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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Nov 07. 2023

너의 푸른 자유를 마음껏 들이킨 날이었기를...

너의 생애 첫 가을 운동회

보름아~ 안녕~ 날씨가 너무 추워졌어.

이렇게 너에게 편지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야.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서도 아니야. 그냥 너와 나, 우리를 위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누군가 읽어 주었으면 하는 글이 있고, 어떤 글들은 그냥 쓰는 것만으로 내게 의미가 되는 글이 있거든. 엄마는 우리가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들, 우리의 웃음들, 눈물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시간은 흐르고, 너는 커가고, 엄마는 늙어갈 테니까 말이야.

 

2023년 10월 30일. 오늘은 너의 생애 첫 운동회가 있었어. 그동안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너희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빼앗기고 살았니? 그것이 빼앗긴 지도 모른 체 처음부터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 차츰 학교활동이 회복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운동회 개최 이유가 “노랑버스법” 때문에 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소풍을 못 가는 대신”이라니!! 소풍이 운동회로 대체된거야. 이유가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했지. 환경 때문에, 탁상공론 같은 법률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온전히 아이들인 것 같아. 어른들이 많이 노력하고 반성할 문제야. 엄마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매년 가을 운동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건도, 공간도, 기회도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 엄마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해.

 

운동회 날 아침. 엄마는 설레며 일어난 너에게 말했지.

보름아~생애 첫 운동회 축하해.

축하한다는 말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지만, 너는 충분히 설레어했고, 기다렸던 시간이었으니까, 너의 기쁨에는 늘 나의 기쁨을 얹고 싶은 엄마의 표현법이라고 생각해 줘~


너희들의 운동회는 어릴 때 엄마의 운동회와는 달랐어. 엄마 때는 운동회 날이 꼭 가족 축제 같았거든. 모든 식구 총출동!! 식구가 모두 와서 아이의 운동회를 보는 거야. 내 아이 응원도 해주고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엄마 어렸을 때는 삼대가 사는 대가족이었으니까 할머니, 아빠, 엄마가 모두 왔었단다. 운동회날은 가정에서도 큰 행사날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점심에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거든. 너의 외할머니는 운동회 날이면 김밥도 싸고, 치킨도 사 오고, 과일도 준비하고 새벽부터 바빴단다. 요즘 너희들 운동회는 부모 관람은 되지만 부모 참여는 없고, 간식도 절대 싸 오면 안 되니까. 엄마입장에서는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도 모두가 부모님이 올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다 보니, 부모참여 없이 아이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


관람은 가능했으니까, 엄마는 얼른 아침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끝내 놓고 너의 운동회를 구경 갔지.

너의 기대감에 폭죽을 터뜨리기라도 하는 듯, 운동회 날 하늘은 왠지 더 파랗고 쾌청했어. 바람이 선선해서 공기는 상쾌했고, 그날따라 유독 따뜻한 가을 햇볕이 두터워진 점퍼를 벗고, 가볍고 신나게 뛰라고, 너희들을 응원하는 것 같았어.  운동장을 뛰는 아이들의 함성과 발소리에 ‘사락사락’ 너희들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
‘ 아! 그래.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된다니까~ ‘
뛰는 소리, 함성소리에 엄마 마음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더라.


개인 달리기 시합~ “ 너만 보인단 말이야~~~”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 OST 인 <말이야> 속 가사처럼 엄마는 멀리서도 너의 실루엣만으로도 너를 알아볼 수 있었어. 너의 걸음걸이, 네가 서있는 모습만 봐도 말이야.
네가 개인 달리기를 하려고 출발 선에 섰을 때 엄마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단다. 네 생애 공식적인 달리기 시합은 처음이잖아. 너의 심장 소리가 엄마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지.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너는 “소닉” 이 되길 꿈꿨잖아. 보름달에 소원을 빌어도 "소닉"처럼 빠르게 해달라고 빌던 너니까. "소닉"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너는 분명 최선을 다해 뛰었겠지. 엄마의 눈이 뛰는 너를 쫒았어.

“와~ 보름이~1등~1등~” 옆에서 같이 보던 B엄마도 환호해 주는데 엄마 마음이 하늘을 날 듯 두둥실 떠올랐어.
어릴 때 달리기 하면 등수에 따라 손등에 도장을 찍어줬거든. 지금도 그건 똑같더라고. 시대가 흐르면서 바뀌는 것들이 얼마나 많니~. 공통적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나이가 들면서 생각해. 시대가 달라지면서 서로를 이해 못 하고, ‘꼰대’, ‘세대차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도 기성세대와 요즘세대가 같이 즐기고 이야기할만한 공통의 경험이 너무 없어서라고 생각해. 엄마가 경험한 것을 너도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우리에게는 이야기 나눌 공통분모가 생긴 거지. 피니쉬 라인에 있던 선생님들이 에게 도장을 찍어주는 걸 멀리서 보았단다. 손등에 “1등”도장이 찍혔지만 엄마때와는 다르게 공책, 연필선물이 없더라고. 요즘은 필기구가 너무 풍족해서인지,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그래도 1등에게는 작은 선물 좀 주지.’

달리기 시합에서는 맨날 꼴등만 하던 엄마라서 못내 아쉬웠는지도 모르겠어.


‘줄다리기’, ‘낙하산 들고 달리기’, ‘사다리 타고 달리기’, ‘5인 6각 달리기’를 하는 너희들을 보면서 엄마가슴에는 작은 동심원이 퍼지듯 뭉클한 기분이 들었단다.
줄다리기도, 사다리 타고 달리기도, 5인 6각 달리기도 결국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사는 것도 그렇단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도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거든.


혼자만 사는 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공부만 하는 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비교하고 경쟁해서 이기는 기쁨만 아는 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타인의 도전을 함께 응원하는 너였으면 좋겠어.
힘을 모아야 나도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갔으면 좋겠어.

너를 가로막는 어떤 고난과 불행이 온대도 이미 네 안에 이겨낼 힘이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


결국 살아간다는 건, 서로 돕고, 기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니!

네가 열심히 운동회 종목을 하는 동안  엄마는 그렇게 네가 친구들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보름아. 오늘 운동회는 어땠니?

엄마는 바랐단다.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 공평하게 떠있는 푸른 하늘처럼,  이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너희들의 “ 푸른 자유”를 마음껏 들이킨 날이었기를… 하고 말야.


달리기에서  꼴등만 하던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것이          못내 아쉬웠지.
너를 가로막는 어떤 고난과 불행이  온대도                           너는 나아갈 수 있단다. 네 안에는 이미  그럴 힘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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