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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Jan 05. 2022

쾌락과 욕망의 노예, 인간 : 소돔 120일



<미하일 브루벨, 날아가는 악마>





요즘 읽고 있는 책이 하나 있다.

D.A.F. 드 사드의 '소돔 120일 혹은 방탕 주의 학교'


 사실 이 책은 이미 '살로 소돔의 120일'이라는 악명 높은 영화로 소문이 이미 자자하여 언젠가 제목을 들은 적이 있었다. 흘려들은 이야기로 얼핏 기억하는 영화 내용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인간의 배변, 동성애, 각종 고어적인 요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욕적인 행위는 다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원작에서의 악명은 영화보다도 몇 배 더했다.


 글로 표현하는 것과 영화로 표현하는 것엔 하늘과 땅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들의 눈에 생생하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과,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뜻을 설명하는 것은 아주 크나큰 차이이다. 그러한 차이로 '살로 소돔 120일'과 '소돔 120일'은 표현하는 그 수위가 천지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 약 3분의 2 분량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는, '읽어 해치웠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매일 거의 100쪽의 분량을 해치웠고, 그 결과 대학교 전공책 뺨칠 법한 두툼한 내용의 전반부를 이미 완벽히 '먹어 치워' 버렸으니 말이다.






 사드는 실제 그 시절, 방탕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다 붙잡혀 감옥을 자주 들락날락했다고 한다. 채찍으로 여성을 체벌하여 벌어진 상처 속에 밀랍을 붓는가 하면, 처제와 바람을 피우고, 창녀에게 취음제를 먹였다가 그 부작용으로 인해 살인미수 죄로 붙잡히기도 한다. 그렇게 붙잡혀 감옥에서 쓴, 한마디로 옥중서신이 바로 '소돔 120일'이다. 제 형기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드는 그렇게 이 악명 높은 글을 휘갈기며 자신의 최후를 기다렸을 것이다. 자연을 원망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그는 자신의 뇌를 끄집어내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갔다.

 

-


 그는 인간이 악행을 저질러야만 쾌락을 느낀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미덕이 아닌 악행을, 그리고 금기된 행위를 저질러야만이 엄청난 쾌락과 환희를 느낀다고 말이다. 누군가의 명치 깊숙이 칼을 찔러 넣을 때. 누군가의 아내를 사랑할 때. 누군가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럴 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쾌락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여 책에서 등장하는 네 명의 등장인물은 모두 오로지 삶의 목적이 쾌락 하나뿐이다. 쾌락을 위해서 저지르는 온갖 범죄 행위들은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열변한다.


 하늘과 땅과 우주를 창조해낸 이 대자연이 인간에게 한계 없는 상상력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태양을 부수고, 이 우주 전체를 날리게까지 하고픈 욕망을 줬으나, 다만 먼지 같은 인간이라는 종자로 만들어 그것의 발끝조차 닿을 수 없는 역량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사드는 이에 매우 분노하며 자연을 원망한다. 그러한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정해놓은 사회적 테두리로부터 벗어나 살아가는 생명으로서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드는, 그리하여 기독교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글에서도 신성모독적인 표현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열거되어 있고 본문에 들어가기 전 당신이 직접 경고를 하기도 한다. 신과 자연에서 벗어나 그저 살아 호흡함으로써 한계 없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그것이 생명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드는 '소돔 120일'에서도 제 가치관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한계 없는 상상력과 욕망 그리고 호기심을 줬으나 그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못한 대자연에 대한 회의. 자연을 매우 싫어하는 주인공들은 그 이유로 여성의 성기, 임신한 여성을 혐오스러워한다. 여성의 성기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자신들조차 그곳에서 태어났으니 자연 그 자체를 품고 있는 여성의 성기를 보기조차 싫어하는 주인공도 있다. (이런 이유로 주인공들은 대부분 항문 성교를 즐긴다.) 심지어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조차 원망한다. 당연히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당시 사드가 얼마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간절했는지 드러나는 항목인 듯하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를 때야말로 엄청난 쾌락과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것조차 자연이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하고 사드는 고찰한다. 악한 것을 저지르고 쾌락을 느껴 발기하는 것조차 자연의 한 부분이고 자연이 만든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본능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모순되는 것은, 주인공들은 자연을 매우 원망하면서도 순순히 자연의 시스템을 따른다. 악한 짓으로부터 쾌락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 역시 자연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니 곧이곧대로 따르겠다고 말하며 맘껏 즐긴다. 부자와 거지의 빈부격차 또한 자연이 그렇게 만들어낸 이유가 있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똑같다면 우주의 섭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필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궁금증이 들었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배우고 들은 모든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관념을 벗어던지고, 살해와 강간이 합법적으로 매일마다 난무하는 세상이라면, 그곳은 되려 미덕과 선행이 금기시되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군가를 살해하고 상해 입히는 것에 흥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금기되는 짓' 그 자체를 몰래 저지르고야 만다는 행위에 흥분하는 것인가.

 

 나는 전자에 동의한다.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어쩌면 성악설의 민낯을 내뱉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아무리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짓이 합법인 세상이 있다 해도 인간은 선행을 저지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더욱 고통스럽게 죽음을 선사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단순히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닌 정수리 한가운데 칼을 꽂고, 관절 하나하나를 부러뜨린다거나, 하는 극악무도한 짓들을 연구하며 그것을 즐길 것이다. 우리가 자라나며 배운 도덕적 관념과 사회적 윤리의 정의를 집어던져 말 그대로 무법의 세상이 된다면 분명 이 지구는 피 냄새와 신음소리로 낭자할 것이다.


 아주 가끔, 나는 남들 앞에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잔인한 상상을 하곤 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 역시 살면서 그런 상상을 몰래 저지르며 홀로 고개 저었던 적이 있었다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호기심에 그치는 것인지 정말 내 속에 억눌러온 인간 본능의 비명인지는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바로 그것을 저지르지 못하게 나 자신을 누르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배워온 법이고 또 도덕적 이치일 것이다.


-


 그러나 사드는 이렇게 묻는다.

 자연이 그렇게 만들었고 인간 자체가 악한 행위에 쾌락을 느끼는데 그것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하여 '소돔 120일'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첫 장부터 동성애와 근친상간이 나오고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스캇톨로지 페티시가 등장한다. 똥오줌이 난무하고 주인공들은 그것을 주무르고, 먹고, 던지고, 섞는다. 그것을 보며 한 주인공은 외친다.



인간은 미덕과 아름다움보다는 퇴폐와 추악함에서 더욱 충격을 받으며 쾌락을 느끼기 마련이지. 진정한 욕망은 바로 더러움과 추함에서 오는 거야!


 인간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며 흥분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아름다운 미소녀 미소년들을 납치하고 온갖 더러운 짓을 시킨다. 스캇톨로지로 시작한 이들의 욕망은 체벌, 살해, 심지어 고문에까지 이르며 가면 갈수록 그것을 표현하는 수위가 잔인하리만큼 한계선을 뚫어버린다. 그 모든 것을 읽으며 나는 중간중간 메스꺼움을 느꼈고 또 왜 내가 이것을 읽고 있는가, 하는 회의감에 머리를 쥐어잡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쾌락에 대한 집착이 과연 어느 결과까지 치닫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이라는 종자의 민낯을 본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역겹고 더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러나 사드가 말한 퇴폐와 추악함에서 더욱 충격을 느낀다는 말에 맞게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 책의 3분의 2를 읽어 해치웠으니 말이다.


 아직 3분의 1이 남았으나 마지막 장에 다다를수록 나는 이맛살을 찌푸릴 것이고 또 더한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면서도 더욱 충격받으며 그것들을 모조리 읽어 해치울 게 분명하다. 이 작가가 미친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덮진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사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략 알 수는 있었다. 물론 책 속의 주인공들이 애먼 아이들에게 온갖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하는 것이 당연히 윤리적으로 너무나도 화가 나고 또 더럽지만 말이다.






 이성과 도덕적 윤리를 집어던진, 인간 그 자체의 인간은 과연 어떤 행위로부터 진정한 쾌락을 느낄까.

욕망이란 목적하는 무언가를 이루고 쟁취해내면 허무하게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 간절하게 욕망하는 것일수록 그것을 이루어내면 허무함은 더욱 커간다. 주인공들은 욕망 그 자체에서 오는 희열을 맛보기 위해 심지어 납치해온 아이들의 동정을 미루고 미루기로 약속한다. 간절하게 그들을 덮치고픈 추잡스러운 마음속에서 그들은 끓어오르는 욕망을 느끼고 그로 인해 더더욱 쾌락을 맛본다. 사드는 욕망과 쾌락,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소돔 120일'에서 정의한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내가 받을 충격이 감히 예상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회의감과 그리고 이런 극악무도한 상상을, 그리고 그 짓을 저지르게 만드는 쾌락이라는 짐승을 이토록 사납게 만들어낸 우리의 대자연에 대한 원망조차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드의 말에 맞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더욱 눈에 불을 켜며 읽을지 모른다. 극악무도한 범죄가 여전히 판치고 있는 21세기 현대인들의 세상, 사드는 그 깊숙한 내면까지 뚫어 보며 한낱 먼지 같은 이 미물을 또렷이 직시하고 그 민낯을 밝혀낸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책으로서 그는 나에게 묻는다. 방탕과 쾌락만이 가득한 그들의 끝은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와는 달리 매우 추잡하고 혐오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욕망에 이끌린 인간의 최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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