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어느 날을 돌아보며
"이거 이은대씨가 직접 쓴 거 맞지요?"
서울 경부터미널 옆 1층 카페에서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과 마주 앉았다. 뭐 드시겠냐는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겠다고 답했다. 사실 난 아메리카노를 즐기지 않는다.
출판사 연락을 받은 것은 투고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계약할 뜻이 있으니 먼저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받고 전화로 소통하면서 날짜와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세상에! 내가 책을 내는 거 맞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동안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전과자 파산자에다 현직 막노동꾼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어떤 곳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대구에서 서울이 이렇게 멀었나 하는 초조함이었다.
출판사 대표는 뿔테 안경을 쓴 키 작은 남자였고, 함게 나온 편집장은 날카롭고 깐깐하게 생긴 여자였다. "이 원고 이은대씨가 직접 쓴 거 맞지요?"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약 한 시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대표와 편집장 표정에서 의심의 기운이 싹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업 실패 과정, 감옥에 가게 된 사연, 출소 이후 막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가족까지. 구체적인 에피소드에다 전문 용어들까지 막힘 없이 술술 쏟아져 나오고, 어떤 질문에도 즉답을 한 덕분이리라.
그렇게 나는 원고를 집필한 장본인임을 검증(?) 받은 후, 출판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편집장은 계약서 한 부를 챙기더니 투명한 비닐 커버에 다른 한 부를 끼워 나에게 건넸다. 2015년 11월, 평생 처음 출판계약서를 품에 안았다.
내가 정말로 작가가 되는 것인가. 대구 집으로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기쁨보다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책 한 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기까지 약 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출판사 대표가 말했다. 전과자 파산자의 책을 무려 천만 원씩이나 들여서 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출판사 대표는 내가 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 판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 내 책을 팔아서 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출판사 대표는 자신을 '마케터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원고 편집하고 표지 디자인 작업하고 인쇄소에서 발행하는 동안 판매 계획을 충분히 세울 테니 아무 염려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사업 실패 후 전과자 파산자가 되어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글을 쓰고 있다는 나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집필 전에 해야 했던 고민을 출판계약 직후에 하고 있다는 사실도 답답했다. 어쨌든 다리는 건넜다. 될 대로 되겠지.
2016년 2월. 집으로 택배 한 박스가 도착했다. 일 마치고 집에 와서 현관 앞에 있는 박스를 얼른 집안으로 들여 거실에서 박스를 열었다. 하얀 색 바탕에 "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부제와 주제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박스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손으로 쓰다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안방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오신 어머니는 내 책을 두 손으로 잡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그러고는 표지를 손으로 만지고 다시 안고를 반복했다.
"손이라도 좀 씻고 책을 만져야지!"
아내가 말했다. 하얀 색 표지에 흙먼지가 묻었다. 책 사이에는 시멘트 가루도 떨어졌다. 살면서 무언가가 그토록 아깝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책을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가 손발을 물에 담그고 얼굴을 씻었다. 비눗칠까지 다 마쳤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온라인 교보문고와 예스24 사이트에 하루에 서른 번씩 접속했다. 어제는 몇 부나 팔렸나. 오늘은 순위가 어떻게 되나. 네이버에는 아직 베스트셀러 빨간 딱지가 붙어 있나. 새로 올라온 독자 서평은 또 없나. 현장에서 삽질을 하다가도 잠시 쉴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내 책을 검색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 일꾼들이 뭐하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 책을 냈는데, 인터넷으로 내 책이 잘 팔리고 있나 검색한다고 답했다. 뭔 소리를 하는지. 그들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는데, 그들은 내가 작가가 되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책은 제법 잘 팔렸다. 출판사 대표가 마케팅에 자신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 났다. 독자들은 내 책을 읽은 후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생겼다며 감사 인사를 후기에 올렸다. 때로 "자격 없는 자가 책을 냈다"는 식의 서평도 올라왔다.
출판 계약을 하던 날의 떨림.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에 대한 감사. 내 책을 구입하고 읽어주고 후기까지 남겨준 많은 독자들. 꼭두새벽과 늦은 밤에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를 꾹꾹 참아준 가족.
첫 책을 출간하던 때를 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성찰하게 된다. 사람들은 과거를 잊는다. 미처 생각지 못한다. 자신이 얻은 것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잊어버리고, 서운하고 속상한 일들에 대해서만 따지고 든다. 어제는 감사하고 오늘은 증오한다. 간사한 인간의 참모습이다.
나도 그런 종류의 인간이 될까 두려워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 사업 실패했을 때의 처참함, 전과자 파산자가 되었을 때의 절망감,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글 썼던 시간들, 첫 책을 출간했을 때의 감동과 전율, 나를 믿고 함께 해준 수많은 수강생들.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5년이 지나 절판되었다. 출판사 대표는 전화로 절판 소식을 전했다. 알겠다, 감사하다 인사 전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왠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에 한동안 멍했다. 지금 나의 첫 번째 책은 중고서점에서 거래 되고 있다. 딱 한 권, 첫 장을 펼치지도 않은 새 책이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다. 나의 첫 책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