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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Apr 30. 2022

4월 30일의 꽃, 금사슬 나무

'슬픈 아름다움'이라는 꽃말

 사월의 마지막 꽃입니다. '금사슬 나무'라는 생소한 식물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고 유럽이 원산지인 나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꽃이랍니다. 등나무, 혹은 아카시 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잎의 색이 노란빛을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꽃을 판매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란빛이 나는 꽃을 좋아하십니다. 저 또한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사랑받는 컬러임과는 반대로 노란색 꽃은 이별, 슬픔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꽃 '금사슬 나무'의 꽃도 노란빛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의 꽃말은 '슬픈 아름다움'입니다.

 직관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인데 슬프다?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꽃에 얽힌 설화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옛날에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의 눈은 작고, 코는 납작했으며, 머리카락은 빳빳하고, 입은 얇고 길었다. 키는 작고 뚱뚱하며 난쟁이를 연상케 했다. 그런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하며 피해 다녔다. 그녀는 "신이시여, 저를  이렇게 태어나게 하셨나요? 제발 저를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신은 그녀에게 목소리를 내어​ "어떻게 해서든 예뻐지고 싶으냐."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집으로 향했는데, 집이 황금빛 사슬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놀라서 집으로 뛰어들어갔고, 황금빛 사슬에 몸이 조여 파랗게 질린 어머니를 보았다.

"​예쁜 여인으로 만들어달라 하지 않았느냐. 지금 거울 앞으로 가서 너의 모습을 보거라."​

 그녀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아주 어여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얻게  것임을 깨달았지만, 새로운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며 신에게 감사하며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마지막 순간, 그녀의 입에서 저주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 무덤에서 탄생한 나무의 잎을 가진 , 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탐한 , 가장 소중한 사람의 희생을 그것을 얻나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슬픈 아름다움을 가진 자가  것이다."


그 나무가 금사슬 나무였을까요? 그래서 '슬픈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을까요?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름다움을 얻어 신께 감사하며 살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감사할 순간만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깨닫지 않았을까요. 어머니의 목숨과 바꾼 외적인 아름다움의 만족감과 자기 효능감이 얼마 가지 않아 후회로 바뀌며 고통과 한탄 속에 살게 되리라는 것을요.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고 탐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결코 이 여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욕심과 탐하는 마음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마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의 희생을 통해 얻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모든 사람에게는 기본권과 존엄이 똑같이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남을 짓밟고 얻어낸 성공, 아름다움, 성취가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정당하다 보이지 않습니다.

 덜 예뻐도, 덜 잘해도 스스로가 온전히 이루어낸 것이 가치의 힘이 세고 강합니다. 단단하고 견고해 무너뜨릴 수 없죠. 하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얻어낸 아름다움 및 성취는 반쪽짜리, 혹은 그것보다 못해서 비록 당장은 반짝거릴지라도 금세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기초공사가 부실하기 때문이지요.

 예쁘지 않은 나를 자책할 것이 아니라, 얼굴이 예쁘지 않다고 평가하는 타인을, 사회를 탓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니라 외모만으로 나 자체를 판단해버리는 상대가 잘못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만든 사회가 잘못한 일입니다. 자꾸자꾸 마르고 싶은 저도 내내 저를 자책해오다가 알았습니다. 사실은 더 말라야만 하는 가치관을 형성케 한 것은 사회와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요.

 그러니 나 스스로에게 무리가 갈 정도로 누군가를 짓밟고 나에게 상처를 내면서 예뻐지지 마세요. 절세 미인, 미남이 아니어서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었다면 억지로 아름다워진 후에도 삶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은 내면의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치관을 변화시켜야만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금사슬 나무 꽃은 여리한 모양이 발랄한 색채를 가지고 있지요. 아름답습니다.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독성을 가지고 있지요. 씨를 섭취하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맹독성이 있습니다. 설화에서 내렸다는 그 저주일까요? 분명 아름답지만 가까이하기엔 위험한 그 '슬픈 아름다움'의 금사슬 나무는 조금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많이 외롭겠네요.


< 채도가 참 예쁘죠? 독이 있으니 함부로 만지지는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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