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onthewall Apr 16. 2024

그 많던 '실력파'는 누가 다 없앴을까?

르세라핌, 코첼라 라이브 논란에 부쳐

최근 하이브 소속 유명 걸그룹 르세라핌의 코첼라 라이브가 그야말로 처참한 실패로 드러나면서, 아이돌 가수들의 '실력'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의 요지는 간단하다. 아무리 퍼포먼스와 비주얼로 승부보는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이, 기성 가수들과는 구분된다 해도, 일단은 그들이 무대에 올라 자기 노래를 하는 가수인 이상, 최소한도의 역량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사가 요리를 잘해야 하고, 운동 선수가 각자가 몸 담고 있는 종목에 있어서의 기량을 충실히 갖춰야 하듯이, 가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인데, 일견 '정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목적론적 담론의 문제는 정작 그렇게 내세워지는 당위와는 별개로, 실제 시장 상황이 전혀 그러한 당위에 합치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지되다시피, 오늘날 음악 시장의 주류는 '예쁘고 잘생긴 댄서들'이라고 까지 폄하되는 아이돌 가수들이고, 실력 있다고 칭송받는 보컬리스트들은 소수자적 지위에 머물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체 누가 실력있는 자들을 변방으로 내쫓고, 가수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문화적 중심에 위치해 놓고 있단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닌 '실력 있는 가수'를 찾는 청중들 자신 아닌가?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일반인보다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말은 참 그럴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노래 잘하는 가수 위해서 앨범 사고 십수만원 어치 콘서트 티켓 끊어주면서 열렬히 소비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결국 대중 예술은 많이 팔아서 이윤을 내는 데에 목적이 있는데, 음악적 소양보다는 외모와 인간적 매력으로 주목받는 아이돌 가수들이 앨범을 내는 족족 초동 판매량으로만 백만장 단위로 팔아치우면서 대대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반면, 청중들에게 노래 잘한다고 칭송받는 가수들의 다수는 정작 자기 노래가 팔리지 않는 바람에 유튜브 등지에서 남의 노래 불러 후원금으로 먹고 사는 커버 송 가수로 근근히 살아간다. 이는 소수만이 성공하는 연예계의 현실상, 어쩔 수 없이 낙오된 다수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최정상급 보컬리스트 4인방으로 언급되는 김나박이의 연 수입을 다 합쳐봐야, 4세대 걸그룹 4인방 뉴아에르 가운데 한 팀의 수입만큼도 못번다. 김나박이가 고고하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이렇다. 양자 사이의 국제적인 위상을 놓고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크다. K-POP이 서브 컬쳐계에서의 메인 스트림으로 나름 폭넓게 보급이 되면서, 이들 네 그룹도 세계 각지에 일정 규모의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김나박이는 그렇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비교적 소수만이 이들에게 돈을 쓰고, 팬임을 자처한다.


그러면 과연 노래 잘하는 게 가수의 제1소양이 맞나. 가수는 다른 무엇보다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게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소비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하는 말은 얼마든지 아름답고 고고한 이상에 근거하여 꾸며 수 있지만, 자기 피 같은 돈을 써서 하는 소비는 꾸며낼 수 없다. 성적 욕망의 노골적인 해소, 표현에 대한 사회적 터부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든 성 산업이 지하 경제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소비야말로 대중의 진정한 욕망을 반영한다. 즉, 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대중의 실천적인 욕망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 사람들은 실상 그들이 의식적으로 표명하는 만큼, 실력파 가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럿이 모여 파트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노래 한 소절 제대로 못부르는 가수들이 시장의 주류가 된 것이다.


스포츠맨들은 대체로 자기 실력에 비례해서 페이를 받는다. 스포츠에서는 (실력 외적인 상품성의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무엇보다 경기에서 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는 재미없는 안전 지향적 경기 운영으로 다수 라이트팬들의 미움을 받는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한 경기에 수 억 달러를 벌어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프로 복싱이라는 틀 안에서 그를 이길만한 역량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안드레 워드, 커리어 초기의 조지 포먼, 류현진, 박경완, '사인의 희소성'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이승엽, 루이스 수아레즈, 타이거 우즈 등 fan favorite이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멂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경기 내적인 역량을 가진 덕에 시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선수들을 스포츠 팬이라면 얼마든지 떠올려 볼 수 있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그렇지 않다. 연예인의 인기, 벌이는 그의 직업적 역량과 절대적인 비례 관계를 갖지 않는다. 가장 잘나가는 코미디언과 가장 웃기고 재치 넘치는 코미디언이 일치하지 않고,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가장 인기 많은 배우가 되지도 않는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고 코미디언은 코미디를 잘해야 한다는 게 직관적으로 생각해 봤을때 상식적인 결론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텔로스telos적, 목적론적 사고와 실재 사이의 괴리가 연예계에서는 흔하게 나타난다. 걸어다니는 중소 기업이나 다름없는 요즘의 개인 인터넷 방송인들의 다수는 과거 방송사에서 '공채'로 연예인을 뽑던 시절, 방송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아마추어'로 머물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지금 기성 연예인들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연예인은 자기의 매력을 파는 직업이지, 기예를 파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직접 저잣거리의 관객들에게 자기가 가진 재주를 시연하면서 공연료를 수금해야만 했던 광대들과는 달리, 현대 소비 사회에서 연예인은 단순한 공연자 이상의 심볼, 인간의 모습을 한 광고판이다. (연예인은 시청자에게 직접 시청료를 수금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수입원은 근본적으로 프로그램의 제작을 지원하는 광고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이때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역할은 자기의 기예 자체를 판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두르고 있거나 중간 광고에서 등장하는 상품의 판촉을 위해 자신에게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자기에 대한 대중적 호감을 상품에 덧씌우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떠올릴 때, 해당 브랜드의 광고에 나온 연예인을 매개로 삼는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오랫동안 특정 브랜드, 상품의 모델로 기용된 연예인은 해당 브랜드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예인의 기예는 그의 매력을 이루는 한 부분일 뿐으로, 결정적인 팩터는 아니다. 차은우가 연기를 잘해서, 신세경 유튜브 컨텐츠가 재밌고 참신해서 차은우가 출연한 드라마나 신세경의 개인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냥 그들의 '용안'을 보는 것만으로 본능적인 즐거움이 느껴지니까 볼 뿐이다. 마찬가지로 유재석이 한국에서 가장 입담과 재치가 좋은 사람이라 뭇 사람들에게 '유느님'으로 추앙받는 게 아닌 것처럼, BTS도 세상 누구보다 뛰어난 음악적, 퍼포먼스적 소양을 가졌기에 그 위치에 서게 된 건 아다. 유재석의 성공은 그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 비-적대적이고 포용적인 발화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고, BTS의 성공 역시 그들의 잘 꾸며진 외모, 무대 위의 퍼포먼스와 사전, 사후적인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프로듀싱, 마케팅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춤, 노래 실력으로만 따지면, 아이돌 가수들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들이 그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SM식 보컬 스타일을 만든 유영진이 실제로 SM 소속 가수 대다수보다 노래를 잘한다.) 뭔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그 원리를 온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럼에도 스승들이 무대에 그들의 제자들 대신 오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나 무대에 오르는 건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그러나 여전히) 미숙한 제자들이다. 편으로는, <히든싱어>, <보이스>, <슈퍼스타K>, <미스, 미스터 트롯>같은 일반인 대상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상 순수 기예적인 측면에서 프로와 비-프로의 차이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그리 극명하지도 않다. 렇기에 이러한 경연 프로들이 연예인 지망생들의 등용문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무대 설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을 가르는 건 순전한 '실력'만은 아닌 것이다.


논리학의 아버지이자,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의 가장 중요한 비조로 언급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수사학의 3요소(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에토스ethos로 꼽았다. 사람의 성품, 이미지, 아우라 같은 것이 언어로 표현되는 논증의 구조logos나 호소적인 감정pathos보다도 타인을 설득함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인데, 간단히 말하면 '무엇을', '어떻게'보다는 그것을 '누가'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논증의 정합성보다 누가 논증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니, 일견 우리의 상식과 당위에 배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타고난 추남이었으며, 산파술로 당대 소피스트들을 도장깨기 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가 결국 다른 정치가들의 모함을 받아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만 했던 것처럼, 세간의 미움을 받는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해도 그 말이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반면, 손석희처럼 훤한 인상에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은 딱히 대단한 말을 안해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수사학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세상 일이 대부분 다 그렇다. 예쁘고 잘생기게 태어나면 고시 3관왕이나 다름없다는 오랜 격언이 말해주듯이, 예쁘고 잘생기게 태어나면 그만큼 남들의 호의를 얻기가 쉬워지고 인생의 난이도가 남들보다 몇 단계는 더 내려간다. 노래 못하는 가수들, 연기 못하는 배우들의 성공은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불공정, 부조리와는 거리가 있다. 매력 있는 사람들, 격 높은 에토스를 가진 사람들이 남들보다 수월한 성공을 거두는 건 그런 사람들에 대해 본능적인 선망을 가지기 마련인 다수가 사는 세상의 당연한 이치일 따름이다.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해서, 또는 타고난 미모, 매력을 함양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쉬운 성공을 쟁취한다 해서, 원망할만한 대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러한 보상 체계상의 부조리는 다름 아닌, 타고나기를 잘난 사람들, '자연적 귀족'을 선망하는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이번에 처참한 라이브 실력으로 '망신'을 당하긴 했어도, 이번 참사로 인해 르세라핌이 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노래를 잘해서, 음악가로서의 역량이 뛰어나서 스타가 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느낀 것을 믿겠다. 그래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르세라핌의 최연장자 멤버인 미야와키 사쿠라의 말은 그걸 누구보다 그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음을 감하게 한다.


역시릅신
매거진의 이전글 캐치-22 : 자신을 정의내리는 일의 역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