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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혜윰


2년 전 책을 선물 받았다. 그이는 내게 책 제목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가 한 말이나 제목, 핑크빛 표지 디자인을 보고 다정함에 관한 에세이집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아니었다. 과학책이었다. 그것도 진화론에 관한 책.


책장에 꽂아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읽어야 할 책은 늘 대기 중이었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책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드디어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게 되었다.


원제는 Survival of the friendliest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패러디한 것이다. 가장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고, 이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122쪽)



자기가축화가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32쪽)


간은 다정함과 동시에 잔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잔인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상대 집단을 비인간화하며 드러난다.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참상을 불러왔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촌에서는 종교, 정치 등으로 인한 대립이 치열하다. 이런 집단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접촉이 필요한데 가장 강력한 접촉의 형태는 진심 어린 우정이라고 저자는 마무리한다.


사람이 자기가축화를 통해 진화했다는 내용도 놀라운데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해 주는 비인간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니! 충격의 연속이었다. 한강이 노벨상 수상 소감문에서 한 말,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의문에 답을 얻었다고 할까.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다정함과 잔인성. 이 잔인성을 어떻게 잘 제어해야 할까? 심리학자 스티븐 핑거는 사람의 폭력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감소해 왔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들에 위안을 얻었다.


인간의 사촌이라고 말하는 침팬지와 보노보. 침팬지는 95.5%, 보노보는 95.7% 인간과 유전자가 유사하다. 책에서는 인간이 가진 거의 모든 특성이 침팬지에게 있다고 한다. 즉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빛나는 지능과 악마 같은 장난기,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살해를 저지를 수 있는 잔학성 같은 것이. 하지만 유인원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어쩌면 인간은 계속해서 다정하게 협력하는 쪽으로 여전히 진화 중일지도 모르겠다. 침팬지보다는 보노보의 성향 쪽으로.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지만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혐오와 차별이 넘실대는 차가운 시대, 약육강식이라는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말 자체가 주는 위로와 위안이 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이 AI로 대체될 미래에는 과연 무엇이 인간 간의 협력을 더 끈끈히 하고 인간다움을 도드라지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답을 다음의 시로 대신한다.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어본 적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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