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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Dec 19. 2023

반짝반짝 빛나는 너의 말 #016 놀리면 안 돼.

베이비선배

운전면허를 장롱에서 꺼내어 딸아이를 발레 학원에 데려다 주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그날도 조마조마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까 걱정하며 들어왔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이리저리 들어갔다가 후진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던 중

샛노란색 경차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 저 차는 꼭 노란 요구르트 같은 색이다!" 했더니

"그러게 말이야"라고 대답하는 딸.


잠시 후 그 차에 시동이 걸리더니 -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 출발해 버리는 바람에

마침 그 자리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자리가 딱 나서"

"엄마가 요구르트 차라고 놀려서 가버린 거 아니야?"

"놀린 건 아닌데.."



동네 아파트 둘레에는 짧게 조성된 산책로가 있는데, 다른 길들 과 달리 그곳은 나무도 심어져 있고 고양이들도 사는 곳이라 아이들이 어릴 때 '숲 속길'이라 칭하고 자주 거닐었었다. 요즘은 그곳으로 다닐 일이 없는데, 딸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숲 속길에 가보자고 한다. 오랜만에 가보니 그동안 길냥이들은 몸도 많이 커지고 머릿수도 늘어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많이 줘서 포동포동한 외모와 달리 겁이 많아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뚱냥아, 어디 가니? 뚱냥아!" 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아이가 내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말한다.

"엄마 그건 좀.. 고양이가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

"왜? 귀여워서 그렇게 부른 건데.."

"그래도.. 쫌.. 뚱뚱하다는 말은 그런데.."

"알았어. 안 그럴게."


아이가 놀림받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내심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여섯 살이 되면서 5월부터 태권도를 다니기 시작했고,

딸아이는 내가 복직을 하면서 - 발레 픽업을 다닐 시간이 안되어 - 동생이 다니던 태권도에 8월부터 등록해서 다니게 되었다. 마침 같은 반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흰 띠인 우리 딸은 또래 중에 가장 초보일 뿐 아니라 동생보다 두 띠 정도 아래인데 그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다녀서 기특해하던 중, 같은 반 남학생들이 띠를 가지고 놀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놀린다고? 뭐라고?"

"응~ 동생은 노란띠인데 나는 흰띠라고. 여섯 살 동생보고 선배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야."

"뭐? 웃기는 애들이네! 그래서 뭐라 그랬어?"

(웃으면서) "어 맞아. 동생이 선배야. 근데 아직 어리니까 베이비선배지!라고 했어"


짓궂은 남학생들이 자기들이 선배라느니 동생보다 후배라느니 놀렸다는데

그런 것쯤 아무렇지 않아 하는 멘털이 멋지고,

쿨하게도 동생을 "베이비선배"라고 인정하며 받아치는 멘트에 감탄했다.


괜히 발끈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딸아, 네가 바로 나의 '베이비선배'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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