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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ul 27. 2023

작은 도서관의 매력

소소한 에세이 네 번째 과제

  육아휴직 6개월 중 꼬박 4개월을 채우고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계획했던 것 중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아이의 학교 생활 적응’은 아이가 기대 이상으로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해 주어 현재까지는 훌륭하게 달성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는 내 의지와 달리 많은 변수가 있어 뜻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선유도서관 파먹기’이다.      


  우리 집과 선유초등학교 사이에 위치한 선유도서관은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동네로 시집와서 마음 붙일 곳 없을 때 유모차를 밀고 지나다니며 눈여겨보았던 곳이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이가 낮잠 자는 사이, 신랑이 얼른 다녀오라고 해서 드디어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처음 들어가 보았다. 캠으로 사진도 찍고 회원증을 발급받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는 야심 차게 독서토론 클럽에도 가입했었다. 그런데 신청자가 나 밖에 없어서 첫 모임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결국 도서관장님과 단 둘이 매주 만나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었던... 다소 당황스럽기도 한 추억. 약간은 구석진 곳에 위치했지만 우리 집 거실 베란다에서 훤히 보이는 그곳. 지금은 무척 가깝지만 신혼집과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도 막 6개월이 된 딸아이 이름으로 북스타트를 신청해서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처럼 다니며 책놀이를 하기도 했다. 올해 벌써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하굣길에 들러 책도 읽고 매일같이 대출 반납을 하며 ‘도세권’을 한껏 누려야지!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읽고 도서관에 뼈를 묻어야지! 다짐했는데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청천벽력 같은 공고가 붙었다. 4월 25일부터 전체적인 리모델링으로 휴관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재개관이 12월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공고였다. 내 휴직은 8월이면 끝나는데 말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나에게는 한 장의 카드가 더 있었는데, 둘째의 어린이집과 같은 건물인 주민센터 4층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다가 번번이 기회를 놓쳤는데, 그 이유는 오픈 시간이 10시 ~ 5시로 다소 짧은 데다 점심시간엔 1시간 동안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머릿속에 잘 저장하고 루틴 화하고 나니 이 작은 도서관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9시 전에 아이들 등교, 등원을 시키며 무거운 책들을 1층 반납함에 넣는다. 가벼워진 몸으로 요가원에 갔다가 11시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면 아까의 책들은 모두 반납 처리가 되어있다. 선유도서관 어린이실의 반도 될까 말까 한 크기여서 장서의 양은 턱없이 적다. 하지만 대신 복층 다락방 같은 구조물에 작은 회의실 같은 공간도 있고, 푹신푹신 키즈카페 같은 분위기에 빈백까지 놓여 있어서 나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어른 책이 적은 것은 여전히 아쉽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여기 있는 그림책을 모. 두. 빌려보기’로 목표를 수정하고 나서 부지런히 나르다 보니 조만간 정말로 목표를 달성하려는지 70% 이상은 대출해서 본 상태이다.

  매달 가족들 아이디로 희망도서 구입을 신청하는 것도 내게는 소소하지만 큰 기쁨이었는데,  아쉽게도 5월 신청분부터 이 작은 도서관에서는 처리되지 않고 있었다. 동시에 다른 도서관에 신청한 책은 진즉에 처리되어 상호대차로 받아보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여, 마음씨 좋은 사서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어 본 적도 있다. 거의 매일 봐서 어느 정도 안면을 튼 내게 사서님은 다짜고짜 엑셀 파일을 열어 보여주시며 “이렇게나 신청자가 많아요. 매달 살 수 있는 금액은 40만 원뿐이라 다 사지도 못해요. 아무거나 신청하면 또 잘리고요. 다른 도서관은 신청자가 없다는데 여기는 선유도서관이 닫아서 다 몰리는지 일이 너무 많아요.”하고 고충을 털어놓으셨다. 매달 어떤 기준에 따라 살 것을 딱 선정하고 마감하고 구매한 뒤, 다음 달 것을 다시 월말에 반복하면 되지 않나?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쯤 거기 옆자리에 앉아서 희망도서 구매를 도울 수 있다면 봉사활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손목에 피부색 파스까지 붙이고 혼자 고군분투하시는 이모뻘 사서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영등포구립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희망도서 리스트의 ‘신청취소’ 버튼을 누르고, ‘한가하다는’ 옆 동네 작은 도서관에 다시 7월의 희망도서로 줄을 세워두었다.      


  매번 스무 권이 넘는 그림책을 큰 에코백에 담아 가는 날 보고 무겁겠다며 걱정해 주시고, 문도 대신 열어주는 사서님이 계신 곳. 운 좋으면 4시쯤 갔다가 첫째와 둘째의 친구들도 우연히 만나서 한 시간 정도 신나게 놀다 올 수 있는 곳. 큰 구립도서관과 달리 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곳. 걸음마 하는 아기들도 아장아장 놀러 오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 휴직 기간이 아니었다면 한번 와보지도 못했을 작고 소중한 마을도서관은 나에게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먹고 알 먹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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