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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Jun 22. 2023

[교단일기] 교실 결혼식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랏 따라라랏~♬(결혼행진곡)


점심을 먹고 올라온 복도에 결혼행진곡 허밍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좁은 복도 양옆으로 우리반 아이들이 열을 맞추고 서있고 복도 가운데로 우리반 장난꾸러기 2명이서 사이좋게 팔짱까지 껴있다. 음악 시간에 배운 결혼행진곡을 쓸데없이 잘 기억해두었다고 이렇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내 제자가 다 커서 결혼까지 하다니. 선생님이 주례라도 봐야겠다."


 내 웃음소리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나를 보고 돌아선 장난꾸러기 손에 종이로 만든 부케까지 있는 것을 보고 웃음보가 터졌다. 어디서 본 것은 있었는지 이 정도면 제법 현실 고증이 잘 되어 있는 놀이다.


"선생님도 결혼식 초대장 있어야 되니까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만들어서 줄게요. 절대 먼저 들어오면 안 돼요!"


뜬금없이 청첩장이 없다는 이유로 내 교실인데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지만 쉬는 시간이니 아이들 장단에 더 놀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반에서 손재주 좋은 여자아이 몇 명이 후다닥 색지에 무엇인가를 만들고 잘라서 나에게 주었다. 아이들이 준 청첩장을 덕분에  무사히 식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분명 복도에서 결혼행진곡이 울렸던 것 같은데 아이들의 결혼식에서는 행진이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교실 방방곡곡을 누비는 신랑신부(?) 녀석들을 보며 나도 아이들과 같이 낄낄 웃었다. 한참을 신나게 행진하고 아이들은 부케 던지기 세리머니를 하였다. 신부인 아이가 뒤돌아 서고 그 뒤로 아이들이 모였다. 하나 둘 셋! 신호로 부케가 허공을 갈랐고 아이들이 뛰어올라 종이 부케를 낚아챘다. 나는 사진 기사 역할이기 때문에 열심히 그 열띤 현장을 찍었다.


"쌤~이제 우리 가족사진 찍어야 돼요."


부케를 5번이나 던지는 기이한 결혼 행사이지만 가족사진도 빠질 수 없는 모양이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교실에서 결혼식 놀이를 안 하던 아이들까지도 달려온다.


"찍겠습니다. 신랑 신부님 웃으세요~"


찰칵!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 담긴 즐거운 얼굴이 추억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신랑 신부님 일가 친족들 모두 서로 사랑하고 오늘처럼 웃는 얼굴로 지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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