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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Aug 05. 2024

칭찬은 나를 글쓰게 한다

소소한 에세이 과제 - 글쓰기가 내게 남긴 것

  여름방학 숙제를 잔뜩 미뤄두고, 엄마가 언니 숙제만 신경 써주는 모습에 샘이 나서 뾰로통했던 날이 기억난다. 독후감을 다섯 편이나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느냐 물으니 엄마가 일단 광고지 뒷면에 그 책 줄거리를 써보라 하셨다. 퉁퉁 부은 표정으로 대강 끄적여 보여주었는데 엄마는 크게 칭찬하며, 나의 느낌도 써보라 하셨다. 속으로 ‘그런가? 괜찮은가?’ 다소 미심쩍게 생각하며 생각을 덧붙여 적었더니 엄마는 아까보다 더 크게 칭찬하며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 적으면 된다고 하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제목의 책은 이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것인데, 우리 엄마는 그때부터 나를 춤추게끔 조련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이러한 ‘칭찬 조련’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중학교 2학년 도덕 숙제 중에 ‘나의 장점에 대해 인터뷰해오기’가 있었다. 인터뷰 대상은 친구와 가족.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엄마가 해 준 이야기는 뇌리에 박혔다.

  “너는 이야기를 참 재밌게 하잖니. 엄마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네 이야기 듣는 게 그렇게 좋더라.”

  ‘아~! 나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구나.’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난 뒤의 나는 이전의 나와 조금은 다르게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어떤 타이밍에서 웃음이 터지는 지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똑같은 에피소드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할 때는 순서를 바꿔서 말해보는 등의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와서 나만 너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후회의 이불킥을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기에 대한 나의 유사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지인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고 기억해 놓는 것이 큰 자산이기 때문에 더불어 기억력도 좋아졌다.      


  “너는 이야기를 재밌게 하니, 그 능력을 썩히지 말고 글로 써봐.”

  남편의 이 한마디는 내가 작년 이맘때 에세이 교실에 등록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뭘 배우고 싶어도 두 아이에게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저녁 시간대여서 집에다 말하기는 눈치가 보였는데, 남편이 써보라고 한 글이니 그것을 배우러 나가는 나만의 저녁 시간은 매주 혼자서 맛보는 달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같은 시간들이었다. 에세이 수업은 넓은 듯 좁은 내 인간관계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내 글에 대한 따뜻하고 세심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배움의 교실이었다.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에게 내담자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글쓰기도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과 같아서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주로 쓴 글은 선생님께 보여주기 위한 일기와 각종 입시 관문을 뚫기 위한 논설문뿐, 딱히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에세이를 쓰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에세이 교실을 통해 나의 유년기와 성장 과정을 훑어내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감춰두었던 섭섭함이나 상처를 꺼내어 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언뜻 즐겁고 밝았던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사건들도 지금 돌이켜보며 글로 풀어 내다보니 ‘아,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사실은 서운했던 거였어.’ 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고, 과거의 나에게 찾아가 어른인 내가 위로를 해 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마음의 치유가 글쓰기로 인해 찾은 귀한 보물이라면, 지인들에게는 보여주기 부끄러운 민낯과도 같은 글을 서로 살펴 봐주고 애정 어린 조언을 교환하는 글친구(文友)를 얻은 것은 글쓰기가 나에게 준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다.     


  일 년 남짓의 시간 동안 이어진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가 나에게는 힐링 그 자체였고, 글쓰기 (잔)근육을 다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는 소설 쓰기는 가슴 두근거리는 새로운 도전이다. 차마 친한 친구들과 가족에게도 다 말하지 못했던 내 안의 어둠이나 슬픔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빌려 조금씩 꺼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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