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두려움 때문에 쓰기 힘들다는 사람 많다. 무엇이 두려운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거나 흉을 볼까 봐 두렵다. 그 외에도 끝까지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잘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출판사와 계약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 같은 두려움 등에 시달린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독자의 평가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피해갈 수 있을까? 방법 없다. 작가는 애초에 독자의 평가를 먹고 사는 존재이다. 혼자 일기 쓰고 서랍 속에 묻어 둘 게 아니라면, 세상과 타인의 평가는 피해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누구보다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드러내며 책을 출간했던 내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첫째, 평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거장들은 남의 글 함부로 비방하지 않는다. 딱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남의 글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트집 잡는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나보다 글 못 쓰는 사람들이 말이 더 많다. 자신감 갖고 써도 된다.
둘째, 누군가의 평가가 정답일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내 글을 형편없다고 꼬집는 사람 있다 치더라도, 그의 평가가 절대적이고 올바르다는 기준은 전혀 없다. 그냥 그 사람 마음인 거다. 노벨 문학상 받은 한 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양극단의 평가가 난무하는 판인데, 하물며 초보 작가인 우리 글이야 더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오지 않겠는가.
셋째, 우리는 백 점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연히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이유가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당위라면, 세상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야 마당하다. 누구나 처음은 빈약하다. 점점 좋아지면 된다. 마음 쓸 일 하나도 없다.
넷째, 글은 곧 삶이란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글은 앞으로 펼쳐질 삶이 아니라 지나간 삶이다.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 재해석하는 것뿐이다. 글은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삶은 평가할 수 없다. 타인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 글쎄다. 좀 더 당당하게 쓰면 좋겠다.
다섯째, 모든 평가와 비난은 내 실력 향상으로 뒤덮을 수 있다. 10년 전에 내 글을 비웃었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도 10년 전과 비슷한 인생 살고 있다. 나는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성공했다. 이제 그들은 내 글을 놓고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글도 삶도 좋아지면 그뿐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남들이 뭐라 할까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글 쓰는 사람 없다는 사실이다. 정작 쓰지도 않은 채 그저 두려워하기만 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느끼는 그 두려움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정말로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두렵다는 이유 뒤에 숨어서 글 쓰기가 싫은 것인가. 차라리 정말로 두려운 것이 낫겠다. 아니면 쓰기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든가.
글 한 번 써 보시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글이 나올지 누가 아는가. 혹 생각보다 못한 글이 나온다 하더라도 염려할 필요 없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잘난 놈 못난 놈 있게 마련이니까. 당장의 실력이 부족할수록 위로 올라갈 일만 남는 셈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글이, 작가가 훨씬 멋있다.
두려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감정이다.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뜻이다. 아무리 그래도 허상 때문에 하고 싶은 일 못한다는 건 좀 바보 같은 태도 아닌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리적 횟수를 늘이는 거다. 번지점프 뛰어내리려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하지만, 오늘도 뛰고 내일도 뛰고 한 달쯤 매일 뛰고 나면, 처음보다는 한결 뛰어내리기가 수월할 터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면 글쓰기 근육이 생겨서 갈수록 편안하게 쓸 수 있게 된다.
사람들 평가와 비난에 너무 떨지 마라. 평가와 비난도 독자가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다. 평가와 비난 많이 받는다는 건 그 만큼 많은 사람이 읽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관심보다는 평가와 비난이 차라리 낫다.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을 초보 작가라고 부른다. 글을 잘 못 쓰지만 매일 꾸역꾸역 쓰는 사람을 초보 작가라고 부른다. '초보'라는 말은 창피한 게 아니라 자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