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삼십 분 정도 대차게 내리다 뚝 그쳤다. 우리나라도 열대성 기후로 바뀌어 가는지 올여름 스콜이 종종 다녀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외출했다가 발이 묶였다. 밖을 내다보며 한참을 서성였다. 그냥 맞고 갈지 그칠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하며. 건물 안에서 비를 피하며 비와 지그시 눈 맞췄다. 세차게 때리는 것이 길바닥인지 내 마음바닥인지 모르겠다. 더위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소나기도 있지만 오늘의 소나기는 무언가 아프게 다가왔다. 오전에 친구와 주고받은 톡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는 지난주, 일 년 반 전에 큰맘 먹고 예약한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여행지에 도착해 이삼일 감기로 고생했단다. 떠나기 전 빈틈없이 일 처리를 해두느라 몸에 무리가 간 것 같았다. 겨우 컨디션을 회복할 즈음, 예상 밖의 일이 생겼단다. 여행 주최자이자 인솔자인 지인의 말 한마디가 친구의 마음을 세차게 때린 것이다. 그가 건넨 한 마디는 함께 여행 간 사람들 앞에서 여러 차례 재생되었다고 했다. 그는 농담이라 말했지만, 친구는 언어폭력으로 느꼈다. 결국 친구는 붉은 감정을 표출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 본위 적이다. 내가 가벼이 던진 말이 상대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보다 자신의 손에 박힌 가시만 크게 보인다. 그래서 정작 상대가 애써 내미는 화해의 몸짓에도 유치하고 뾰족하게 반응해 버린다. 친구가 먼저 내민 화해의 언어는 그대로 튕겨 나왔다. 말의 소나기가 퍼붓고 사라진 마음자리에는 얼룩덜룩 자국만 남아 애애하다.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도 누구는 주관적으로 듣고 말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는 데도 누구는 상대의 말 한마디 유연하게 소화하기 어려워 마음이 부대낀다. 둘의 관계는 비가 내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긋난 관계는 한 쪽의 노력으로만 좋아질 수는 없다. 서로에게 생긴 얼룩덜룩한 자국을 닦아내려면 서로의 마음 온도가 느껴지는 뽀송뽀송한 말의 수건과 진심을 담은 시간의 햇살이 필요하다.
생각의 도로에서 서성이다 보니 어느덧 소나기가 멈추었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떠나고 어슴푸레 빛이 찾아들려 한다. 그녀의 마음에 드리운 먹구름도 따사로운 말의 햇볕이 밀어내 주면 좋겠다. 누군가 건네는 푸근한 말의 햇빛이 그녀가 여행지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오롯이 선명하게 비춰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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