 백합을 둘 공간이 없었다. 고양이가 사는 공간에 백합이란 이방인의 출입은 철저히 없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갓 피어나 싱싱하더라도.


 "안 돼! 버려야 돼."


 부모님은 끝까지 버리진 말고 저 구석에 놓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그 백합 줄기들을 움켜잡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물이라기에 지나치게 딱딱하고 굵었던 초록 줄기들을 붙들고, 한 손엔 가위를 들었다. 그때 나는 그 백합을 죽일 필요까진 없었다. 물론, 어차피 종량제 봉투에 버릴 거라면 결국 죽을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가위까지 들어 그 시퍼런 백합을 확인사살할 필요는 없었다. 부모님과 조금은 격하게 다툰 뒤여서 그랬던 걸까? 나는 가위를 들고 백합 줄기를 잘랐다. 처음엔 멈칫했고, 자르면서도 중얼거렸다. "미안해, 미안해. 진짜 미안해." 무서웠다. 꽃이 너무 크니 단순히 어릴 때 민들레 하나 꺾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종'의 목줄기를 자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면서 한 손으로는 백합의 목을 잘랐다. 내가 목을 자르는데도 백합의 얼굴은 변함없이 푸릇푸릇했다. 서걱서걱, 날이 움직일 때마다 하얀 이파리도 같이 철렁철렁, 흔들거리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참으로 무거운 머리카락이었다.

 자른 뒤엔 두 뭉텅이로 나누어진 백합 뭉텅이를 들고 종량제에 다소곳이 버렸다. "미안해, 미안해." 퍼런색 종량제에 담긴 시퍼런 백합은 한없이 처량했다. 일부러 그 백합을 보려하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진짜 살아있는 뭔가를 죽인 느낌이 들어서, 미안해서.



 그때 나는 왜 가위를 들었던 걸까. 그냥 집에 두길 원하셨던 부모님께서 다시 꽃을 집에 들일까봐? 부모님과 다툰 뒤였기에 감정이 격해져서?

 


 나는 그날 내 고양이를 위해 다섯 송이의 백합을 죽였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도 목을 잘랐다. 그 행동의 기저엔 사랑이란 감정만이 다였다. 내 고양이를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나는 그날 내 사랑을 위해 다섯 송이나 되는 꽃을 죽인 거였다. 물론 꽃을 죽인 날은 그 뒤로도 더러 있었다. 부모님이 꽃 선물을 받아오실 때면, 특히 그게 백합 류라면 꼭 버려야 한다며 퍼런 종량제에 또 다시 시퍼런 꽃들을 내던졌다.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단순히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심장이 말랑해지고, 살아갈 가치가 생기고, 내 목숨 하나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것.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니 되려 사랑은 누군가를 참으로 잔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유 없이 잘려나간 백합 줄기들 말이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도, 내 고양이를 위하는 마음만큼 끝까지 백합의 숨을 끊어트리기 위해 망설임 없이 가위를 들었던 것. 그날 내가 죽였던 백합들은 영문이 없을 것 같다. 당신 부모님을 위해 온 나를 왜 죽이는 거지? 하면서.


 앞으로 난 살면서 또 몇 송이의 꽃들을 죽이게 될까. 그로 인해 내 고양이가 오래오래 살게 되어 행복해하면서도, 지난 십 몇 년 간 내가 죽였던 꽃들에 대한 명복을 빌까. 사람은 누군갈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잔인해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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