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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조리사 근로관계 성립 안해

by 기담

근로자파견 판단과 도급의 경계 ― 대법원 2022다276369 판결을 중심으로

근로자가 누구의 지휘와 명령을 받아 노동을 제공하였는지를 둘러싼 분쟁은 노동시장 구조가 복잡해진 현실 속에서 가장 빈번히 제기되는 쟁점 중 하나이며, 특히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 사업장의 부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법적 성격을 도급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파견근로로 보아야 할 것인지를 구분하는 문제는 단순한 계약 해석의 차원을 넘어 근로자 보호와 기업 운영의 자율성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대법원 2022다276369 사건은 타이어 제조·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원청 회사와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협력업체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협력업체 소속 조리·배식 인력과 원청 회사 사이에 근로자파견 관계가 성립하는지가 다투어진 사안으로, 원심은 파견관계를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부정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공장 구내식당에서 조리와 배식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형식상으로는 협력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원청 회사의 영양사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근무했으므로, 원청과의 사이에 근로자파견 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직접고용 의무 이행과 임금 차액 상당액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원심 법원은 피고 회사 소속 영양사들이 식단 작성, 위생 관리, 배식 방식 등 원고들의 업무 전반에 걸쳐 구속력 있는 지시를 내렸다고 인정하였고, 또한 구내식당 운영이 공장 운영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원고들이 실질적으로 피고 회사의 사업에 편입되었다고 보아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근로의 성립 여부는 단순히 계약 명칭이나 외형이 아니라 지휘·명령의 실질과 업무의 독립성을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이 사건에서 피고 회사의 영양사들이 원고들에게 한 지시는 품질 관리와 결과 확인 차원에 그쳤을 뿐 원고들의 업무 수행 과정 자체를 구속할 정도의 지휘·명령으로 보기 어렵고, 원고들의 주된 업무인 조리·배식과 피고 회사의 주된 업무인 타이어 제조·생산은 성격과 목적이 명백히 달라 서로 결합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따라서 원고들이 피고 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이 판결의 의미는 파견근로와 도급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제시하였다는 점에 있다.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제3자가 해당 근로자에게 직접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을 하였는지, 그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편입되어 공동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는지, 원고용주가 근로자의 선발이나 교육·훈련,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여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이고 범위가 한정된 업무인지 여부, 원고용주가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대법원 2010다106436 판결 등 기존 판례의 연장선상에 있는 법리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청의 영양사가 메뉴와 위생에 관해 일정한 관리를 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파견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지휘·명령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보았고, 구내식당의 조리·배식 업무는 타이어 제조라는 본질적 생산 활동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독립된 성격을 가진다고 하여 도급의 요소를 인정하였다.

실무적으로 이번 판결은 기업들이 구내식당, 청소, 경비 등 부대 업무를 협력업체에 위탁하는 관행이 여전히 도급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협력업체가 독립적 조직이나 설비 없이 단순히 인력을 공급하고, 원청이 그 근로자들을 직접 지휘·명령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경우에는 여전히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원청 기업은 단순한 외주 형식만으로 안심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은 파견근로 보호법의 취지가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누구의 지휘·명령을 받는지를 기준으로 보호 대상을 확정하려는 데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면서도, 기업 운영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독립적 성격이 있는 도급계약을 존중해야 한다는 균형 감각을 보여준 판례라 할 수 있다. 원고들의 주장은 근로자 보호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대법원은 지휘·명령의 실질적 존재와 업무의 본질적 성격 차이라는 두 축을 통해 파견근로와 도급의 경계를 그어내었고, 이는 앞으로도 유사한 분쟁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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