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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린 Oct 22. 2023

동화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육아/육묘 이야기 '오늘의 자식'

[노래하는 은찬이]     


  “새이 추하함미다~ 새이 추하함미다~ 사라하으 태여이~ 새이 추하함미다~.”

  은찬이가 교실 안을 돌아다니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어요. 이상해요. 태영이 생일파티는 어제 했는데, 그때도 노래를 다같이 부르고도 혼자 두 번이나 더 부르더니.

  “선생님. 왜 은찬이는 생일 축하 노래를 계속 불러요?”

  마침 라율이가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어요. 나도 궁금했는데 잘됐다!

  “음…. 은찬이는 태영이 생일인게 기뻐서 많이 오랫동안 축하해주고 싶어서 그런가봐.”

  “아? 음, 그렇구나~.”

  라율이는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는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냥 가버렸어요.


  은찬이는 태영이랑 친하지도 않은데, 생일을 많이 축하해주고 싶어서 계속 노래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은찬이는 그저께 태영이가 다른 친구들과 장난감 자동차로 경주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태영이에게 다가가서는 “줘.” 한마디만 하면서 대답도 듣지 않고 태영이의 장난감 자동차를 가져가려고 했거든요. 지난 주에는 여자애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쪽에 갑자기 다가가더니 예지 머리를 쓰다듬는 바람에, 그날따라 공주님 머리핀을 했던 예쁜 머리 모양이 흐트러져서 예지가 얼마나 속상해했는 지 몰라요.

    

  은찬이는 이상해요. 왜 아무 때나 자꾸 노래하고, 친구들을 당황하게 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은찬이가 우리반 누군가와 친하게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벌써 4월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은찬이는 가끔 아기 같아요. 또박또박 말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떼를 쓰거나 엉엉 울기도 하거든요. 전에는 길을 가다가 은찬이네 가족을 마주쳤는데,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 마치 누나처럼 은찬이를 챙겨주는 걸 본 적도 있어요. 핫도그 케찹을 입주변에 다 묻히면서 먹는 것도 모자라서, 옷소매에까지 흘리니까 동생이 은찬이 옷소매를 걷어주더라구요.

  은찬이네 엄마가 상냥하니 망정이지, 우리 엄마 같았으면 ‘또, 또! 김현진 이 헐랭이~.’하면서 놀렸을 지도 몰라요.


  오늘도 그랬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저 앞에 걸어가던 은찬이 책가방 지퍼가 ‘좌악-.’하고 벌어지더니 안에 있던 물건들이 모두 쏟아지는 거에요. 또 지퍼를 제대로 잠그지 못했나봐요.

  나는 은찬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필통을 줍고 탁탁 먼지를 털어서 건네줬어요. 그때 은찬이가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뭐라고 웅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아서 대답하지는 않았어요.


  은찬이와 헤어지고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마침 옆에 서 있던 같은 반 다솔이 엄마가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은찬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에게 말했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반인데 속상해서 어째~. 2학년 되면 다른 반 될 테니까 조금만 참아~.”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물어보려 했는데, 곧 신호등이 초록색 불로 바뀌었어요. 다솔이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다솔이를 데리고 먼저 가버렸어요. 나 아직 다솔이랑 인사 못했는데…. 나는 혼자 횡단보도를 건넜어요.


         

  나는 집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난 후에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엄마. 은찬이랑 같은 반이면 속상한 거에요?”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어요. 나는 아까 횡단보도 앞에서 다솔이 엄마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나에게 말했어요.

  “현진아. 은찬이는 천천히 자라고 있어. 은찬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가끔씩 아기처럼 보이거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현진이 너나 같은 반 다른 친구들에게 속상한 일이 아니야.”


  엄마는 계속 말했어요.

  “천천히 자란다는 건 걸음걸이가 조금 느린 것과 비슷해. 현진이랑 다른 친구들이 먼저 자라는 동안, 은찬이도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면서 함께 자라고 있는 거야.”

  나는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그러면 은찬이는 왜 아무 때나 노래하는 거에요?”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으니까. 아마 은찬이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인가 보구나.”     

  그러고서 엄마는, 은찬이가 힘들어 보이면 조금만 도와주면 된다고 했어요. 그건 길에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거나, 손을 다친 친구가 밥을 먹으러 갈 때 식판을 들어주는 일 같은 거랬어요.

  그리고 조금만 도와주다 보면 언젠가는 은찬이가 혼자서도 잘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그때가 되면, 은찬이는 정말 필요할 때마다 가장 멋지게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했어요.


  엄마가 하는 말은 조금 어려웠어요. 하지만 힘들어 보이면 도와주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비가 온 후 며칠이 지나니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어요. 오늘부터는 잠바를 벗고 학교에 가기로 했어요.

  어? 그런데 교실에 거의 도착해 가는데, 교실 문 바깥 복도로 다솔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내가 언젠가 이럴 줄 알았어. 너 때문에 내 새 옷에 흙이 묻었잖아.”

  얼른 교실로 들어가서 태영이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솔이가 친구들과 뛰어나가다가 교실로 들어오려던 은찬이의 실내화 가방에 부딪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은찬이 실내화 가방에 젖은 흙이 묻어 있었던 거에요. 많이 더러운 걸 보니 오늘 아침에도 은찬이는 신발을 갈아신을 때 실내화 가방을 떨어뜨렸던 것 같아요.

  “미.안해.”

  “웃기고 있네, 바보 같은 게.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랬어. 나한테 말 걸지마.”

  은찬이가 사과했지만 다솔이는 받아주지 않고 그대로 친구들과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은찬이는 아무 말도 더는 하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았어요.



  은찬이가 오늘은 배시시하고 웃지 않았어요.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어요. 아기처럼 엉엉 울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은찬이는 속상했던 걸지도 몰라요.

  

  나는 은찬이가 조금 걱정됐어요. 그래서 지켜보니, 수업이 끝나고 모두 집에 돌아가는데 오늘도 은찬이는 가방을 다 못 싸서 혼자 남아 있었어요.

  나는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나서 은찬이에게 말했어요. 아까 다솔이와 부딪혀 넘어지면서 다치지는 않았는지 얼굴도 열심히 살펴보았어요.

  “힘들면 같이 가방 챙겨줄까?”

  은찬이는 배시시 웃었어요.

  “고.마워. 현진아.”

  아. 고맙다는 말이었구나. 은찬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웅얼거리는 듯했던 소리가 이번에는 더 잘 들렸어요.

  “뭘. 다음에도 힘든 일이 생기면 도와줄게.”

  나도 이번에는 은찬이의 말에 대답했어요.


  우리는 함께 가방에 책들과 필통을 넣고, 운동화로 갈아신고, 밖으로 걸어갔어요. 교문 앞에는 은찬이 엄마가 서 있었어요.

     

  “은찬이가 오늘은 친구하고 같이 나왔네?”

  은찬이는 옆에서 같이 걷던 나를 보지도 않고, 엄마를 부르면서 휙 달려갔어요.

  “은찬아. 현진이에게 인사해야지?” “안녕.”

  “현진아, 고마워. 집에 잘 들어가고 또 보자.”

  은찬이 엄마는 은찬이에게 인사를 시키고,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뒤돌아 걸어갔어요.

  그러고 보니, 은찬이네 가족은 항상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많이 해요. 왜 그럴까요? 아까도 뛰어가다가 부딪혀서 은찬이를 넘어뜨린 건 다솔이인데, 사과는 은찬이가 했어요. 이상해요.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다솔이가 화를 낸 게 더 이상해요.

  은찬이는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집을 향해 걸어가는 등 뒤로 은찬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어제 저녁에 새로 나온 동영상에서 들었던 노래인데, 언제 저걸 다 외웠는지. 은찬이는 참 신기해요.     


  기억해보면 은찬이는 친구들에게 다가갈 때 항상 웃고 있었어요. 내가 운동장에서 필통을 줍고, 교실에서 가방을 함께 챙겨줄 때처럼 배시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친구한테 먼저 말을 걸고 대답도 듣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떼를 쓸 때도 있지만, 내 동생 아진이도 그러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엄마가 나도 전에는 은찬이나 아진이처럼 그런 적이 있다고 했었어요.     


  어쩌면 은찬이는 우리와 친해지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또박또박 말하고 싶고 대답도 잘하고 싶은데 아직 어려워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은찬이는 노래를 엄청 많이 알아요. TV, 휴대폰, 동요 CD에서 나오는 왠만한 모든 노래들을 다 부르고 다녔거든요. 거기다 음악이 나오지 않을 때도 음악과 똑같은 음으로 목소리를 내서, 마치 피아노가 노래하는 것 같아 깜짝 놀란 적도 있었어요.



  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어요.

  ‘2학년이 됐을 때 은찬이랑 같은 반이어도 괜찮아.’     


  가끔 힘들어 보이면 도와주면 돼요. 은찬이 말고 태영이도, 라율이도, 예지도,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힘들어하면 서로 도와주잖아요.

  3학년이 돼서 음악 시간이 생기면, 노래 잘하는 은찬이가 내 음악 숙제를 도와줄지도 몰라요. 그리고 지금은 은찬이가 국어랑 수학 시간에 다른 반에 가지만, 4학년이 되면 우리반에서 같이 배울지도 몰라요.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크게 상관 없을 것 같아요.     


  집에 도착하면 엄마한테 이야기할 거에요. 은찬이는 이상하지 않다고요. 그리고 은찬이랑 같은 반이 되어도 속상하지 않다고 말이에요.


[끝]

(본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들과 사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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