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희 May 30. 2022

쾌락과 살인의 상관관계




 아주 오랜만의 브런치 글이다.

최근 일과 운동에 빠져 제대로 사색에 빠진 시간이 없어 쓰고픈 글의 주제도 찾지 못했는데, 유독 생각이 많은 밤, 인상 깊었던 주제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다루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했던 주제가 하나 있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

리하르트 폰크라프트에빙의 <광기와 성>


 프로이트의 스승인 폰크라프트에빙 교수가 쓴 책으로, 다양한 성 도착증 환자들에 대한 사례와 그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적어낸 말그대로 '변태적 성심리'를 정신학적으로 분석하듯 써낸 책이다.

이 책엔 정말 다양한 도착증들이 나온다. 그 당시의 도착증인 만큼, 살인은 물론 시간, 폭행 등등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단순히 '취향 존중'이라고 볼 수 없는 환자들이 말이다.


이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쾌락과 잔인함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는 것.


 이 문장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다룰 때의 서론으로 시작된다. 성욕이 과잉될 때, 육체가 쾌감의 정점으로 향해 돌진하면 할수록 점점 더 살인에 대한 욕망과 피의 갈증이 무의식적으로 고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적으로 강하게 흥분하는 사람들은 섹스 중에 종종 서로 할퀴거나 깨물기도 한다고 서술한다.


 필자는 성인 로맨스 웹소설의 작가로서, 이러한 다양한 성 도착증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흔한(?) 성향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리하여 사드 백작의 <소돔 120일>도 읽었고, 레오폴트 폰 마조흐의 <모피코트를 입은 비너스> 또한 읽었다. 두 책 모두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기원인 작가들이 써낸 최초의 책들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에 대해 내 의견을 짧게 적을 생각이다.





1.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아주 강한 자극을 찾는다.

몸을 후려치고, 뇌의 신경을 후려치고 두 눈에 번쩍 뜨일 만한 강렬한 자극을 말이다. 그렇게 뇌를 자극하는 데에 제일 정점인 감정이 바로 사랑이다(=성욕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자신 역시 낯설어하면서도 사랑이 주는 강렬한 자극에 뇌가 얼얼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 사랑하는 이와 살을 나누고 싶은 간절한 욕망, 그리고 마침내 성관계를 할 때 느끼는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충격.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감정은 아주 강한 자극이고 또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에 반하는 자극이 바로 분노이다.

사랑과 분노, 둘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모순될 만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정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두 감정에게 아주 강렬한 뇌의 자극을 느끼고,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점을 책은 주목했다.



 고대의 문인들 역시 쾌락과 잔인성의 상호관계에 주목했다. '쾌감과 고통'이라는 글에서 블룸뢰더는 육체의 쾌감과 피에 대한 갈증 사이에 심리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역설했다. 블룸뢰더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설인 '죽음과 기쁨'의 주제를 살펴보자고 했다. 수수께끼 같은 쾌감의 인신공양, 사춘기의 성욕을 자살과 매질과 쾌감 성향에 결부시키는 것, 즉 성욕을 채우려는 모호한 미지의 욕망으로 성기에 상처를 주는 것 등이다.



뇌는 강한 자극을 찾고, 그리하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짜릿한 통각의 감정인 사랑과 분노는 종이 한 끗 차이로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


종종 영화 혹은 포르노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죽고 싶어!"

혹은

"너무 좋아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이러한 말들을 해대는 여성 혹은 남성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쾌감에 젖은 것을 넘어서서 쾌감 그 이상의 황홀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표정. 오르가즘의 쾌락 그 이상을 넘어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목을 조를 것 같은 표정.



<그 밖에도 사랑과 분노는 가장 강한 열정일 뿐만 아니라 강렬한 열정의 유일한 형태이기도 하다. 사랑과 분노 모두 대상을 찾아 이기려 한다. 그 둘 모두 정신을 크게 흔드는 작동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쾌감도 다른 경우에 분노에 고취된 행위와 같은 행위를 밀어붙인다. 사랑도 분노도 들뜬 상태인데 정신을 힘차게 움직인다. 영광은 쉽게 파괴적 광증으로 이어진다. 욕정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적대적 행동으로 해소하려고 날뛴다.
 이런 광기는 단순한 신체적 흥분이 아니다. 사실상 강한 효과를 원하는 의지를 과장한다. 또, 최상의 효과를 내는 데는 고통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절정의 정념에 취하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려 하고, 상처를 입히고 죽이기도 한다.(롬브로소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발정기의 동물에서 확인했다.)>



 위 문단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사랑과 분노 역시 인간의 정신과 뇌를 강하게 흔든다는 점, 그리하여 사랑과 쾌락이 극단적으로 치솟아 올랐을 때, 더한 자극을 찾는 뇌가 본능적으로 고통을 찾는다는 것. 단순히 신체적 '흥분'을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치솟은 자극 탓에 본능적으로 파괴적 분노 혹은 광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과 분노가 밀접한 이들은 모두 사디즘, 마조히즘에 깊게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일 것이며 남들보다는 조금 더 성욕이 많은 케이스일 것이다. 모두가 그런다는 것이 아니라!)


 쾌감이 극대화될 때, 사랑과 쾌락이란 감정에 짜릿한 무언가를 느끼는 뇌는 그 이상의 감정을 넘어선 분노에까지 다다르는 게 아닌가 싶다. 바로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사디즘, 마조히즘 아닐까. 본능적으로 자극적인 것을 찾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2.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정신학적인 배경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바로 수컷, 암컷의 본능적인 욕구라고 한다. 특히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볼 때, 사디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은데, 그 원인으로는 사디즘 성향 자체가 남성, 즉 수컷의 생리적 특징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같은 수컷과 수없이 싸워야한다. 그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암컷 앞에서 내가 '강한 수컷'임을 증명해야만 하고, 그렇게 번식에 성공하여 자신의 유전을 후대에 남겨야만 한다. 이러한 점 탓에 남성은 여성보다도 더 공격성을 타고났다고 책은 서술한다.



<어떤 동물이든 호전성과 죽이고 싶은 욕구는 수컷의 타고난 성격이다. 수컷의 생존본능에서 생식과 살의는 밀접하다.>



 마조히즘 역시 다르지 않다. 마조히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 또한 압도적으로 여성들이 많은데, 이 역시 암컷의 생리적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에서 볼 때, 수컷은 수컷과 싸워 마침내 이기고는 마음에 드는 암컷을 차지한다. 보통 이러한 과정에서 암컷은 자신이 둘 중에서 '선택'하기보단, 싸우는 수컷들 사이에서 결국 이기고야 마는 더욱 더 '강한 수컷'을 본능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원하게 된다. 암컷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둥지를 지어주고 새끼들을 지켜줄 더 강한 수컷을 원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성들의 마조히즘 역시 그러한 '강한 수컷'을 원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더 과한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했다. 다른 여성들보다 유독 성욕이 더 많고, 유독 더 '강한 수컷'을 좋아하는 소수의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독특한 성향이라고 말이다. 강한 수컷에게 복종하며 심지어 그에게서 매를 맞는 것, 욕을 듣는 것에 흥분하는 것. 일반인들이 보기엔 괴기할 수 있지만, 뇌해부학적이든 선천적이든, 결국 마조히즘 역시 더욱더 '강한 수컷'을 원하는 암컷의 동물적인 욕망이 과잉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은 이렇게 말한다. 사디즘 성향을 가진 이는 수컷의 생리적 욕구가 과한 사람이고, 마조히즘 성향을 가진 이는 암컷의 생리적 욕구가 과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신기하고 놀랍게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수컷과 암컷, 자연 속에서 어우러지는 성적인 욕구와 본능적인 욕망이 과잉되어 나타나는 성향임을 알 수 있었다.




3.


 책에선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을 모두 환자라고 서술한다. 1886년도에 써진 책인 만큼 이 시대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심각한 문제로 인지하여 정신병원으로 향했을 것이다. 여자에게 맞고 싶고, 여자의 발에 치일 때 사정한다고. 책 역시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모두 정신병으로 분류한다. 지금 보면 "이 정도면 뭐" 싶은 것들까지 모두 치료할 환자로 간주한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욕구가 너무나도 과분출되어 범죄까지 저지른 환자들의 뇌구조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사디즘이 너무나도 심해 심지어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라던가. 살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시체를 강간하고, 그 시체를 훼손하며 흥분한다던가. 그러한 범죄자들의 뇌를 해부했을 때 실제로 평범한 뇌와는 달랐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느 한 부분이 기이하게 더 발달되어 있다던가, 덜 발달되어 있다던가. 이러한 것을 보면 정신병은 꼭 후천적인 트라우마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듯 싶다. 남들보다 더 예민한 뇌로 태어난 사람들이 정신병을 얻을 확률도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결국 인간 본능에 배경을 둔다고 해도 범죄를 저질러선 안 된다. 반드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 져야만 한다. 근래에 본 기사 중 조금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하나 있다. 변을 조금 흘렸다는 이유로 여성이 연인 남성을 살해했는데, 그 핑계로 살인자가 했다는 말이 바로 "SM 플레이로 했던 폭행이었다"라고 했단 것이다. 둔기로 머리를 쳐 살해한 것이 과연 상대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적인 플레이인 걸까? 말도 안 되는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바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성욕 과잉 환자가 바로 저 기사의 여자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하는 과한 사디즘 욕망 때문에 상대방의 합의도 뭣도 없이 자신의 성욕대로 이끌려 상대방을 심지어 살해까지 해버렸다는 것. 심지어 살해하는 순간마저 쾌감의 욕망으로 가득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사디즘이든 마조히즘이든 무엇이든 서로 간의 합의가 중요할 것이다. 단순한 성적 취향이 범죄로 이어지는 순간 그것은 존중받을 가치 없는 정신병이 되고야 만다. 이 살인자의 어처구니없는 핑계에 대한 내 생각의 결론은 "저 여자는 사디즘 치료를 받아야겠군" 이었다. 물론 자신이 병적인 사디스트라는 증언도 거짓일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 적절해야만 한다.






 다시 생각해도 의아스럽다. 쾌락과 잔인성은 한 끗 차이라는 것. 극단적인 흥분에 다다를 때 서로를 할퀴고 깨물며 분노하며 흥분하는 인간들도 꽤 많다는 것. 쾌락이란 것은 무엇일까. 자극이란 것은 무엇일까. 왜 인간은 자극에 취약한 동물인 걸까. 여러 생각이 듦과 동시에 "모든 도덕과 법과 세상의 교리는 성욕의 결과일지 모른다."라고 책 맨 첫 장에 써내려갔던 폰크라프트에빙 교수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자극에 좌지우지되는 동물이고, 그것은 즉 성욕과 분노에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괴상한 성 도착증이 모조리 다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연관되어지진 않겠지만, 쾌락과 잔인성의 상호관계, 사디즘, 마조히즘과 인간의 동물적 특징의 연관성은 꽤나 놀라운 발견이었다.


<광기와 성>은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이다.

아직 모두 읽진 않았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후반부가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쾌락과 욕망의 노예, 인간 : 소돔 120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