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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Jul 10. 2023

[교단일기] 지렁이 구조대

"쌤!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우리 그냥 빨리 들어가면 안 돼요?"​

급식실로 점심 먹으러 가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불만과 짜증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덥고 습해서 힘든 건 마찬가지이지만 모두가 줄을 서야 출발하는 것이 우리반 규칙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쌤! 여기 지렁이 죽어가요!"​


맨 뒷줄에 있는 도희가 바닥에 지렁이를 발견하고 외쳤다. 동식물이라면 눈이 커지는 우리반 아이들은 일제히 도희가 가리키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지렁이 타죽어 가나 봐. 얼른 물!!"​


지렁이의 상태를 살피던 도윤이의 말에 아이들이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물을 적신 휴지를 가져와 지렁이에게 물방울 떨어트려줬다. 지렁이는 물에 반응해서 이리저리 살려달라고 꿈틀거렸다.


"아직 안 죽었나 봐. 다행이다."

" 화단으로 다시 넣어주자."

"물도 더 가져올게. 기다려!"​


급식실로 얼른 가자고 찡찡대던 애기들은 사라지고 늠름한 지렁이 구조대들만 남았다. 지렁이를 화단 그늘진 곳으로 옮기고 물도 촉촉이 주었다. 남자아이들은 지렁이가 흙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개미들을 막아준다고 지렁이 주변까지 수색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가장 나중에 온 친구가 오기 전까지 지렁이를 돌봐주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더 송골송골 맺혔지만 뿌듯함은 얼굴에 더 맺힌 채 아이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의 발걸음도, 내 발걸음도 더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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