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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터리 공작소 Nov 20. 2019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 그를 떠나보내며...

오늘 책장을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상당히 많이 읽었다.

이 책장에는 좀 모아서 꽂아 두었네 ㅋ
여기저기 책장에 꽂힌 하루키의 책들
1.상실의 시대
2. 댄스댄스(상,하)
3.1Q84(1~3)
4. 하루키 잡문집
5. 색채가 없는 다자키....
6.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7. 여자 없는 남자들
8. 먼 북소리
9. 달리기를 말할 때...
10. 태엽 감는 새(1~4)
11. 1973년의 핀볼
12. 양을 쫓는 모험
13.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4. 빵가게 재습격
15. 스푸트니크의 연인
16. 비밀의 숲
17.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18. 작지만 확실한 행복
19.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등등


참고로 국내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와 단편소설집에는 중복된 작품들이 많다.
제목은 다른데 여기저기 같은 작품이 겹쳐 있어서 조금 속는 기분이기도 하다.

하여간, 내가 어떤 이유로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이렇게 많이 읽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사서 읽었을까?
좋아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읽어온 걸 보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끌리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읽으며 재미있는 것도 있었고,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 억지로 읽은 것도 있었다. 근래에 나온 작품일수록 읽는데 힘들었다. 왠지 똑같은 패턴인 거 같고, 그래서 지루해져 버리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도회적이고, 말수가 그다지 없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거나 무심한 듯한 태도.
아니면 그의 문체인가? 하루키를 읽으면 묘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이 무엇을 입었고 어떤 모양새며 어떤 색이고 등등 심지어 브랜드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음식에 관한 것도 자주 등장하고 음악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하루키 마니아들은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직접 하거나 , 소설 속에 등장한 음악을 즐기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대부분 섹스가 있다. 자연스럽든 그렇지 않든. 그는 이것을 적절히 잘 이용하는 듯 보인다.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키 마니아는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특이했던 거다.
그 특이했던 또는 신선했던 느낌이 이제는 더 이상 없다. 그가 잘 못쓰거나 해서는 아니다.
내가 변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던 시절에 나는 그런 것을 선호하는 상태였을 거다. 세월이 흘렀고 나는 변한 게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그의 소설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내가 변해왔고 변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괜찮아지는 밤이다.
또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 못지않게 인기가 있다. 간혹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는 글도 많이 보았다. 그의 에세이는 대체로 짧고 밋밋하다. 정치적인 소재나 사회적 이슈거리는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로 주목받거나 휘말리기 꺼리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일상 주변의 이야기를 짧고 간단하게 쓴다.
좋아하는 음식들, 두부, 맥주, 장어, 주변 지인들의 일화, 음악, 영화,...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이런 말로 대체로 할 수 있는 느낌의 글이다.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괜찮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소설을 쓰기 위해 스스로 정한 패턴대로 꾸준히 달리고 정해진 시간 동안 반드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쓰며,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다.

노벨상이 발표될 즈음이면 항상 그이 이름이 후보에 거론되지만 그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보인다. 실제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겠지만...

오늘 나는 소설 따위를 왜 읽었을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 일은 ‘타자를 이해하기’라고 말한다. 내가 만약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어떨 것인가. 즉,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인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소설을 읽어서 특별한 지식이나 인간적 소양을 쌓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없는듯하다.
인간들은 오랜동안 소설을 읽어왔다. 왜 일까? 재미 아니겠는가!

지금은 재미있고 즐길 것이 넘쳐나는 다양한 미디어의 시대이지만, 이런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 오로지 종이에 적힌 활자만이 유일한 미디어였던 시절에 이보다 재미있는 것이 있었을까?
다른 장르는 몰라도 소설은 재미있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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