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해
나는 20대 후반, 젊은 시절의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누구는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길어진 수명이 과연 인류에게 선물로 다가올까?
이렇게 길어진 수명에도 20대, 30대 청년들은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았는데 면접장에서 자신의 인생의 2배를 지난 늙은이들에게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나이가 왜 이렇게 많은지 타박을 당하고
사실상 30대가 넘어가면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근데 100세, 아니 150세 시대라며?
이런 이론으로 따지고 들자면 내 인생의 5배를 더 살아갈 것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잠시의 쉼도 면접장에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20살에는 취업을, 30살에는 결혼을, 40살에는 아이들의 성장을, 50살에는 아이들의 독립과 동시에 은퇴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원리원칙을 들이대고는 한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인재(人材)가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두들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숨이 막히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탈조선을 하지 않으면 한국에 맞춰 살아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30대를 앞두고 있는 내 친구들은 점점 고민이 많아진다.
한 친구는 내게 "이대로 살다 간 기초 수급자가 될 것 같아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인상 깊었다.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 무료 급식소에 줄 서 있는 노인들이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정작 나의 미래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 적으면 70년, 많으면 100년 남은 우리의 끔찍한 기대수명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과도한 의료기술 발달이 준 불행이 아닐까?
적당히 벌고 먹고살다가 무병단수하는 것이 꿈인 나의 욕망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으며 삶이라는 것은 강제로 이루어지지만 타인에게 관심이 줄어드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죽고자 하면 119가 달려오고, 막고자 하는 의인들이 넘쳐나기에 죽음은 쉬운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미래의 내가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젊은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 늙은 내가 젊은 나에게 이런 무시무시하고 막중한 책임감을 미래에서부터 던져주었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대학원을 가고.. 다른 언어를 공부하고.. 새벽 지하철은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러한 숨 막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나는 어쩌면 미래의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젊은 내가 곪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