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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26. 2024

생각 도난 사건


구상 중인 글이 있다. 이를 닦으면서 어떤 내용으로 쓸지 생각하다가 불현듯 서두를 어떻게 시작할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그렇게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연결하면 되겠구나!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기특했다. 마음의 손길로 그 녀석을 쓰담쓰담했다.  

   

출근길, 아까 떠오른 생각을 꺼내려 머릿속 서랍을 열었다.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생각을 어디에 두었는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분명 서랍에 넣어뒀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생각을 도둑맞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도대체 누구의 짓일까. 생각 도둑을 찾아야겠다.    

  

분명 아이디어를 준 녀석은 머릿속에 살고 있다. 아이디어를 빼앗아 간 녀석도 머릿속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숨었는지 당최 찾을 수가 없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인데, 흔적조차 없다. 늘 같은 수법을 반복하는 데도 말이다. 지능범임이 틀림없다.   

  

글이고 뭐고 잠복 수사에 들어가야겠다. 범인을 잡아서 서두를 돌려받지 않는 한 글은 몸통만 덩그러니 남겨진 볼썽사나운 꼴로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 내 기필코 범인을 잡고야 말리라.    

  

잠복 하루째 : 아무런 움직임 없음

잠복 이틀째 :      상동

      :

      :     


CCTV조차 없는 곳이라 범인 색출이 쉽지 않다.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몸통만 남은 글은 독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당분간 한글 파일에 담아 잠금을 걸어둬야겠다. 봉인을 해제하는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기다리며 오늘도 잠복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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