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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pr 19. 2024

키보드를 사랑하는 남자

껴안고 자고 싶다


키보드 덕후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키보드를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키보드를 교체하고, 요일마다 바꾸기도 하고, 글 쓰기 싫은 날에 사용하는 키보드도 따로 있습니다. 과장하면, 키보드 덕분에 글을 쓴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여러 대의 키보드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구입 당시의 박스에 넣어 놓고 다시 열어 보면 새 것처럼 깨끗하다는 점입니다. 키보드 닦는 게 습관입니다. 먼지 한 톨 묻어 있는 꼴을 못 봅니다. 일종의 강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키보드를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도 제 키보드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빠가 키보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가족조차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뭘 그리 집착하느냐고 말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글쓰기에 진심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키보드의 상태를 보면, 그가 글쓰기에 얼마나 진심인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일과 관계 있는 도구도 사랑하는 법입니다. 


오래 전, 막노동 현장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래를 싣고 다니는 차량 운전자가 작업 끝날 때마다 호스로 물을 뿌리며 차를 씻는 장면을 본 것이지요. 어차피 내일 또 모래를 실을 테고, 이미 낡을 대로 낡은 트럭인데 뭘 그리 매번 세차를 하는가 싶었습니다. 


"우리 식구 밥줄인데 정성껏 관리해야지!"

그 사람은 일에 진심이었습니다. 남들은 고작 막노동 현장 트럭 운전수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 그는 틀림없는 전문가였고 장인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물건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 많은 듯합니다. 카페에 가서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볼 때가 종종 있는데요. 어떻게 자기 물건을 저렇게 험하게 쓰는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가방도 마구 취급하고, 스마트폰 액정도 깨져 있고, 신발도 구겨 신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부서지고 망가지면 새로 사면 된다 생각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무엇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감옥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키보드는 구경도 못했지요. 볼펜을 쥐고 꾹꾹 눌러 썼습니다. 문장 하나 틀리면 글 한 편을 다시 써야 했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저한테는 글을 쓰지 못할 핑계나 변명 따위 통하지 않습니다. 키보드 한 대 한 대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매일 안고 자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 블로그를 매일 찾아주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도 쓰기 싫은 날 있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몸이 피곤하고 감정적으로 편치 않은 날들. 하루 이틀쯤 글 쓰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사무실에 정돈 되어 있는 키보드를 살핍니다. 곱게 닦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 새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키보드는 제게 동기 부여의 요인이자 자극제입니다.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는 물건이죠. 글 쓰는 행위를 사랑하다 보니 키보드에도 애착을 갖게 된 겁니다. 진심을 다해 도전을 시작하려는 분 있다면, 관련 도구 한 가지를 정해서 정성 쏟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키보드, 노트북, 책, 독서대, 노트, 펜, 스마트폰 메모앱 등 글쓰기 관련 각종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제가 아끼는 물건이자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저는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신나는 기분으로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이죠. 


휙휙 지나가는 세상이라 무언가에 정성 쏟는 장면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생에서 지금의 멋진 삶으로 도약하는 모든 과정에서, 정성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깨끗한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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