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열대과일 품질의 우수성
어릴 때는 망고, 구아바, 용과가 뭔지를 몰랐다. 책을 보면서 상상했던 멀고 먼 더운 나라 과일로만 알았다. 제주도에서만 자란다는 감귤도 신기해했던 때가 불과 몇십 년 전인데, 열대 과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자란다니 세상은 많이 변했다.
말로만 들었던 온도 상승을 계절마다 체감하고 있다. 폭염, 폭설, 가뭄, 이상저온 등 기상 이변이 매년 발생하면서 농민들 얼굴에 주름이 더 늘었다. 지난 100년간의 세계 평균 온도 상승은 0.8℃이나, 한반도는 그 두 배인 1.7℃를 기록하며 빠르게 변했다고 한다. 온도 상승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변하는 기후를 잘 활용한다면 득이 될 수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아열대 과일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고 있고, 본토인 전남 진도에서는 바나나, 해남의 애플망고, 경기도 양평에서까지도 많은 종류의 아열대 과일들이 농가 소득을 올려주고 있다. 강원도 남부 삼척에서 까지도 파파야, 용과, 파인애플까지 이국적인 과일을 수입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변하는 기후에 잘 적응하는 사례들이다.
얼마 전(2022.03.21~25) KBS-TV의 '인생극장' 프로에서는 전남 진도에서 청년 가족이 바나나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농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싱싱하게 잘 자라는 바나나에 신기해하면서도 맛과 향, 당도와 쫄깃함과 신선도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10여 년 전 필자가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한국의 농산물을 현지 농림부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공수된 농산물 중에는 예상치 못했던 제주도 산 애플망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포장을 열자마자 그 향과 빛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도, 빛깔, 향뿐 아니라 정성이 담긴 포장재 등 제주도 산 망고에 현지 공무원들이 놀라워했다. 상식적으로도 열대과일은 당연히 캄보디아 현지산이 좋아야 할 텐데 한국산의 품질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식물은 잎의 엽록소를 통하여 탄소 동화작용을 한다. 낮에는 햇빛과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하여 동화 물질을 생산하는데, 밤이 되면 이 물질은 열매와 뿌리에 저장된다. 낮 시간에는 32도 내외까지는 광합성 작용이 왕성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효과는 증가하지 않는다. 낮에 만든 동화 물질은 야간온도가 24도 내외로 내려가야 식물체 내에 이동과 저장이 원활하여 품질이 좋아진다. 우리 열대야처럼 야간의 더운 날씨에는 동화 물질이 열매에 저장되지 못하고 고온에 시달려 호흡 에너지로 소모되고 만다. 따라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적당히 나는 한국과 열대국가의 기상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땅의 품질이 뒤지지 않는 것으로 본다.
2020년 한국의 열대작물 면적은 과수 3,800ha, 채소 250ha 등 4천여 ha이다. 그만큼 열대작물 농사에서 소득을 올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아열대 작물은 망고, 용과, 구아바, 파파야, 바나나, 커피, 올리브 등 새로운 소득작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연료비나 재배 관리의 어려움이 있으나, 시설의 현대화와 재배기술 보급으로 아열대 농작물의 경쟁력을 길러가고 있다.
외국 작물이 우리나라에서 재배 가능하다 해도 아직은 하우스에서 겨울을 지내야 하니 연료비를 무시할 수 없고, 시기별 온도조절과 난이도 높은 개화기 관리 등 아무나 덤빌 수 있는 농사는 아니다. 최근에는 시설재배용 보일러 시스템도 개발되어 비용을 절감해가고 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각종 농산물은 운송 과정에서 부패를 막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미숙과를 생장촉진제로 성숙시키는데 자연스러운 맛이 나올 리가 없다. 식물검역소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수입 농산물 전수조사는 불가하여 샘플조사 정도일 것이다. 인체에 해를 주는 잔류독성과 방부제 처리 등 완벽한 검역체계가 필요하다. 어쨌든 외국 농산물보다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열대과일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한국에서는 잔류독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독성 농약은 아예 생산을 못하도록 제도화되었다. 신토불이, 이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좀 비싸더라도 우리 것을 애용하는 것이 농가를 위하고 소비자의 건강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온도 상승은 한국에서의 농작물 생태계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구 온도 상승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처럼 변화가 없다면, 21세기 말쯤에는 사과 면적은 감소하여 강원도 등 산간지대 일부에서나 재배가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사과 값이 금값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복숭아 역시 충북, 강원, 경북에서 재배가 증가하고 다른 지역은 감소하고 있다. 2090년경에는 강원도 일부와 전북의 고랭지에서나 복숭아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포도 역시 경남 지역에서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줄고 강원도에서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처럼 맛있는 포도는 2050년 무렵에는 구경조차 힘들 수도 있다. 단감은 남해안 지역의 특산물이었는데 내륙 지방까지 북상하여 단감 면적은 증가할 것으로 본다. 양파와 단감은 온난화에도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열대작물 연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이다. 신 정부에서도 농업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농민과 국민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한반도에서 열대과일 생산 기반을 조성해 주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응한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길러주는 신 정부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