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주연과 악역의 파워 밸런스가 너무 안맞는다. 범천이라는 악한 무당과 그런 범천에게 조부가 살해 당한 원한 관계로 엮인 천박사가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인데, 범천이 자신의 영력을 발휘하기 위해 제자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희생해야 되는 반면, 천박사는 영험한 무당이었다는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칠성검을 한번씩 휘두르기만 하면 범천의 공격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다. 난관이 없는 건 둘째치고 교환비가 안맞으니 대등한 대결 자체가 성사가 안된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손가락은 한정된 자원이지만, 칼은 부러지지 않는 한 계속 쓸 수 있으니, 싸우면 싸울 수록 손해를 보는 건 범천 뿐이다.
범천은 자신의 주술로 홀린 사람들을 여럿 보내 천박사 일행을 공격하는데, 수적으로 우세하고 개별 개체들의 완력 역시도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천박사 일행에게 전혀 상대가 되질 않는다. 일단 돌담벽을 머리로 뚫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만큼, 주인공인 천박사의 피지컬이 비상식적으로 강하다. 한번의 도약으로 수백 미터를 넘나드는 괴인들과 연거푸 싸우면서도 전혀 싸움에서 밀리거나 육체적으로 소모되는 느낌이 없다. 그런데다가 범천이 일부러 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범천에게 조종 당하는 이 괴인들은 천박사 일행에게 치명상을 입할 시도조차 안한다. 확실하게 죽여서 뒤끝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살려둬서 후환을 남긴다. 마무리가 아쉬운 악당이라는 클리셰 자체는 선악의 대결을 다룬 여타의 수많은 작품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 그럴 만한 불가피한 사유나 악역의 성격적 결함에 대한 묘사가 덧붙여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는 도무지 그런 이유가 없다. 영화에서 나온 바로 미루어 보건대, 범천은 상대를 봐줘가며 농락하는 취미가 있는 오만한 작자도 아니고, 촌각을 다투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지도 않다. 허접한 설정만큼이나 허접한 연출의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위협이 진짜 위협인 것처럼 보이지를 않으니까 영화의 내용 전체가 그냥 장난같이 느껴진다. 칠성검 한 번씩 갖다대면 쓰러지는 바보들 상대하는 게 뭐 그리 어렵고 심각한 일이겠는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캐릭터들의 매력과 고유한 역할론이 전무한 수준이다. 천박사의 동료들은 그냥 옆에서 만담 한 마디씩 거드는 들러리일 뿐이고 범천과의 대결이라는 중심 서사에서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맡지 않는다. 얘네가 없었어도 어차피 천박사는 범천을 이겼을거다. 박정민이 맡은 선녀무당은 (범천을 봉인하는 데에 필요한) 반쪽 설경이 있는 위치만 알려주고 그대로 영화에서 퇴장하고, 유경이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눈을 탐내는 범천으로 말미암아, 천박사와 범천의 대결을 성사 시키는 계기로 작용할뿐, 이후로는 '맥거핀'에 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이 유경이라는 인물은 귀신을 보지 못하는 '사짜' 퇴마사인 천박사의 영적인 눈 역할을 대행하는 캐릭터인데, 천박사는 그깟 눈 없이도 잘만 싸운다. 애초에 작중의 주적인 범천과 그의 하수인들은 엄연히 물리적 실체를 가진 인간이고 귀신이 아니기에 그렇다. 더구나 귀신을 보지 못할 뿐이지, 타고난 영력 자체가 대단해서 신령의 경지에 도전할 정도로 영험한 무당이라는 범천의 사술이 천박사에게는 씨알도 안먹힐 정도다. 이런 '역할 분담'이 성립하려면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명백한 기능적 비교 우위를 점하는 측면이 있어야 할텐데, 영화에서 유경은 '볼 필요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천박사와 범천, 두 주연은 어떠한가. 일단 범천은 그냥 자기의 상승 욕구를 위해 자기 제자들조차 거침없이 희생하는 타고난 '쓰레기'일 뿐이다. 단순한 악당이라는 것 이외에 더 형용할 만한 내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며, 악역으로서 그리 유능하지도 않다.사람 손가락을 잘라가면서 쓰는 능력 치고 그 권능이 실질적으로 대단치 않고 단 한 순간도 천박사 일행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다가 무력하게 패배한다. 천박사는 귀신을 볼 수 없고, 믿지도 않는 무당이라는 나름대로 신선한 착상에서 출발하나, 결국 이후 행적을 보면 무속 세계에 자기 배경을 두고 무속 행위를 하는 보통의 무당, 퇴마사나 다름없는 캐릭터가 된다. 단지 귀신, 영적 존재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뿐인데, 그러한 설정이 이 영화, 인물만의 특이점을 만들지는 못한다. 상술했듯, 귀신을 보지 못한다는 제약이 실질적으로 천박사에게 아무런 난점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 초반 범천을 봉인하다 죽은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섞인 양가적 감정, 무당 집안의 당주임에도 영적인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부분이 천박사의 컴플렉스로 부각되는데, 이러한 내적인 갈등도 범천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쉽게 해소된다. 최후의 대결을 앞두고 천박사는 반쪽 설경을 찾으러 가다가 죽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찌르는 환영을 보게 되는데, 그게 범천의 사술임을 간파하고는 문득 그 한 장면만에 '대오 각성'을 이루어낸다. 즉, 천박사를 진정한 퇴마사, 무당으로 일깨운 건 다만 죽은 할아버지와 형에 대한 동정심, 내지는 그들을 죽인 범천에 대한 복수심일 따름인데, 애초에 천박사가 범천을 왜 쫓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단지 처음의 착상으로 되돌아온 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의 인물의 태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대답해야 하는데, 영화는 그저 과거에 일어난 비극을 그 순간에 감각적으로 재현하면서 일종의 '눈속임'을 시도할 뿐이다.
종합적으로, 오락 영화임을 감안해도 터무니없이 낮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이고 그 때문에 최소한의 오락적 재미도 챙기지 못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자기 이름 걸고 100억 넘는 돈을 투자받아 가면서 만드는 작품을 어떻게 이렇게 대충 만들 수 있을까? "돈을 시궁창에 내다버릴 셈이냐."는 이나후네 케이지의 호령이 절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