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 어느 날 (어느 날인지는 모르겠고 사실 관심도 크게 없다)을 전후하여 변화의 에너지가 크다고 한다. 요즘 이런 에너지 예보 같은 것에 관심이 사라져서 그런 영상이라든지 팟캐스트를 전혀 보거나 듣지 않는데 어제 우연히 호기심에 플레이를 누르게 된 어느 팟캐스트에 나온 여성이 이런 말을 했다. 그 다가오는 에너지 변화를 체감하는 에너지 민감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중 일부에게는 이것이 몸으로도 온다고 한다. 한동안 이런 내용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사실 좀 식상하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나는 11월을 앞두고 코로나로 의심되는 심한 독감에 걸렸다. 그냥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에너지 예보자들이 말하듯 이전의 낡은 에너지를 정화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11월을 맞이하는 계기인가?
뭐 크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이 정도로만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런데 뭔가 변화의 에너지가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신호를 몇 개 더 받았다.
일단 서로 너무 다른 분야, 그리고 각자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친한 친구들이 모두 각자 직장에서 해고통지받았다는 사실을 지난 며칠 사이에 동시에 알게 되었다. 셋다 매우 안정적인 직장과 커리어가 있던 여성들이라 그 타이밍의 우연에 좀 놀랐다. 아니면 차가운 논리로 생각해서 여러 전쟁이 진행 중인 지금 국제 경제가 맞고 있는 침체기로부터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아 현실화되는 것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나는 해고라든가 휴직 결심이라던가 이런 것을 사실 축하해 준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더 좋은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굳게 믿기 때문이다. 특히 세 친구들 모두 오랜 세월 동안 직장을 쭉 다니며 각자의 분야에서 잘 나가고는 있지만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치고 더 이상 본인을 채워주지 않은 직장 안에서 불만족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원하는 것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전환의 기회라고 하며 응원하며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나에게도 새로운 무슨 변화의 관문이 열리는 느낌을 오늘 아침 강하게 받았다.
일단 어제 우연하게 예전에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직장 후배와 남편이 우연히 다른 도시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면서 나와 다시 연결이 되어 무슨 변화의 조짐을 감지하기 시작하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20년도 훨씬 더 전에, 대학원 시절 때 알고 지내던 선배 언니와 연결이 되었다. 그것도 20년 전부터 이어오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의 연정선상에서...
선배 언니와는 대학원 때 서로 아는 사이이긴 했지만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서 일을 일 년 정도 하다가 이십 대 후반 그 당시 간절하게 원하던 꿈의 직장을 얻어 스위스의 국제도시인 제네바에 왔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없고 해서 주말만 되면 혼자 기차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어느 주말, 당일치기로 쮜리히로 놀러 갔는데 가봐야 할 곳 리스트에는 샤갈의 스테인글라스가 유명한 프라우뮌스터 성당이 있었다. 성당 내부 샤갈의 스테인 글라스 앞에서 감탄을 하며 디지털카메라의 화면에 집중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순간 누가 순간 내 팔을 툭하니 잡으며 한국말로 내 이름을 불렀다 "xx아!". 모르는 도시에서 누가 내 팔을 갑자기 잡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쮜리히 한복판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돌려 보니 대학원 시절의 선배언니였다. "아니 언니! 여기서 뭐 하세요?!"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니?!" 선배언니는 박사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면서 만난 스위스 사람과 결혼하여 남편의 직장이 있는 쮜리히로 이사하여 살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나의 외로웠을 솔로 당일치기 여행이 뜻하지 않게 로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인연이 스위스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이어지면서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한창 커리어 욕심에 부풀고 쉽지 않은 직장 생활로 마음의 여유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버려가고 있던 나는 지인들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데에 소홀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고 그리고 그때로부터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대 때 알던 사람과 다시 연결이 되어 40후반에 다시 마주할 때의 그 묘한 느낌.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그 느낌. 그 언니와 20년 전에 주고받던 이메일들을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핫메일 계정으로 힘겹게 들어가 찾아봤다. 그때의 메시지들. 그리고 오늘 선배언니로부터 받은 이메일. 선배언니의 에너지는 여전하다. 샤프하면서도 겸손하고 섬세하고 사려 깊다. 20년 전의 나의 에너지도 지금 읽어보니 여전하다. 지금 읽어봐도 그 당시의 나는 민감하고, 예의 바르고, 사려 깊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참 웃기지만 ^^;)
이렇게 우리의 인연이 다시 일련의 우연에 의해 다시 닿게 된 이유는 진정, 내가 생각하고 의도한 그 이유일까? 그렇게 일이 전개가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이유라면 다시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 정도로 해두고, 글을 쓰며 갑자기 생각난,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쓴 이 문구로 글을 일단 마친다.
우연, 그리고 우연만이 우리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것, 기대하는 모든 것,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것들은 침묵할 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