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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Dec 16. 2023

나와 자전거의 역사(1)

소소한 에세이 다섯 번째 과제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경기도 고양시로 나들이 다녀오던 길, 자전거를 비틀비틀 어설프게 타는 아주머니 행렬과 마주쳤다. “자전거도 못 타는 사람들이 왜 저러고 다녀...” 하고 핀잔을 주는 남편의 말에 다시 보니 형광색 안전조끼 같은 것을 모두 맞춰 입고 있었다. 더 자세히 보니 앞뒤로는 쫄쫄이바지를 입은 인솔자들도 보였다. “아~ 오빠, 저거 자전거 교실 인가 봐. 여기도 저런 게 있구나. 지금 저 아주머니들 얼마나 무섭겠어? 재미도 있고!” 나는 아주 잘 안다. 저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저 나이에 자전거를 배우러 왔을지를 말이다.  

   

 세 살 터울의 자매 중 둘째인 나는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손해를 보며 자란 면이 있다. 고3 때 까지도 온전한 내 방과 책상 없이 계속 언니 방에 더부살이 시녀처럼 살았던 것, 학용품이나 옷이나 책까지도 새로 사는 것 없이 대부분 물려받으며 자란 것, 해외 출장을 다녀오시는 아빠가 꼭 두 개씩 다른 색으로 사 오는 기념품은 항상 언니가 먼저 원하는 것을 고르고 남는 것을 가져야 했던 것, 공부 잘했던 언니 덕에 새로운 학년으로 진학할 때마다 “아! 네가 그 OO이 동생이구나.” 하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가 본의 아니게 실망을 시켜 드리곤 했던 일 등... 맘먹고 이야기하자면 밤을 꼴딱 새울 수 있을 정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몇 가지는 스스로 극복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했는데, 둘째여서 못 배운 ‘두 발 자전거 타기’는 꽤 오랫동안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둘째인 게 왜? 자전거를 못 배운 핑계가 되는 거야? 하고 궁금해했던 친구들을 위해 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곤 했다.




  운동 신경이 좋았던 언니였으니 아마도 대여섯 살 정도였으려나? 부모님은 장녀를 위해 ‘요술공주 밍키’가 그려진 어린이용 자전거를 사주셨다. 물론 반짝반짝 새것이다. 언니는 자전거에 보조바퀴 두 개를 단 채로 복도와 아파트 주차장을 누비고 다니며 자전거를 익혔을 테다. 아빠는 나사를 조절해 보조바퀴 두 개를 점점 높여주다 결국엔 떼어내주셨다. 언니는 금방 요령을 터득했고, 자전거를 잡아주던 아빠가 손을 놓아도 놓은 줄도 모르고 “손 절대 놓지 마!” 하며 어느 순간 혼자 타기 시작했을 것이다. 드라마나 광고의 한 장면처럼.

  3년 정도가 흘러 둘째 딸인 나도 자전거를 배울 나이가 되었을 때, 언니는 자기 자전거에 다시 보조바퀴 다는 것을 결사 반대했고, 부모님은 가뜩이나 좁은 복도에 자전거를 두 대나 둘 수는 없다며... 또 보조바퀴는 어디에 두었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둘째 딸의 자전거 교육’에서 한 발 물러난 태도를 보이셨다. 서운하긴 했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잔다르크처럼 일어나 맞서 싸우는 재주가 내겐 없어서 당시 문방구에서 ‘핫’했던 ‘롤러블레이드-요즘은 인라인이라고 부르는 그것-’를 어린이날 선물로 받기로 합의를 보았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친구들 사이에서 ‘신상’ 롤러블레이드는 꽤나 눈길을 끌었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나는 발을 좌우로 밀며 그것을 곧잘 타기 시작했다. 언니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는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그 뒤를 쫓아다니며 어린 시절의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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