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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an 19. 2024

천국행 티켓(1)

소소한 에세이 과제 '내가 잘한 일'


  “엄마, 그럼 이거 태오 줄까?”

  우리 집에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장난감이나 작아진 옷이 생기면 아이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태오는 우리 집 막내도 사촌 동생도 아닌, 나의 초등학교 동창생 부부의 네 살배기 아들이다. 태오가 태어났을 때부터 태오의 부모는 나를 가리키며 “태오야, 이 이모가 없었으면 너는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이모한테 잘해라~”라고 거창하게 소개를 해주고는 했다. 이쯤에서 대충 짐작하겠지만 나는 태오의 엄마와 아빠 사이에 오작교를 놓았다. 소개팅 주선 같은 단순한 오작교는 아니고,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부산에서 여중에 여고를 나오고 대학마저도 여학생 비중이 훨씬 높은 교대를 졸업했다 보니 알고 지내는 남자사람친구 – 이른바 ‘남사친’- 가 너무 적어서 아쉬워하던 이십 대의 나는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특유의 오지랖과 넉살로 한 두 번 만난 다음에는 꽤 친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은은한 인싸력’ 만렙의 인간이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는 졸업 후 학원에서 오며 가며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 사실 쑥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던 – 나였지만 수능을 치고 나서 다모임(온라인 동창회 사이트)에는 열심히 찾아 들어가서 이런저런 반창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서울에 와서도 별다른 사심 없이 얘랑도 밥 먹고 쟤랑도 차 마시고 얘랑 쟤랑 친하대서 또 다 같이 술도 먹고 그러면서 크고 작은 초등 동창 기반의 소모임을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군대 가는 애, 유학 가는 애 등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신기한 건 군대 가고 유학 갔던 애들도 어쩌다 한국 들어오거나 휴가 나오면 꼭 나한테 연락이 온다는 것. “홍선생! 잘 지내냐? 나 한국 왔다. 시간 나면 얼굴 한 번 보자” 이 메시지 안에는 너 말고 다른 애들도 좀 데리고 나와보라는 함축적 의미가 있는 듯하여 나는 또 부지런히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공지] 오랜만에 OO이 한국 왔다는데 시간 되는 사람 토요일 저녁 신촌 콜?”

  누구랑 잘해보겠다는 흑심도 없고, 누구 안 나온다고 빈정상하는 일도 없이 그렇게 크고 작은 모임을 기꺼이 만들어가며 20대를 보냈다.      


  나는 이사도 전학도 한 번 해보지 않고 한 동네에서만 자라서 잘 못 느끼고 지냈는데, 중간에 전학을 가거나 멀리 이사 간 친구들은 선뜻 이 동창회 기반의 모임에 오지 못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어서 굉장히 친했던 황모양은 아버지를 따라 1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는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케이스였다. 나는 이 친구와 따로 펜팔도 했고, 대학교 와서는 그 집에서 잠도 자고 아침밥도 얻어먹고 같이 놀았기 때문에 동창들 근황을 신나게 전했는데 듣고 있는 친구 입장에서는 그게 누군지 기억도 가물거리고 별로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나 그 친구는 여중 여고에 여대까지 나오고 모 기업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기에 나보다 더 주변에 여자만 득시글 거리는 환경이었는데...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던 가을에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홍선생! 그 동창들 너만 만나지 말고 나도 좀 껴줘라. 대대적으로 함 열어줘라. 응?”

 “아.. 대대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나는 누구랑 몇 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니까 아는 애들 서너 명 씩만 함께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걔네를 다 모아보자고? 상상해 보니 꽤나 재밌을 것 같았다. 가끔 연락하고 일 년에 한 번은 만날까 말까 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11월 말 어떤 주말에 강남역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날은 약 8~9명 정도가 나왔는데 서로 다들 알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의외로 6년 내내 같은 반도 안 해보고 모르는 사이가 많았다. 하지만 어색하게 자기소개 조금 하고 나서 무슨 중학교를 나왔니? 무슨 고등학교에 누구 아니? 직장이 어디니? 이야기하다 보니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급기야 다음 달인 12월에는 지금 멤버 그대로에 1+1으로 친한 친구를 한 명 더 데려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거짓말처럼 12월에는 정말 스무 명 남짓의 친구들이 모여서 저번보다 훨씬 더 왁자지껄하고 정신없지만 즐거운 모임이 되었고, 기념으로 네이버밴드에 OO초등학교 몇 회 졸업생 모임을 하나 만들고 초대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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