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들고양이들 - 마음 약해서 Warak remix"
게임 음악 하면 음악 게임, 즉 리듬 게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중학교 때는 단연 오투잼의 시대였다. 학교에 오면 핸드폰을 반납해야 함에도, 또 안 낸 게 걸려서 몇 번 압수까지 당했는데도 쉬는 시간마다 오투잼을 하는 맛만큼은 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오투잼이 게임 중에 몇 안되는 '내가 잘하는 게임'이라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물론 '내가 이걸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하긴 했다만... 그러다가 스리슬쩍 유료화 비스무리하게 되어서 손절하긴 했지만(잼민특: 게임에 돈 절대 안씀) 그때 당시 알아간 명곡들도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곡 중 하나가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를 리믹스한 이 곡이다.
얼마 전 오투잼의 수록곡을 찾아보다가 이 곡을 우연히 다시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이 노래만 유독 영어 댓글이 많았다. 이런 경우는 분명 외국에서 밈이 된 어느 영상에 이 노래가 쓰인 탓일 거라 여겨 찾아보니 그 근원지는 뜬금없게도 한 몬스터 헌터 공략 영상이었다. 해당 게임을 잘 몰라서 이 영상의 인기 요인이 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으나, 거의 5년 이상의 시간, 그리고 국가와 게임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이 명곡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창구가 되었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시공간 초월 로맨스인 '너의 이름은.'보다도 나에게는 극적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오투잼 수록곡은 유튜브 영상 제작에 비상업적 용도로 자유롭게 이용해도 된다는 꿀같은 정보도 함께 알아버렸다.
안 그래도 젊은 층에게 호불호를 타는 트로트라는 장르가 리듬게임의 화끈함에 걸맞도록 리믹스되어 별로 내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조금 과하더라도 신나고 중독적인 일렉트로닉 게임 OST를 좋아하던 내 취향으로서는 전혀 거슬릴 게 없었으며, 오히려 노래의 짜임새 면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준 첫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따지자면 테임 임팔라의 "Breathe Deeper"와 비슷한, 악기들이 쉴새없이 들이닥치면서도 서로 조화를 유지하는 알찬 짜임새. 맛으로 따지자면 대창처럼 '이거 너무 과한거 아냐?'할 정도로 즐거움이 몰아치지만 그것 또한 결국 즐거움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그런 과함이다.
이 노래의 주역은 클라비넷이다. 가끔은 슬랩 베이스처럼 튀어다니며 존재감을 뽐내고 때로는 저음부를 듬직하게 메꿔준다. 클라비넷은 걸스데이의 썸씽 도입부에서도 비교적 고음으로 들을 수 있는 전자 건반악기인데, 악기들이 감히 발을 못 들이는 섹시 컨셉에 당당히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전자 악기 중에서 가장 섹시한 악기가 아닐까 싶다. 거기다가 배경의 신스 역시 감질나는 귀청소 ASMR 따윈 저리 가라는 듯 쉴새없이 내이를 긁으며 비교 불가능한 지속성의 '팅글(각주: ASMR에서 느껴지는 소름 내지는 쾌감 반응)'을 유발한다.
이렇듯 여러모로 섹시한 노래가, 트로트라는 묘한 정서의 장르를 만나 섹시를 스스로 절제(節制)하고 절제(切除)한다. 이때부터 섹시라는 말에는 유혹적인 성질만 남고 불온함이나 퇴폐 같은 성질은 모두 떨쳐진다. 마치 '이모'라는 캐릭터성을 지닌 버튜버의 팬들이 과몰입이나 유사연애 감정과는 거리가 먼 것과도 닮았달까. 아무리 시대가 벌어지고 오디션 프로로 인해 아무리 이미지가 소비됐다고 해도, 트로트의 그러한 원숙한 매력은 우리나라 온 국민의 정서에 이미 구수하게 배겨있다. 이것이 베이퍼웨이브나 시티팝 등의 '가짜 향수'에 녹아든 바 있는 나의 피에 흐르는 민족적 흥을 잠시나마 고취시켰던 게 아닐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